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에 대하여, Australia Sydney에서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1-06 20:00     조회 : 8260    

삶을 산다는 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단 한번의 일생을 살아간다는 건, 우주와 자연에 포섭(包攝)되어 생을 사는 거다.
따라서 인간의 삶이란 자연의 질서에 우주의 원리에 얼마나 가깝게 삶을 사는가가 생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문물이나 문명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자연과 우주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생명은 조악하고 거칠며 짧기 마련이다.
참으로 세상이 소란스럽다. 문명은 위험의 축조(築造)를 넘어 이제 문명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만든 문명의 많은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차라리 우리 인간의 삶은 잘못 방향 잡혀져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더럽히는 요소들에 에워쌓여 있다.
인간의 유치한 호기심과 물질에의 탐욕적 질주는 혼돈의 극한이다.
마음속에 시(詩)와 조용한 자연에 대한 조응(調應)은 아랑곳없이 과장된 생존의 방식을 스스로 설정하고 살벌한 죽임을 서로 치루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 한국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비교육적이며 반교육적인 현실이다.
참으로 사태가 점점 어려운 지경으로 치닷고 있다. 인간의 얼굴들을 볼 수가 없다.

우리는 실망과 역겨움이 어디서 초래하는건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모든 소음, 지나친 정보와 이미지들로부터 단절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타인의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 눈으로 내 몸으로 삶을 이끌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삶에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참으로 어려운 판단이 요청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단순하다. 그러나 또 어렵다.
삶을 살아 온 방법이나 습관으로부터 과감히 떠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니까.
지금 나는 먼 나라 호주에서 영화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영어권으로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낯선 나라 낯선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준비된 여건에서 작업하는 게 아니고 아직 숙소도 통신도 현지 네트웍도 다 불안정을 넘어 몹시 불편하고 괴롭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서울을 떠나기로 했고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예술 작업에서 필수불가인 소통의 방식에 일대전환을 의식하고 있다.
이 곳에서 좋은 생각을 지니고 생에 의미를 지니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어야만 진행되는 일이다.
나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잘 진행될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같이 찾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은 단서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작은 영화라도 내가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07.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