이미지, 순수, 육체, 김상수(극작가, 연출가, 미술가) 19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전시를 할 때 내 비디오아트에 출연하게 된 베트남계 프랑스 '소녀' 투안 두옹은 당시 열여덟이었다.

1995년 12월 어느 날 오후, 한 겨울의 파리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리시내 마들렌 성당 돌계단 위에서 찍은 2장의 흑백사진에서 보여지는 투안 두옹의 순정한 이미지는 그래서 촉촉한 물기가 스며있다. 조용하게 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던 맑은 눈빛, 약간 물기를 머금은 머릿결을 한쪽으로 살짝 치우는 작고 민첩한 흰 손의 움직임, 연약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던 가쁜 숨의 순간적인 정지, 분홍색의 목을 살짝 감싸 고 내려트린 검정 색깔의 목도리의 흔들림, 이제 막 낮의 기운이 물러나고 어스름한 저녁 빛이 이끼가 낀 오래된 돌 건물에 부서져 내리던 초록빛의 반사와 투안의 깨끗한 이마 위에 떨어지는 물빛.찰칵찰칵 하는 연속적인 셔트 소리가 8년 전의 한 시간을 여기에서 보듯 이렇게 두 장의 사진으로 정지시켰다.

빠르게 세월이 흘러 작년 2002년, 투안은 만 스물 다섯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프랑스파리국립의과대학병원의 성형의 전문의사가 된 투안은 20대 중반의 윤기가 흐르는 반짝이는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8월의 여름이다. 우린 아침 일찍 파리에서 노르만디로 향했다. 그녀는 능숙하게 운전을 했다. 악셀레이트를 밟고 있는 그녀의 발목에는 도톰하게 살이 올랐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끝내고 이제 막 파리로 돌아 온 피부는 까무잡잡하게 햇살에 거슬려 팽팽한 젊음을 연주(演奏)하고 있었다. 주홍색의 작은 차는 프랑스 고속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그녀가 운전면허를 딴 건 소녀에서 여자가 되었고 육체는 '여인'이 됐다는 증거였다. 그녀의 차에 올라 탄 나는 안심하고 있었다. 노르만디 계곡과 숲, 짙은 빨강 색의 아편 꽃이 사방으로 흩어진 산 너머 구릉의 들녘, 뭉게구름이 점점이 박힌 노르만디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거대한 밀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번엔 흑백의 모노크롬이 아닌 풀칼라였다.

육체는 시간의 빛으로 태워지는 것인가. 작고 연약하며 수줍던 소녀의 이미지는 시간의 빛으로 활활 타올라 여자가 되어 었다. 1995년에서 2002년, 7년의 시간의 간극을 두고 다시 내 카메라 렌즈에 비친 투안은 성큼 여인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7년전 샌드위치를 먹을 때 입가에 잘게 쓴 야채와 딸기잼이 묻어나던 그 소녀가 이젠 아니다. 팽팽한 육체는 젊음의 절정을 통과하고 있었다. 신경이 예민하고 섬세한 식물성의 순수를 보여주던 여리고 여린 소녀에서 20대의 순수인 자연의 시간을 조금씩 닮아가는 자기 연령대의 순수로 변모하고 있었다.이 순수는 소녀 때의 극단적인 순수의 이미지인 화학적인 순수의 위험성으로부터 서서히 육체적 표현의 순수로의 감행을 의미한다. 육체의 기하학은 육체적 표현의 결핍이나 과잉의 상태로는 기형적일 수밖엔 없다. 육체의 기하학은 곧 자연과 같은 균형을 요구하며 자연과 닮아지려는 순수를 지향한다. 젊음이 반짝거린다는 건 바로 이를 두고 말함이다.

그녀의 얼굴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마침 한낮의 햇살이 화장기 하나없는 투안의 얼굴을 정통으로 내려치고 있었다. 투안의 시선이 카메라 렌즈를 뚫고 내 망막으로 달려들었다. 난 숨이 다 찼다. 그랬다. 투안이 프로폐셔널한 모델은 아니지만 어떤 직업 모델들보다도 움직임이 더 정확하고 기민했다. 그녀의 시선 처리는 항상 반듯한 긴장이 스며 있었고 뭔가를 따로 만들어 움직이고 얼굴에 화장을 하고 매무새를 꾸밀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태와 시간만을 나는 찍었다.
마치 들판에 피어있는 꽃에서는 그 어떤 인공의 조작도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우린 밀밭으로 걸어 나갔다. 일찍 추수가 끝난 밀 뭉치는 탈곡도 하지 않은 채로 드넓은 들밭에 설치미술처럼 세워져 있었다. 노르만디 들녘에 저 엄청난 량의 밀 생산은 사람의 식량이 아니라 동물의 사료라고 했다. 세계 도처에서 굶고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세계경제가 굴러가기 위해서 밀은 오직 동물들의 사료로만 쓰여져야 한단다. 이게 세계화경제의 법칙이다. 아득하게 지평선 너머로 인간의 노동은 이제 사라지고 대단위 기계농업만이 노르만디 밭농사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 공중에서 쨍쨍한 햇살의 기운이 아주 명료하고 확실하게 시야를 맑게 트이게 해 주었다. 그것은 돌연히 보다 거대하고 신선한 땅덩어리로 내게 달려들었다. 꽉꽉 막힌 서울에 살아서 일까. 탁 트인 더 넓은 들판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늘과 땅, 사시사방이 송두리째 폭포와 같은 햇빛으로 흘러 넘쳤다. 투안의 이마에도 세례(洗禮)와 같은 햇살이 정통으로 때리고 있었다. 둥그렇게 감아서 세워 둔 밀 더미 위로 투안이 올라섰다. 둥글게 둥글게 감긴 밀더미 위에서 투안이 양팔을 공중에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불어로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투안은 그냥 소리만 지르고 웃고 서 있었다. 이윽고 프랑스 산골지방 한 여름 시골의 저녁은 아주 고요했다. 새들의 긴 행렬이 한 무리를 지 저 편 하늘로 흔들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여름의 꽃들은 아주 나지막하게 작은 소리로 합창을 부르고 있었다.

하늘, 들판, 꽃밭. 투안은 싱싱한 여름 꽃의 풍경이 되어 신선한 저녁 빛을 들여 마신다. 저 편 풍경의 한쪽으로는 시선이 뻗어갈 수 있는 끝까지 대지가열려있고 하늘은 높고 깊다. 한 떨기 수선화(水仙花)가 투안의 발 아래로 피어있다. 투안은 그 수선화의 빛깔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투안이 풍경이 되고, 풍경은 벌써 투안이 되었다. 풍경을 향하여 송두리째 열려있는 이제 스물 다섯 살, 한 여자의 세계는 너무나 정열적이다. 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불그레한 노을이 지펴 오르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 육체의 이미지는 하나의 자연이었다. 순수의 자연 말이다. 투안은 고개를 쳐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