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의 詩人 곤노가즈오(今野和代)의 詩를 連載합니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6-12-12 10:38     조회 : 9593    

시(詩) - 곤노가즈오(今野和代),
Photo - Kim Sang Soo 2006. paris 

오늘 부터 일정기간 연재될 시들은 원래는 내 출판사 Kim Art Institute에서 출판할 예정이었지만 출판사 사정상 차일피일 미루어지면서 아직 시집으로 출판하지 못했다. 2년에 걸쳐서 번역을 끝냈지만 제대로 반듯하게 출판하겠다는 내 의도는 오늘에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일본 시인과의 출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면구스럽다.
그래서 일단 이 면과 싸이월드 내 Kim Sang Soo ArtWorld 를 통해서 연재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시인 곤노 가즈요(今野和代)는 2001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내 연극 <섬,isle.島>;을 공연할 때 우연히 만나진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시인이다.

지금 나이 50대 중반인 이 여성 시인과의 당시 만남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예술에 대한 몰입과 광기에 찬 순수한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나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시와 시정신에 매료되었다. 오사카에서 고등학교 일본국어 선생님이면서 노동자 인권 운동을 하고 오늘을 사는 일본인들에게 시를 읽혀야한다면서 시 낭독회를 개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를 쓰는 마음과 삶을 실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하나라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
한국인 극작가, 연출가, 미술가 김상수와의 만남에 내 시 제3야(第 3夜)를 증정하며

                                                                            - 곤노 가즈요(今野和代)


일본의 종합 문예 잡지인 [이플리스] 제10호(2003년 6월25일발간)에 발표한 작품 [TEN NIGHTS OF DREAMS] 중 [第三夜]는 한국의 극작가, 연출가, 미술가인 김상수에 의해 광속(光速)과도 같은 영감을 얻어 쓰여진 작품이다. 필자가 1980년에 광주에 있었던 것은 아니나, 시대를 돌파해가는 정신의 빛과 넋의 속도를 김상수에게서 발견했던 것은 분명하다.

김상수와의 만남은 2001년 가을. 1992년과 2001년에 한국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섬]의 오사카 공연 몇달 전의 일이었다. 한국인 김 상수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오사카에서 배우, 스태프, 대사 모두를 일본인 ,일본어로 상연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구상에 깜짝 놀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국가간, 민족간의 시대적인 제약과 질곡을 겪어오며 국경을 넘어 새로운 창조를 엮어가려는 김상수의 도전적인 시도와 의욕은 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다.

우여곡절과 악적고투의 연속이었던 무대준비 3개월을 거쳐, 12월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서 [섬] 공연이 기적과도 같이 실현되었다.

김상수라는 인간과의 만남은 자연에 대한 깊은 경의와 시선으로 가득한 그의 무대에서 배우, 의상, 조명, 음향, 음악, 무대장치 모두가 세련되고 동(動)과 정(靜)의 콘트라스트가 있는 멋진 작품을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김상수의 노력으로 필자의 시가 한국에 소개되게 되었다. [저녁이 되었다. 나는 태어나 혼인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고, 늙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경외하자. 내가 가장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아무쪼록 그들의 초라한 식탁, 돈과 생활과 질투와 싸움. 느긋한 아들의 콧노래. 그런 저녁에 행복이 깃들길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 학자와 대중에 영합하는 예술가와 화려하고 능변한 권위자들. 아무쪼록 이런 저녁만큼은 당신네들 추한 지껄임을 멈춰주기를] 시인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의 이 문장은 [자신의 생애를 충실히 살지 않는 자는 인류의 현대사를 살아 갈 수없다.] 로 이어진다. 이 말들은 나를 질타하고 있다. 나의 시가 아무쪼록 거만한 [추한 지껄임]의 나열이 아니기를. 항상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어떤 룰(rule)일지라도 거기에서 얽매이지 않으려는 정신이기를. 세계가 커다란 절망의 도가니일지라도 늘 각성하고 응시하는 레이더이기를. 그리고 어디에서든 어떤 자세에서든 부드러운 꿈을 꾸는 힘이기를 염원한다.

