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17 - 행정신도시 문제, 현대는 ‘공간의 거리’가 아니다. 시간과 시스템의 활력이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8-07 09:10     조회 : 7965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행정도시가 과연 무난하게 진행될까?
차기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충분한 여론 수렴절차 없는 행정 수도 이전의 부당성을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해 왔으나 노무현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수도 이전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는 여론이 엄연한 현실이다.
충남에 신행정도시가 건설되고 수도권의 공공기관 190여 개가 각 지방으로 이전하면 수도권 인구는 120만 명 줄어들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노무현 정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추정되는 사업비 조달 문제, 공기업 노조의 반발, 12개 시도 간 공기업 유치 경쟁에 따른 갈등과 부작용은 엄밀하게 계산된 것일까.
먼저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나?

공공기관 190개를 한꺼번에 옮기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이 이전할 12개 광역시도 가운데 행정도시가 들어설 충남을 제외한 11곳에 ‘혁신도시’라는 이름의 신도시를 조성하기로 했단다.
여기에 투입될 비용을 공공기관이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해서 충당한다는 계획이란다. 
그러나 대형 부동산이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져 나오면 매수자를 찾기 어려워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고 이는 재원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또 근무지가 지방으로 옮김에 따라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하거나 가족들과 딴살림을 차려야 하는 공무원이나 공기업들 가족의 강제이산은 어떻게 하는가.
지금 제 2정부 청사가 있는 대전의 공무원 생활이 어떤가? 가족은 서울에 있고 근무지는 대전이고. 또 다른 강제 이산일뿐이지 않는가. 하드웨어만 옮겨 뭐하나, 소프트 웨어가 다 서울에 있잖은가. 공무원들이 해당 근무지역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사례란 거의 없다.
문제는 지역 균형 발전이란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리만큼 지역 기초가 미비한 것이고 극히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가 얘기하는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 현상을 해소하면 나머지 지역들은 균형 발전이 저절로 된다? 과연?
전국이 일일 생활권인데 과거 권위주의 독재시대처럼 막강한 존재도 아닌 중앙정부가 업무 청사를 옮긴다고 해서 해당 기업과 관련기구, 학교와 심지어 외국인 투자자도 같이 따라서 옮겨갈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하급 산수(算數) 계산법이 아닌가.
국토 도처에 개발붐이 일어날 것이고 정부청사 매각까지 겹친다면 부동산은 과잉 공급될 것인데, 지금 당장의 경제위기를 걱정하면서 닥쳐질 혼란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된 것인가. 벌써 몇십조씩 토지보상금이 지금되면서 그 돈은 어디로 투자되고 있는가, 투기다.

결국 행정 수도를 옮겨서 지역발전을 가져오겠다는 발상이란 60, 70년대 개발 성장 주도형의 시대착오적인 시각이다.
국토 균형발전이란 긍정적인 지향이 도리어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기식인 개발 독재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가.
박정희 유령의 파생 실체가 현실로 다시 나타난 것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수도권 억제를 부르짖더니 갑자기 행정 수도를 옮기니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단다, 이런 맞교환식의 달래기로 국가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이며 더구나 행정 수도를 건설한다는 국가적 중차대한 설계와 정책을 운영해야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현실인식과 실제적 능력은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처음부터 우발적인 선거 공약으로 진행되어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수도 이전에서 ‘행정중심 복합도시’ 이전으로, 그것도 공공연하게 ‘정권을 걸고’ 해내겠다는 작심은 무엇 때문인가.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맹목적으로 지향해야할 체제란 없다. 조악한 신념만으로 가득 차 폭력적인 크고 작은 권력행사로 정책을 몰고 가는 행위는 자기 파괴적이며 ‘고립’만을 초래한다.
 
행정 수도 이전의 진단과 처방은 틀렸다.
불균형 개발 성장 전략의 현실을 또 다른 불균형 강제적 성장 개발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하물며 현대 경제의 운용은 그 방식에서 공간적 설계는 부차적이며 시간의 동시적 설계인 ‘네트워크 경제’이다.
실물 도시를 개발하고 만들어서 국가나 국토의 발전을 균형 잡겠다는 의식에는 전체주의적 혐의를 엿본다.

현대는 ‘공간의 거리’가 아니다.
시간과 시스템의 활력이 관건인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이고  중요한 건 ‘시간’ 이다.
따라서 행정 수도를 옮겨서 경제 공간을 재편성하겠다는 방법은 근대적인 인식의 오류다. 과감하게 재정과 권한을 이양하고 지역에 산재한 대학을 통해서 지역학(地域學)을 계발하고 지역 경제를 실제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정책이 먼저다.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콘크리트 물질이 퇴적되고 아스팔트가 깔리며 강제적으로 인구 이동을 시켜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도시는 삶의 생태적 집적이고 사회 문화적 현상이 자연 발생적으로 집산되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것이다.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행정 수도 이전에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반대한다. 

첫째, 행정 수도 이전 발상은 2003년 대통령 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여당과 어정쩡하게 따라 간 야당의 정치 논리에 매몰되어 충청도 표를 의식한 억지 산물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효율성이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여야의 정략적인 담합이 앞섰고, 이에 따라 이전 대상 기관을 놓고 여야가 협의를 한다면서 재정경제부와 행정자치부를 즉석에서 맞바꾸는 식의 작태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정부 부처들이 서울과 충남 연기-공주 지역으로 나눠지게 됨에 따라 행정기능의 이원화에 따른 여러 문제점이 제대로 분석 제시되지 못했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란 이름으로 수도기능의 일부를 옮기기로 한 것은 수도기능의 양분화를 초래해 결국 막대한 예산의 낭비와 함께 국정운영의 효율화를 방해하며 이는 국가경쟁력을 훼손시키면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

세째, 다시 말하지만 지역 특성의 소프트웨어를 창출시키는 근원적인 국가 국토 균형발전이 아닌, 하드웨어적 강제이식으로 균형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시각은 전근대적 인식의 오류이다. 이는 ‘균형발전’ 정책의 본래 뜻과 지향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정책 혼돈의 산물이다.

네째, 지금 우리는 지역간 불균형만큼이나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계층간 불균형이 더 큰 문제다.
경제를 실질적으로 일으키는 보다 근본적인 노력에 국가예산이 집중 배정되어야 옳다.

다섯째,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남북 분단의 영속화를 전제로 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상정한다면 서울에서 남쪽으로 120km나 떨어진 곳으로 통일 한반도의 수도 기능을 상당 부분 옮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 한반도 통일 의지나 내일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없는 비현실적인 정책이다.

우리는 헌법상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상호 그 권능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는 삼권분립체제 국가이다. 헌법재판소가 일정 사실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수도기능의 일부를 옮기려는 것은, 법치국가임을 정부가 나서서 부정하는 처사다.

노무현 정부에서 얘기한 3대 정책인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신행정수도 건설 등은 그것이 의미하는 근본적인 취지와는 다르게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서 근대적 성장 개발주의의 행동 양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국정운영이나 핵심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국정 철학이 낡았거나 빈곤하며 심지어 부재하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정책 내용과 제안 방식, 정책 실현 행동 방식 등,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과잉된 개혁의식은 있지만 구체적 실천에서는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따라서 노 정부가 성장 개발주의 방식으로 행정 수도까지 옮긴다는 정책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에서, 노 정권의 치명적인 한계를 엿본다.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에 부동산 문제가 또다시 문제된다면 한국 경제를 다시 제대로 운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조(前兆)를 본다.

대통령 출마자들은 이 문제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해법은 있는가, 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