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글 - 미국가짜박사가 대우받는 신식민지 한국사회 - 가짜가 구축한 사회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7-12 15:30     조회 : 18503    
지금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주비엔나렌지 뭔지 예술감독 맡은 여성의 가짜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 사건은 이제 서른 다섯 살(나이도 헷갈린다고 함)먹은 한 여성의 맹랑한 사기극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썩고 병들어 뭉개졌으며 시작도 끝도없이 황폐무인 지경인가를 반영할 뿐이다.

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학위 문제와 상관없이 멀쩡한 가짜들이 판을 휩쓸고 있는 한국 문화예술계 사회의 피폐함은 그 정도를 넘어서서 불교에서 얘기하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 악귀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귀신'들의 아수라장(阿修羅場) 판이다.
필경 지옥도(地獄道)의 길이 이러할 것이다.

받았든 안받았든 '쯩'이 문제고 외국학위 그것도 일부 한국사람들에게는 식민지 종주국으로 여겨지는 미국 대학교 '쯩'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99년쯤인가 나도 지금 문제되고 있는 신모 여성을 만난적이 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금호미술관'이란데서 재능이 있어보이는 유00라는 화가의 전시회를 둘렀다가 그 화가의 소개로 이 신모 여성을 소개를 받았는데 그 때 받은 내 인상은 미술기획자치고는 상당히 '젊다' 였고
-나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실력있고 정직한 젊은이의 경우에만 그렇다 -
뭔가 불안하고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인상인 이 젊은 여성을 미술 큐레이터로 취직을 시킨 '금호미술관'이 속거나 아니면 신모 여성이 속거나, 서로 속고 속이는 미술계 풍토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내 눈엔 비쳐졌다.

마침 동석한 자리에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나이의 한 남자가 딸쯤 나이로 보이는 이 신모여성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지나치게 비굴해보이는 처신을 하는게 내 신경을 내내 거슬렸다.
나는 당시에 그 여성한테 "어디에서 무슨 미술을 공부했느냐" 고 물었고
그녀의 대답은 미국 무슨 주립대학에서 어쩌고 저쩌고했던 기억인데 정체가 분명치 않았고 실력과는 무관해 보였다.

신모여성과 중년의 화가가 자리에서 사라진 이후에 나는 동석한 전시중인 화가 유ㄷㅎ에게 "저 젊은 여자한테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과공하는 저 화가는 누구고 이름이 뭐냐?" 고 물었다. 
"E여자대학교 교수 장ㅎㅈ 이고 그림을 팔려면 아마도 이력으로 자꾸 전시를 해야하고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싶은가 보다"  라고 유ㄷㅎ 화가는 말했다.
이 나라 미술환경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경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이후 전시장이나 미술계 일각을 오다가다 이 신모여성을 마주 지나친적이 있는데 자기한테 별로 호감가는 인상을 주지않는 나라는 사람이 몹시 불편한지, 아니면 내가 자기를 꿰뚫어본다고 지레 여겼는지 인사도 억지로 하는 인상이었고 나는 그냥 스쳐지나듯 했다. 

지난 1월 중에 뉴질랜드에 있을 때다.
성곡미술관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 2007년 3월2일부터25일까지 '예술가의 또다른 예술 Artist's another Art '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저희  전시 컨셉과 일치하여, 선생님의 작품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적확(的確)한 개념없이 여러명이 떼로 모여서 하는 전시회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성곡 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신모라는 이름이라 그 초대전시회가 달갑진 없었고, 하여간 싫었다.
그런데 바로 이번 주에 이 여성이 광주비엔나레 예술감독이 됐다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봤다. 갸우뚱했다. 머리가 다 아팠다.
아니나다를까, 지금 아주 시끄럽다.

가짜들이 지겹도록 판치는 사회, 사립 미술 대학교 교수나 예술대에 취직된 자들의 학적조회를 시작하자면 아마 수십명 이상의 가짜가 더 밝혀지고도 남을거다.
그럼? 신모는 재수가 없어서?
멈출줄 모르는 사회를 향한 욕망의 가속 폐달을 헛밟아 이제서야 정체가 낱낱히 밝혀진 걸까.

이 신모여성의 '가짜' 사기를 누가 키웠는가?
금호미술관 이르바이트로 시작해서 큐레이터 이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컬럼 쓰기와 수다한 인터뷰 기사들,  이어서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홍익대 등 여기저기 대학 강사로 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어 동국대학교 조교수 광주비엔나레 미술감독까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미술계 무지와 허영은 그녀를 키웠고, 그리고 국가기관인 문화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바로 이들이 키우지 않았는가? 조선일보 기자도 동아일보 기자도 '쯩'은 있지만 정말 '기자다운 기자'였을까?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실재로 근무는 하겠지만 "가짜기자"들이 아니었을까? 
전시를 찾아다니고 미술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공부하는 기자를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보도자료중에 발췌한 문장을 기사라고 한 줄 처리하는 것도 위세인 현실이고 이런 기자들이 아직은 현실의 '완장'이고 영향을 끼치는 현실이다.

