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8. 2008년 이후, 외교문화 - 현실 대안과 비전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8-06 23:38     조회 : 7604    
러시아, 일본, 중국과의 외교 역량이 다음 세대를 결정한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함은 일반론이라 새삼스럽게 강조하지는 않겠다.

한, 중, 일, 러시아, 동북아시아에 지역적인 협력의 커뮤니티를 현실화시키는 일은 전세계적인 의미에서도 우리의 국가역량을 확보하는 측면의 중요성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이 동북아시아 지역 협력의 그 견인차가 돼야 할 사실적인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동북아 갈등의 일차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정학적 조건으로도 한반도의 동북아 이니셔티브는 불가피하며 동북아시아 커뮤니티까지 주선해야 한다.
이니셔티브는 우리에게 실력을 가져야 함을 주문한다. 근본에 문제는 여전히 한반도 통일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북한, 이들 나라가 당장 E.U같은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여렵다해도 안전 보장상의 다자간 협의나 경제협력과 환경보호, 문화적 측면에서의 지역협력은 가능하다.

물론 동북아시아 커뮤니티 또는 유럽연합 같은 협력체를 만들려면 일본의 국가 인식이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일본을 여하히 세계 이성 국가로  안정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일본은 과거 `대동아 공영권' 을 내걸고 전쟁을 일으켰다.
패전 뒤 일본인들은 그들의 과거로부터 계속 도망을 다닌다.
일본은 5년 전인 2000년, 당시 일본 수상이 중심이 되어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란 계획안을 내놓았다.
그 구상 중에서 ‘세계 속에 사는 일본’ 이란 항목에서 ‘근거리 외교’로 ‘근접 아시아와의 협조’라는 내용이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냉전의 붕괴, 경제적 빈부의 격차, 지리와
        역사를 둘러싼 틈 등 여러 가지 단층이 있었다. 금후 지역의 공동
        이익에 눈을 돌려, 협조의 정신을 공통으로 활성화하며, 분열이나
        대립을 완화해 나아가는 것이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며,
        그것은 바로 일본의 국익이다.”

일본은 경제는 대국이지만, 정치적으로 의식적으로는 정말 <섬>나라에 불과한 것인가?
"지리와 역사를 둘러싼 단층”이란 표현으로 과거를 피해버리는 일본.
지역적인 실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미국에 빌붙어서 세계를 배회하는 식의 일본.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의 대일본 불신 해소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동북아 지역의 운명은 너무 어둡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2005년 5월 8일, 전쟁 패전일 당일에 유태인 추모비 2700여개의 제막식을 거행했다.
통일 독일의 수도 한 복판에 축구장 2개 넓이의 부지를 차지하는 장소를 정해서 독일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사실을 사죄했다.
추모 건축과 추모비를 설계 디자인 한 건축가도 피터 아이젠맨이란 유태인이다.
이게 유럽 연합을 가능하게 한 독일의 저력이다.

일본은 철저한 과거 역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패전’도 슬그머니 ‘종전’이라고 명명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 등의 일본 우익은,
“일본의 식민지배는 인도적이고 인간적이었다"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일본 우익의 태도는 독일과 끊임없이 비교된다.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계속해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반성하고 사죄해 왔다.
패전 독일이 국제무대에 중심으로 다시 서게 된 힘은 양심적인 역사인식 때문이었다.
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인 일본을 이웃으로 둔 우리들은, ‘역사의 숙제’가 너무나 무겁다.

이런 일본과 함께 한국은 21세기 동북아시아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전략과 선택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동북아시아 협력적 질서 구축을 주선할 것인가.
이 문제를 외교적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제안을 하겠다. 다소 급진적이고 특이한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같이 생각을 해 보자.
일본과 어떻게 상대하고, 만나고, 공통의 이해를 화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일본이 얘기하는 그네들의 국체(國體)는 천황제(天皇制)이다. 일본인의 대대손손 상징체이자 일본 역사상의 실질 지배 계급이 그들의 통치를 보다 수월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국민 의식의 통합 수단으로서 확립하고 지속시켜 온 것이 천황제다. 현인신(現人神), 만세일계론, 국가신도의 이데올로기적 요소인 천황제는 일본 국민의 의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 침략 전쟁을 수행하게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상징 천황제는 일본 국가의 중심축이다.

이 천황제와 일본 우익과의 분리작업, 천황제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천황제와 거리를 두기도 하는 일본 우익을, 천황과 격리 절연시킬 수 있는 다각도의 아이디어 모색이 필요하다. 일본의 우익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은 뭉쳐야 한다”는 신화를 깨트리는 것을 가정해보자.
일본의 지식인들과 여론 중에는 일본의 우익들이 일본천황을 이용하는 사례를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대개 일본에서 이들은 좌파 지식인들이고 보기 드물게 일본의 전쟁전후의 역사적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건강하고 눈이 밝은 시민들의 연대도 얼마든지 일본에는 있다.
일본의 양심적이고 건강한 세력들과의 연대를 통해 ‘천황’을 우익으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상정이지만, 일본인들이 따르는 그들의 국체인 천황제와의 소통을 통해서 한일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다각도의 일환으로. 

