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는? - 1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3-31 19:29     조회 : 8645    

도쿄에 오면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다.
물론 가까운 나라여서 그럴수도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오는 이유중에는
유학이나 연수 비지니스 관광등으로 찾는 것 같다.
아직은 대등한 관계라기 보다는 뭔가 일본을 따라서 쫒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 그럼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볼려고 하는가? 일본에서.

김대중 정권이 그나마 잘한 일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전면 개방한 일이다.
그 이전에는 문화교류의 수준이란 아주 미미하기도 했지만,  싸구려 보따리 장사치들이 '뽀로노'나 '전기밥솥' 등의 일제 전자기기나  저류문화를 한국이 일방으로 받아들이던 수준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문화하면 '뽀로노' '전자기기' 정도로 오해하는 지경이 됐다.
기실 박정희 시대때는 일본의 산업쓰레기를 수입해서 외화인 엔화를 벌던 참담한 시절도 있었다.
이즈음,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본에서 부는 한류바람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곧장 질러서 말하겠다.
우린 오랜 역사 일본국엔 '선생님 나라'였다.
하지만 불과 100 여년전부터 '선생님 나라'는 시름시름 병환에 시달리면서 동족간의 전쟁을 치루기까지.
슬퍼다.
100 여년전부터 오늘까지는 완전 역전이다.
'선생님 나라'였던 조선(한국)이 '머슴 나라'가 되고 '학생의 나라'로 전락, 100 여년이다. 
일제 전기밥솥을 사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국인은 현격히 줄었다.
그러나 왜색의 문화를 베끼는 이들은 여전히 상당수다. 일상의 수많은 요소들을.
훌륭한 문화를 수입한다면 그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개는 일본의 바람직한 문화나 일하는 태도등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껍데기와 제스처를, 요상스럽고 기괴묘묘하며, '쌍스러운' 문화를 수입해 들어간다.
아마 한국과 일본의 무역 역조 상당 부분은 일본의 기술등 라이센스비와 이런 하류문화를 수입하는 것에 연유하기도 할 것이다.

일례로 문화예술계 중에서 연극계만 잠시 둘러보자.
한국과 일본의 연극 교류는 활발해졌다.
심지어 '한,일 연극교류회'라는 단체도 생겼을 정도니. 
어떤 한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연극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연극을 하고 있는가?
한국의 연극계에서 자천타천 원로들 중에는 일본말을 '설사똥 싸듯이 잘 씨부렁대는' 사람들이 많다.
기실, 이들은 일본과 연극을 교류한다는 간판이지만, 그 본질은 일본에 '싸구려 머슴수준에 해당하는 예술'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에겐 창작이 거의 없다. 샤뮤엘베케트니 뭐니 번역연극이나 '짜자-잔' 일본식 짭뽕 아류 수준이 거개다.
심지어 일본 일각의 요사스런 문화를 동경한 나머지, 일본 연극같은, 시간의 추임새는 물론 의상, 조명, 대사법까지 거의 일본풍을 따라서 하는 이가 한국의 원로 연극인들이라니. 이네들이 바로 식민지 후예들이면서 이들 마음속엔 영원히 식민지를 그리워하는 지경을 넘어서서 식민지 종주국에 대한 꽉찬 열등감이 이들의 쪼가리 예술이자 쪼잔한 인생들이다.

한국 현대 연극사를 일별한다면 이들이 대개의 경우 동경유학생 출신 연극인들의 그 직손들이자 그 '꼬봉' 들이다. 
문제는 이네들이 긴 시간 예술의 이름에 빌붙어 삶을 기생하면서 교수니 예술가니 원로니 하면서 허기진 악귀 무리의 아수라(阿修羅) 지경이 한국 문화계 현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제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무섭게 달라져야만 한다.
비록 일본어 일본은 잘 몰라도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자신만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창작들을 들고와 일본의 관객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자주 있어야만 한다.
심지어 한국의 창작극을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무대에 올리는 그런 일도 자주 있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일본말을 '설사 똥 싸듯이" 는 하지 못하고 할 필요도 없는.   
일본인들에게는 과거 '선생님의 나라' 한국인의 후예로써 당당하고 적확(的確)하며
치밀한 정신 세계를 드러내고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한다.
비록 한 때 나라를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기는 치욕스런 시간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과거를 딛고 걸음을 내쳐 걸어 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