시는 나의 에로스(eros)일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깊은 어둠과 침묵을 껴안으며 그리고 안기며 안으로 안으로 어렴풋 한 빛을 발하는 것, 그 빛과 열을 항상 마주하는 나였으면 한다. 2003년 일본 오사카에서

---------------------------------------------------------------------------
 시,

제 3야(第三夜)

그대는 죽어버리고, 나는 살아 있다. 죽은 경계와 살아 있는 경계를 넘는 언저리에서 이따금 난 만난다. 내가 손을 들어보이면 그리운 듯한 표정으로 그대는, 어이, 하는 인삿말처럼 서 있다. 감싸안으려 하니 어느새 사라졌다. 잠 속에서 내 뇌리속으로 그림자처럼 퍼져 간다. 1980년 5월의 광주. 뒷골목. 커다란 물웅덩이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 퍼붓는 소나기가 다가와 눈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의 소리는 지나갔다. 피투성이 머리의 그대를 찾아 나는 또 미로의 거리를 달린다. 신선한 빗과 흙 냄새. 가슴 속 갈기갈기 찢겨 다가오는 새로운 나날의 예감. 이 시대를 확실하게 묻어버리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게 무언가. 이 자유롭지 못한 숨막히는 공기가 역겨울 뿐이지. 우리들은 단지 어둠속으로 사라지겠지. 어차피 다른 썩은 권력이 들어앉을테니. 언제나 어떤 시대라도 침을 뱉어 주리라. 그대를 기억하리라. 고맙다. 그대는 아픔속, 어디에서 움츠리고 있는가. 거리는 등만 보이는 사람들, 돌연 바람을 타고 비린내나는 짐승 냄새가 흘러왔다. 골목을 가로질러 작은 거리로 나온다. 숨을 삼켰다. 사람 그림자조차 없는 키작고 낡은 거리. 녹슨 커다란 철창이 여기저기 가겟머리에 놓여 있어, 개가 몇마리 갇혀 있다. 이 가게도 그 옆 가게도. 안을 들여다보면 휑하다. 절구 모양의 스테인레스 솥이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다. 우리 안에 갇힌 개들. 몇세기 동안이나 이 거리에서 우리 속에 갇혀, 죽음으로 피를 흘려온 개들의 후손. 늑대와 같이 정신없이 반복해서 오가는 개들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반은 포기한 듯 쭈그리고 앉아 슬픈 시선을 이쪽으로 던진다. 서둘러 그 자리를 뜨려고 하다 움찔했다. 어떤 가게의 거대한 철제 우리에 그대는 갈색의 당당하고 사나운 시바견이 되어 갇힌 채 물끄러니 나를 응시하고 있다. 달려가 구하려고 하니 꿈쩍도 하지 않는 그 튼튼한 우리에는 열쇠도 뚜껑도 문도 없다. 가게 안에 들어 갔다. 주인을 찾았다. 그를 우리(鬱)에서 구해내야 하는데. 인사에 응답도 없는 가게는 콘크리트 바닥이 물로 깨끗히 씻겨 방금 일이 마치고 안으로 들어간 듯하다. 보니 왼쪽 구석에 빠져나가는 통로가 있어 마치 피로 물들인 듯 붉은 깃발같도 같은 천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 밑을 빠져나갔다.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간다. 또 안쪽에 붉은 천이 드러워져 어렴풋 단조로운 음악과 북소리와 호루라기 소리, 사람들의 환성이 들리는 듯 했다. 앞으로 다가가니 커다란 여닫이 문이 있었다. 열어보니 눈부신 창공에 축구공이 날아 몇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물결치며 열광하는 경기장이었다. 색색깔의 깃발이 드날리고 텔레비젼 카메라가 놓여져 보도진과 장삿꾼들이 부딪혀 공 하나를 좇는 대관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돌아가자. 나온 문을 열려고 하니 작은 여자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안돼, 안돼. 짖으면 안돼. 가만히 있어] 나는 작은 우리에 갇혀 있었다. 귀가 늘어지고 흰털이 북실북실한 작은 개가 되어 있었다. 당신을 구하러 가야 하는데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자. 목이 몹시 말라 혀가 제멋대로 하-하-나왔다.
[이플리스] 제10호 2003년 번역 이희라, 장귀자

http://club.cyworld.com/KimSangSooArt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