21세기 초입인 2005년 현재, 일본과의 소통도 문제지만, 결국은 한반도를 대립과 갈등, 긴장의 현장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호혜와 협력의 장소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먼저 우리의 국가역량과 외교역량에 달린 문제이다.


또한 국제 외교 이해의 측면에서 21세기 세계의 흐름이 일방적인 ‘힘’의 사용에서 ‘소통’이란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힘으로 쳐들어갔지만 미국의 넘치는 힘은 지금 미국 스스로를 큰 부담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힘’이 한 때는 ‘보장’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계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전장(戰場)에서는 일시적으로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 승리는 지속적인 불안을 미국에 안기는 단초가 됐다.
국제정치에서도 힘은 항상 최우선적인 불문율이었지만 이제 국제정치는 일방의 폭력과 일방의 승리로만 귀착되지 않는다.
오늘 날 세계는 국가간의 관계를 여하히 인간화하는가,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 국가에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공통의 정신에 기초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그만큼 절실해졌다.

이렇듯 세계의 흐름이 아니 좁게는 동북아, 동아시아의 흐름도, 이젠 전쟁과 일방의 약탈로부터 공존과 공생의 감성적 유대라는 문화 예술적인 요소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심으로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이 단일화폐의 초국가적 공동체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화적 동질성이 무엇보다도 견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자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혼합 문화권으로 저마다 독특한 문화를 지닌 한, 중, 일 3국의 경우에는 세계 여타지역보다 경제협력이 더디게 진행되고 반목과 갈등이 상존하는 정치 경제적 교류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중국 대만 문제, 경제적 격차의 문제, 역사 이해 문제 등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과 발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한, 중, 일 3국은 무엇보다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며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이며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고 인적 물적 교류도 빈번하면서 서로간의 경쟁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세계의 공장화하면서 동북아 지역은 활력이 넘치고 도전과 기회가 공존한다.
장차 동북아와 동아시아 지역은 세계를 이끌고 나갈 경제적 생산성과 세계 인구 1/3을 차지하는 인구비중 또한 크다.
이처럼 동북아와 동아시아 지역은 이 지역에 터전을 둔 사람들의 것이지만 동시에 세계 장래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에서 이미 지역권을 넘어선다.

여기에 한류는 동북아, 동아시아의 정서적 공유성을 확인한 촉매자의 역할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인접한 지역권에서 오는 정서적 공감대를 한류가 촉발시켰으며 지역권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한, 중, 일 3국의 문화권을 뛰어넘어 더 넓은 지역권으로 상호 이해의 교차점에서 한류가 작동 가능하다는 것을 내다보게 하면서 더 넓은 커뮤니티의 네트워크로 한류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것이다. 

가야문화와 부여 백제문화의 이식을 통해 문화의 꽃을 피운 일본이 천년 역사를 지나면서 힘의 논리를 기층논리로 받아들이면서 폐쇄적인 사회로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 백년의 시간동안 일본은 힘의 강제와 실현이 그들의 국시(國是)였고 이는 이웃나라에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안기면서 숱한 일본인들 자국민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그런 일본인들이 새삼 한류를 통해 한국인이 일본인에 비해 자연스러운 심성을 지녔고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임을 재발견하는 것이고
일본의 문화처럼 인위적이며 인공적이거나 중국의 예술문화처럼 너무 위압적이고 자연을 압도하는 작위성과 극단적인 위계성을 한국의 전통문화에는 찾을 수 없다고들 얘기한다.

또한 중국인들과 몽골인들도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표현의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을 한류에서 본다” 고 말한다. 그렇다. 여기에 한류의 새로움이 있는 것이고 이 새로움은 한류가 동북아 한자문화권인 한, 중, 일 3국의 공생의 상생성(相生性)으로 발전하면서 더 넓게는 동아시아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장(場)이 될 것을 21세기 새로운 시대가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수 년 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의 공통의 문화 예술 역사 경험의 새로운 발견과 구축의 장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또 지난 100년간의 비극적 동북아, 동아시아 역사를 극복하는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또한 한류가 현재의 모습에서 더 발전되어야 하며 더 세련되고 더 지속적으로 더 구조적으로 더 심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광복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획전문위원을 지난 2월에 스스로 사퇴하기 직전까지, 한, 중, 일 세 정부가 공동 출자하는 가칭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East Asia Broadcasting System-T.V)’ 출범을 줄곧 주창해왔다.