엉터리 귀동냥과 근친교우 관계가 기사의 출처이니 신모 여성같은 철저한 가짜한테는 진짜 '쯩'은' 있지만 '가짜기자'들이 도리어 만만하게 취급당할 수 있었으리라.
국가기관인 문화관광부 현대미술관이 시행하는 정책인 '미술은행제도'에 추천위원으로 신모여성을 위촉했는데 그녀를 위촉한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 직원은 그럼? '가짜공무원' 이었나?  동국대학교도 결국 가짜대학이 아닐까?  광주비엔나렌지 뭔지도 가짜 비엔나레고.

최근에 전시를 하면서 기자들을 만나본 소감은 문화부 기자가 아닌 사회부 기자로 취재를 왔던 k신문 ㅈ기자나 ㅎ일보 ㅇ기자, 경제신문의 이제 인턴기자 신분인 ㅅ기자한테서 나는 반짝이는 촉수를 느꼈다. 인터뷰어인 나에 대해서 사전에 조사를 해왔고 무엇을 질문할까를 준비해 왔다.

9년전에 표갤러리라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데 ㄷ일보 기자가 만나지도 않고 전화로 이런저런 질문을 해온적이 있었고, 기사의 가장 기본이라할 수 있는 전시 날자가 전혀 틀리게 기사로 나간 사실이 있다.

마침 ㄷ신문사에서 내 책이 나왔고, ㄷ신문사 ㅇ사장이 기사가 난 날 오후에 전시장을 직접 찾아왔기에, 나는 "이제 우리나라 신문도 일본이나 유럽 미국처럼 전문기자제를 도입하면 안됩니까?" 하고 물었고, 눈치빠르고 발빠른 ㅇ사장은 자사 기자의 전시 보도를 보다가 날자가 틀린 것을 스스로 알아채고는 신문사에 돌아가 편집국에 주의를 주었단다.

이후 ㄷ일보 문화부 기자들에게 나는 '찍히고' 말았는지 나에 대한 문화 예술 기사는 전혀 나가지 않는다. 9년전의 그 미술담당 기자가 돌고 돌아서 현재도 ㄷ일보 문화부 차장이고 미술담당이란다.     

지금 신모여성이 가짜라고 밝혀지자 여기저기서 '괴물'이니 그럴줄 알았다니 하면서 나서서 비판에 열을 올리는 작자들은 그럼 또 어떤 이들일까?  다 한 통속 아닐까.

바로 어제까지 앵무새마냥 신모의 얘기를 받아쓰던 '가짜기자'들, 불안한 '쯩'을 이마위에 쳐들고 신모와 어울리면서 공모를 하고 상을 주고 받고 작당을 하고 미술을 왜곡하던 '가짜전문가'들이 이들인데.

내 눈엔 신모여성 이상으로 '진짜가짜'로 보여지는 멀쩡하게 조악한 '쯩' 가진 이들의 행태가 더 기승을 부리는 모습들이다.

도대체 '진짜'와 '가짜'는 '쯩'의 소지 여부를 떠나서, 그 판단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쯩'을 안믿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쯩'이란 게 없다.

'쯩' 이전에 자기 역할과 입장을 스스로 존중하는 정직한 태도가 우선이 아닌가.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다수를 상대하는 공공의 일이라면 공인으로 맡은 일에 대해서 정직하게 수행하고 반영해야 하는 게 역할이 아닐까?

이번 '가짜박사' 사건은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최소한의 책임의식만 있다해도 사전에 차단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불가능했다면 이는 사회적 위기가 만연한 것이고 이 또한 문화적인 위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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付言 - 두어가지 얘기를 더 부가하겠다.

깨어있는 자라면 한국 현대 미술의 역사는 소외의 역사임을 잘 알 것이다.
미술 자체로부터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로부터도 미술은 계속 소외되어 왔다.
이는 한국 현대 예술사의 전반적인 문제지만 특히 현대미술의 소외는 한국 미술의 일그러진 전통과 무자각의 현시대성이 날카롭게 반증한다.

첫째는 미술 지식인들의 역할이 문제다. 기자, 평론가, 대학에서 미술을 강의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문제이며 이들 중에 부패한 이들, 자기 정체성이 모호한 자들이 큰 문제이다.

