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9 - 허학(虛學)과 내실없는 행동인 가행(假行)이 판을 치고 설쳐대는 오늘의 현실에서 혁신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8-07 08:01     조회 : 7633    
국가의 현재를 냉정하게 살피자.
이 나라는 국가인가 부실조합인가?

개혁, 개혁이란 낱말이 무성하다 못해 이제는 혁신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혁신한국인가?
개혁이란 말조차 낡은 말로 들리는 현실이니
이 현실에 변화를 일으켜야 함을 강조한다고 새삼 혁신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우리사회 진정한 개혁은 미미했고
지금 우리 사회 갈등과 혼란은 거의 극에 이르렀다.
이제는 개혁이란 단어의 진부함을 정권 스스로도 인정했는지,
그 의미는 같지만 좀 더 새롭게 좀 더 강하게 현실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에서 개혁이란 말보다는 혁신이란 말을 불러온 것 같다.
그렇다면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 혁신되어야 하는 건가?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엉터리 학문인 허학(虛學)과 내실없는 행동인 가행(假行)이 판을 치고 설쳐대는 오늘의 현실에서 혁신은 또 다른 허언(虛言)이기 십상이다.
여기에 마냥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제로 걸만한 언어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남용되어 언어 선택도 쉽지 않다.

과연 혁신의 주체는 누구인가? 누가 무엇을 왜? 혁신하고자 하는가?
혹시 작금에 입에 오르내리는 혁신은 혁신의 대상과 주체가 뒤바뀌어 또 다른 말장난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 최대의 문제는 사회적 담론(談論)은 있지만, 그 얘깃거리의 내용과 실체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말과 행동이, 언어와 몸이, 따로 놀고 있음이 문제이다.
우리 사회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말과 행동의 어긋남이나 불일치는 큰 사회적 불행이다.

지금 누가 개혁이나 혁신을 얘기하고 있는가?  바로 위정자들과 절름발이 지식인들, 그들이다.
그들은 그들 삶의 방편으로 개혁과 혁신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 사람들은 개혁과 혁신을 얘기하는 대상에서 자신들은 제외하기 십상이며 그들이 상대하는 대상이란 애꿎은 국민들이다.
오만하고 방자하다.
누가 누구에게 개혁과 혁신을 주문하는가?
빠듯하고 팍팍한 노동과 일상으로 하루하루 삶을 겨우 이어나가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들은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