광복 60년을 맞아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이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에게 제안하여 방송 네트워크를 통한 상시적 지속적 문화 교류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출발시키자는 안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정부의 광복 60년 추진사업의 정체성에 동의할 수 없었던 필자는 추진위기획전문위원을 사퇴하면서 광복 60년 사업으로 추진하려던 이 계획은 현재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내 책에서(식물의 열매를 실이라고 한다)도 몇 미디어를 통해서도(주간 동아 등) 몇 번 발표한 바 있는 정책제안으로 한, 중, 일 공통의 커뮤니티로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 있다. 외교 문화의 이니셔티브는 지정학적으로도 그렇고 중, 일의 상관관계를 매개하는 관계를 뛰어넘는 문화외교적 시야의 발상이 요구된다.

한, 중, 일 세 정부가 공동 출자하는 가칭 ‘동북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EABS-T.V)’ 출범을 제안한다.

공존과 번영의 상생적 문화 소통의 장(場)의 계기로 거듭나야
일방의 발신(發信)만이 아닌,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외교문화적 이니셔티브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한류(韓流)에 이어 혐한류(嫌韓流) 현상이 가까운 이웃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한국 대중문화의 파급 현상을 한 철 ‘돈벌이’ 정도로 이해하는 비좁고 얕은 생각으로는 도리어 한류는 역류(逆流)로 흐를 수도 있다.
이는 곧 한국의 사회 문화를 오독(誤讀)하는 결과를 빚거나 일본의 극우세력 등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빌미로 또는 낚시에서 밑밥을 뜻하는 일본말 마키에사(まきえさ)라는 말처럼 큰물고기를 잡기위해 낚시 바늘에 거는 떡밥으로 한류가 이용당하는 문화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한류로 나타나는 현상은 대중 문화적 현상이지만 한류가 아무 근거나 바탕 없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솟아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한류에 대한 인식을 그르쳐서는 곤란하다.

한류의 정체성을 보다 깊이 있게 다듬고 세련시키면서 우리 일방의 발신(發信)만이 아닌,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우리는 한류에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만 한류는 그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이제 일방적인 문화전파가 아닌 소통의 발현이고 발신일 수 있어야 진정한 한류(韓流)이며
또한 문화란 흘러가는 흐름이고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의 영향이 계속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고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참고로 유럽의 아르떼(ARTE)란 텔레비전 채널을 보자,
서로 이웃한 국가이면서도 반목과 전쟁을 일삼던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어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었고 어두운 역사를 불식시키면서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방송에 의한 유럽통합을 추구했던 설립배경 및 경과를 우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르떼(ARTE)란, 1986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콜 수상이 유럽연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독어와 불어 2개 국어로 방영되는 문화방송의 실현을 목적으로 공동 추진한 사업으로 문화, 교양, 역사, 예술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송하는 유럽문화채널 방송이다.
7년간 양국의 관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송의 기본 형식과 내용, 조직과 시설을 갖추어 1992년 5월 30일 첫 방송을 실시하기까지 끈질긴 준비과정이 있었다.

광고방송이 없으며, 예산, 인원, 프로그램 공히 양국이 1/2씩 부담하면서 예산조달은 프랑스는 정부보조금으로, 독일은 수신료로 충당하면서 프로그램은 양국이 분담하여 제작하고, 모든 프로그램은 양국 언어로 방송하는 형식이다.
이 방송은 독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대상으로 방송을 실시하면서 유럽공동체(EU)의 산파역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한, 중, 일 3개국의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EABS-T.V)’ 준비는 동북아와 더 넓게 동아시아까지 포섭하는 교류의 상생적 기틀을 방송을 통해서 지속적 상시적 네트워크로 발전시키자는 안이다.

여기에 한류는 보다 더 창의적인 콘텐츠로 내용이 채워져야 하며
정부는 창의적 문화기반 경제시대로의 진입을 위한 제반 인프라를 하루바삐 제대로 구축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점검 제고하고 가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인류에 결정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창의성을 창발시키는 역량이며
문화나 예술은 이제 국가발전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란 사실을 더 명확하게 국가 정책에서 우선 할 필요가 있는 때가 됐다.

창의성에 기반을 둔 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 국가발전의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에서 21세기에는 ‘창의성’(Creativity)이 국가와 지역의 풍요를 결정하며 국가 사회의 선진화는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문화적 성숙이 뒤따라야 가능해진다.
한류가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에는 소통이란 역할의 증대뿐만이 글로벌시대 핵심 역량을 문화역량이 결정 한다는 국가발전 동력의 차원에서 요청되는 중요성과 그 필요성 때문이다.

이런 입장이나 의미에서라도 필자가 주창하는 한, 중, 일 3개국의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EABS-T.V)’의 설립 준비는 한류의 주체인 한국이 먼저 주도권을 지고 한국 정부는 중, 일 정부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준비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교는 이제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닌 국가 문화 역량의 총체적 뒷받침에서 비롯되는 시대이다.
차기 대통령은 총체적 문화 외교력이 깆는 외교문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