오늘 나는 naver미술 클럽(2007gss  일반회원  http://cafe.naver.com/artinvest/4036) 에 11년전인 1999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 도록에 내가 썼던  '미술 비평, 말의 질서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 글을  11년만에 다시 올렸다. 신모 가짜박사 문제가 가능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 대해서 많은 미술관계자들이 같이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 이유다.
그 글은 당시 미술계의 여러 문제중에서도 특히 '미술 지식인'들의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고 나는 느꼈다.  11년의 세월이 흘러 2007년 오늘, 과연 '미술비평'은, 미술 지식인들-기자, 평론가, 대학에서 미술을 강의하는 이들은- 제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11년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둘 째는, 갑자기 미술 시장이 성정해 나가는 지금의 와중(渦中)에서 미술 시장의 바른 자리 매김은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투기꾼들의 난장(亂場)이 아니라 진실로 예술의 가치이해와 가치실현이 사회적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정보로 우왕좌왕하는 상당수 투자자들에게 부당하게 잘못된 미술가치 또는 예술가치를 오도하여, 불과 소수의 비만한 중개인들-일부 옥션, 일부
화랑, 일부 딜러-에게 시장의 독과점으로 인한 시장의 잠식도 우려되지만,

미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또한 제대로의 의미로 창작인(創作人) 또는 작가(作家)들의 입장이 아닌, 허기에 제철 만난 식으로 계속해서 돈만 밝히고 밝혀 온 경우들-돈이 되고 팔린다는 이유로 평생을 기름방울만 그리고, 같은 생나무만 줄 창 찍어대고, 교회를 끼고 ‘팬시 수준’의 조각을 만들면서 원로(元老)연하거나, 선이니 점이니 기초 관념의 수준에서 한 발작도 고의로 걸음을 옮기지 않으면서, 예술의 이름에 기생(寄生)하는 <깡통귀족>들이 미술시장에 계속 득세하는 현실은 미술 시장을 교란하고 미술시장을 허약하게 한다.

시장은 시장의 횡포(橫暴)와 시장만의 전제성(專制性)이 시장의 본질이 아니다. 시장은 인간의 시장이어야 하고 사회의, 모두의 시장이어야 한다. 돈이 목적이 아니다.
돈은 매개다. 시장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시장은 사람들을 매개하는 장이다.

한국의 미술 시장을 허약하게 하는 상당 부분이 미술시장 중개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미술의 중개는 고유성이 있는 것이다. 돈이 된다고 똑같은 작가의 작품을 여기저기 일제히 내미는 건 돈벌이만이 곧 이들의 정체성일 뿐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실정이다.

신모씨의 가짜 박사학위 문제로 촉발한 오늘의 미술계 사건은 특정 한 여성의 파렴치한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이런 여성의 등장이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적 구조나 환경이 문제이며 그 조건을 여하히 부셔내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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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7. 18. 19:00

저녁 뉴스를 보니까, 광주 비엔나레 이사진 전원이 총사퇴를 의결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강연균 이사는 "비엔날레의 문제와 모순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크며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강 이사는 이어 "전문가 중심의 기획이 없어 비엔날레는 내부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며 "통렬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주비엔날레 이사회는 이날 3시간을 넘긴 마라톤 회의 끝에 이사진 전원 사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지만 비엔날레 개최를 불과 13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비엔날레 개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연합뉴스)

그럼? 이 이 사건이 과연 광주비엔나레의 이사진 사퇴로 끝날 얘긴가?
아니다.

가짜박사 신정아를 불러들인 동국대학교 이사장과 이사진,  당시 총장 또한 분명한 태도 표명을 해야 한다. 총사퇴에 버금가는.
동국 대학교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학이라면 당연히 응분의 사태 책임을 져라.


그 다음 순서를 거슬러, 신정아를 전시기획 담당자로 고용했던 금호미술관 관장과 성곡미술관 관장 또한 명료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미술관이란 설사 사립 운영 미술관이라해도 동네 구멍가게 차원이 아니다. 공공성을 표명했고 공공예산의 지원을 받았다.
재수없이 걸려들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혹 한다면, 그간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일련의 모든 미술 행위들까지 '신정아 수준'으로 취급될 우려가 있다. 공공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이란 미술을 대상으로 사회를 관계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져라. 


아울러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또는 기타 신문에 '가짜박사 신정아'를 제대로 된 미술 지식인인양 컬럼을 쓰게하고 인터뷰 기사를 내고 기사라고 마구 써댄, 현저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가짜 기자'들(이들은 신정아와는 달리 신문사 기자'쯩' 이 있는 기자들이긴 하다)은 신정아의 현재를 취재 기사로 파고들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책할 때가 됐다.
신정아의 현재를 추적하는 팩트 기사야 사회부 기자들이 추적해 나가면 된다.
미술을 담당했던 문화부 기자 중에 신정아 놀음에 놀아 난 기자들은 사표를 내거나 기자를 더하겠다면 통절한 반성과 아울러 취재 공부부터 다시 하라. 거의 실행되기 어려운 주문이지만.


