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영애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3-11-07 13:27     조회 : 1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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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김상수 작, 연출 <짜장면> 출연당시 이영애

텔레비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한 때 텔레비전 드라마를 썼기 때문일까.
20대 중후반인 85년에서 89년 사이, 간간이 텔레비전 드라마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서 난 텔레비전 드라마를 소홀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한동안 진지하게 관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국 현실의 메카니즘을 난 이해하기 어려웠고 당시 군사독재시대의 검열도 문제였지만 알아서 슬슬기는 방송국 간부들,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던 피디들이 민주화 이후 민주투사인척 하는 것 또한 역겨웠다. 어쨌든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국 체제나 그 때 그 현실이, 내 생각에는 참 한심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방송국을 멀리 하게됐다.
그냥 그대로 한통속이 되어 같이 갔다면 드라마 각본으로 돈은 좀 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다, 한편으로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차라리 '왕따'를 자초하고 또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어차피 난 그 집단의 일원이기에는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역부족한 처지였으니까.

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면서 짓까불고 저질스런 짓거리를 하는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머리 나쁜 피디애들이나 지저분한 피디애들이 모가지에 힘주고 드라마라고 찍어대고 있는 걸 경멸했다. 아마 지금도.

얼마전에 리모콘을 돌리다가 mbc에서 대장금(大長今)이란 드라마를 잠깐 봤다.
옛 사극으로는 기획이 참신하고 돋보였다.
맨 날 지지고 볶는 그 궁중사극이란 상투성을 벗어 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인공 이영애가 반가웠다. 연기가 원숙해 지고 있었다, 좋았다.

이영애.
벌써 10년이 지났다.
1993년에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개관기념공연으로 같이 <짜장면>이란 연극을 했다.
그 때 이미 그녀는 "산소 같은 여자"로 떠있었다.
지금 기억에, 어느 날 같이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지하철 안에서 "어머!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다!" 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옆에 있던 나도 '내 옆에 서 있는 이영애가 이렇게 유명하구나' 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같이 작업을 한 여배우 중에서 이영애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배우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그 누구 어떤 배우보다도 성실했다.
93년 당시 '짜장면'이란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을 할 때 같이 일했던 여러가지 기억이 새롭다.
그 때 그녀의 나이 스물 둘, 셋쯤. 지금 생각해보면 이영애는 같이 출연했던 열 살쯤 위였던 또 다른 유명 여배우보다도 훨씬 조숙하고 어른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분장실 분장대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분장을 하던 기억이 나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왜죠? 왜 그렇죠?"하고 질문을 해되던 세상사에 주의 깊은 그녀의 표정도 생각난다.
당시 그 연극에 출연배우들 중에서 가장 '스타'일 수 있었고 '스타'였다.
당시 벌써 유명해서가 아니라 프로폐셔널한 작업 태도와 단정하고 깔끔한 몸놀림, 작품을 분석하고 집중하는 배우로 그 능력에서 그랬다.
한번도 연습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고 열중해서 작품으로 파고 들어왔다.

연극연습 중에 어느 날, 당시 sbs 방송국 드라마 제작부국장이란 사람이 연습장을 찾아와서 이영애가 텔레비전 출연계약중인데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은 안하고 연극연습이나 하고 있다'고 계약위반이라고 따지러 온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이영애를 난 기억한다.
그녀는 sbs 드라마 제작국장이 찾아왔다고 하니까, 연습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서 연습실 앞 복도에서 자분자분하게 사태(?)를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난 sbs방송국하고 계약은 했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한 것이지 '아무 드라마나 출연'하기로 계약을 한 것은 아니에요. 계약서를 잘 보세요. 그리고 지금은 연극 연습중이랍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제겐 소중한 시간이에요"
당찼다.
그래서 난 그 때 이미 이영애가 큰 배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녀의 아버지도 기억이 난다.
따뜻하고 겸손한 인품과 표정의 그녀 아버지.
그녀와 내가 따로 둘이서 연습을 하는 밤늦은 시간까지 연습장 밖에서 딸을 기다리던 아버지.
그녀의 아버지는 한 때 시를 쓰던 시인이셨다.
내게 향한 그녀 아버지의 정중한 인사.
이영애에게 적은 출연료와 같이 선물로 주었던 모나미 만년필도 기억이 난다.
시를 써시던 아버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배우 이영애의 겸손함.
파고드는 열정.
같이 소주를 마실 때의 솔직 담백한 대화들.
마치 일본에서 연극 <섬>을 했을 때 같이 연습하고 출연했던 일본 여배우들의 성실한 모습처럼.

난 그녀가,
내가 좋아하고 이따금 같이 포도주를 마시는 배우 김혜자님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
아니, 김혜자님을 뛰어 넘기를 바란다.
김혜자님의 배우로서의 지성을.

배우 이영애가 산만해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녀 인생에서 연기자로 또 여성으로 축복을.
영애도 이젠 나이가 서른이 넘었구나.
세월이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