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3-11-07 09:25     조회 : 9997    
Untitled Document 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다.

작금의 한국 연극계 현실을 이제 우리 연극인들은 냉정하게 살필 수 있어야만 한다.
최근에 있었던 연극인 100인의 성명서 파동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연극계 현실은 분열과 반목이다.
반목과 분열에는 그 연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연원에는 한국현대사 질곡의 역사와 한국 연극역사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지극히 어려운 정체성(正體性)의 문제만큼이나 해방이후 현대정치사의 왜곡처럼 해방이후 문화예술계의 왜곡 또한 상처가 크고 깊다.

긴 시간 한국연극은 소외의 역사였고 지금도 그렇다.
무엇으로부터 소외인가?
이는 연극 자체로부터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로부터도,
연극은 계속 소외되어 왔다.
이는 곧 한국 현대 예술사의 전반적인 문제지만 특히 연극의 소외는 한국 연극의 일그러진 전통과 무자각의 현재가 반증해 주고 있다.

거듭 얘기하지만, 당장 한국 연극사에서 식민지 연극사를 이제는 판별해야 한다.
식민지연극사의 영향아래 위치하는 우리 연극현실이 신(新)식민지화로 얼마나 왜곡되었고 그로 인해 오늘에까지 연극계가 분열과 정체성의 혼돈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정적인 폐단이 무엇인가를 이제부터 세세하게 질문해야 할 때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한국연극계의 분열과 갈등, 반지성(反知性)의 원인에는 우리나라 연극에서 신극사의 출발은 식민지 상황이었고, 식민주의는 침력적 지배문화의 침탈과 피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내적인 붕괴는 이후의 분열과 갈등 심지어 부패를 유발하게 됐던 거다.
한 때 우리는, 어쩌면 이 시간까지도, 식민지 종주국의 연극 이미지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으로 내면화하였다.
이는 우리 내면의 괴멸과 붕괴에 다름 아니었다.

이 내면의 괴멸이 우리 현대연극사의 출발이었고
그 괴멸을 도리어 이용하여 식민주의의 싸구려 껍데기가
연극행위로 긴 시간 질주해 왔다.
신식민주의로 식민지 종주국 흉내내기가 현대연극의 출발이었음을 냉정하게 목도할 때가 이젠 됐다는 말이다.
반민족 친일연극인의 그 제자들이 해방이후 냉전 군사독재의 하수인으로 뻔뻔하리만큼의 예술행위의 일방적 향유자였고 그들 스스로 정체성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나 연극 또한 조악하기 그지없었고 당연히 창작의 정신보다는 조잡한 번역연극에 기대어 연극을 삶의 방편으로 일관했으리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편 다행스럽게도,
연극 역사의 소외와 지금의 한국 연극이 소외당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활기를 찾고 생기를 찾아야만 한다.
파탄 난 정신과 곪고 썩은 자기 몸뚱어리의 정체를 묻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연극이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정직하게 자기를 대면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만큼은 우리 연극현실에서 계속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자각이 너무나 당연하고 진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아직도 많은 눈들이 제대로 못 보고, 안 보고, 감겨져 장님이 되어있다.
이는 연극을 왜? 무엇 때문에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부족하거나 없었고,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날 극장에 관객이 없다. 그래서 연극을 제작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이는 연극하는 이들이, 결국은 연극을 시대의 정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나날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힘이 허약했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 다시 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다.
연극은 인간의 존중과 인간의 위엄과 인간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 작가나 연출가란 나름대로 세상에 부지런하고 자신에 엄격하며 정직한 언어로
자기 자신에 치열할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아무나 연극을 할 수도 없다.
더구나 연극을 한다는 사실이 삶의 안일한 도피처일수도 없고
무기력하게 연극 만들기의 되플이가 일상사 일수도 없다.

기실 연극을 만드는 예술가란 돈벌이와 명예에 대해서 여하히 자제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말이다.
그래서 저 가내수공업적이고 도저히 산업이 될 수도 없는 숙명적인 이 가난의 연극으로부터 우리는 떠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조의 주체할 수 없는 충동 때문에 여타의 사람으로부터 오해와 질시 미움까지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이제 난 여하히 다시 움직이고자 한다. 어떻게? 무엇을?
바로 연극이다.
그래서 나는 연극 만들기의 우리 사회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연극의 가치이해와 가치실현과 가치실천에 대해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과 눈이기 때문에, 또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온전한 이성(理性)과 온전한 현실을 위한 거부(拒否)에서 연극은 존재해야만 한다는 나름대로의 당위에 내가 서 있기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