신정아를 음으로 양으로 키운 일부 미술계 지식인들, 그네들은 거의 '신정아 수준'임을 공표하라.
마녀사냥을 하는 것인가? 그네들은 신정아에게 속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 대면서 몸을 뺀다면 그 몸이 빠져나가는가?
신정아 네트웍에 해당되는 상당수 미술 지식인들의 자가당착은 이제 좀 정리할 때가 됐다.

일부 미술 지식인들-평론가, 비평가, 전시기획자 등- 도대체가 이들 미술 지식인들 사회의 정체는 뭘까?
자기 머리와 몸에서 나오지도 않은 생각과 말을 마치 자기 말인 양, 상당 수 지식 도둑놈들이다.
싸잡아 함부로 얘기한다고? 과연 그럴까?

아직까지도 외국에서 대강 대강 공부하거나 정체가 불분명한 학위를 받아 오면 대우를 받는, 또는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렇다고 알고 있는, 그리고 신정아라는 새카만 미술계 후배까지 그런 착각을 가능하게 만든 책임을 져라.

당신들의 미술 언어란 그간 정상적인 언어가 아니었다. 비평가나 평론가란 떼밀려서 말하고, 충동적으로 말하고, 권력으로 말하고, 판관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덜 떨어진 허깨비 춤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넘치고 넘쳐서 다반사로 통용되는 미술 지식인 사회가 예일대 가짜 박사까지 기생시킨 것이다.
지식이라고 이름붙이기가 민망하리만큼 처절하게 우스꽝스러운 신식민지적 형국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가 남의 것을 제대로 번안할 힘이라도 있는가 하는 의문은 접어 두고, 예술 계통에 이리도 많은 낱말과 생각의 단서가 남의 것을 빌리고 훔쳐서 채워지고 있는 이 현실이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여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들의 나라인가.

미술 지식인, 미술 기획자의 가짜 언어가 더구나 그것이 이기적이고 맹목적이며 무차별하게 사용될 때는 혼돈과 아수라(阿修羅)에 이르게 된다. 그 후에 세상은 종잡을 수 없는 타락으로 떨어지고, 사람의 삶은 사기 취재(詐欺取財)가 공공연해지면서 사회는 짐승의 장(場)으로 전락한다. 이것이 신정아를 키우고 만든 것이다.

이때부터 조직화된 무책임이 만연하게 되는데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타락의 징조와 징후를 알아차리는 게 지성인의 바른 태도인데 우리 사회 미술 지식인 사회는 이미 그 피폐의 도를 넘어섰다.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자, 말빨있고 글빨있는 놈들이 광주비엔나레 등 수다한 전시 기획을 했고 기회를 지들끼리 돌아가면서 나눠 갖지 않았던가. 신정아는 당신들의 네트웍에 가동됐고. 
일부 미술 지식인들의 관습적 폐악은 아무런 반성적인 사유도 없이 일방의 타락한 흐름으로만 이행했다.

당연히 신정아는 당신들의 클럽에 확실히 발을 들려놓을 작정으로 예일박사'쯩'을 팩스로 받았잖냐고 소리치는 것이다. 당신들, 가짜들한테.

미술 지식인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비평이 무엇이고 평론이 무엇이고 전시기획이 무엇인가. 그것은 말의 질서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 먼저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듯이 세상과 삶의 근본에 배치될 때, 그건 이미 말의 파쇄이고 말의 끝장이다.
지식인이란, 교수란, 전시기획자란, 권력으로 말하고, 이권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와서 무책임하게 괴물같은 한 여성에게 속았다는 식은, 자신을 미술계라는 이름 뒤에서 다수의 편을 대변하듯, 다수의 뒤에 숨어서 얘기하는 비겁한 태도다. 그건 예술을 빙자한 저급한 차원의 또 다른 정치다.
한국 미술계, 또는 한국 예술계가 지니고 있는 파벌 의식과 정치 놀음. 이것이 우리 문화의 수준이고 당신들이 바로 이 수준을 만들었다.
이 썩은 병폐를 고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 결국 오늘의 사건까지 초래한 것이다.


아울러 오늘의 광주비엔나레의 사태에 연원이 있게 한 전광주비엔나레 예술감독들, 그들도 응분의 책임을 지고 앞으로는 함부로 비엔나레 예술감독이니 전시기획자니 나서서는 안될 일이다. 오늘의 문제가 있기까지 그네들의 역할 또한 다 했다고 몸을 빼서는 안된다. 광주비엔나레의 현재는 과거 역할들에도 그 책임을 묻는다. 이게 역사다. 광주는 미술의 이름을 팔아 함부로 업신여기고 뛰어들어가 장난질 하는 곳이 아니다. 광주는 '민중들'의 100년 피울음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