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18 - 한국의 정치세력, 그들에게 과연 총체적 사회현실 문제의 적극적 대안은 있는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8-07 09:17     조회 : 7659    
빈곤과 실업의 확대, 빈부격차와 양극화 심화라는 경제문제가 노무현 정부가 끝나가면서 자살 등의 ‘사회해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2006년에만 2만명 가까운 인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배후에는 불완전 취업자를 포함한 거대한 규모의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시하여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선결하겠다는 실제적인 의지가 정책 실천으로 실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착시적 시각의 경제 전문가들이 선성장이냐 후분배냐는 식의 비논리적 토론으로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그러나 실상에서는 그들식 어법으로도 '분배'를 채택한 적극적 정책이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배반감을 갖게 됐다.

경제정책이 분배 위주로 가서는 성장이 안 된다는 가설은 이치에도 맞지 않으면서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부가 실질적으로 분배를 정책으로 강조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정책을 얘기하는 경우란 거의 아마추어 수준이 아닌가. 
차라리 이 정부들은 기업에 토지 수용권을 인정하는 기업도시 추진 등 기업 편향적인 정부라고 보아야 더 정확하다. 말로만 분배를 강조했지 실질적인 정책과 그 실현은 없었다.
유럽 여러 나라가 GDP 1만 달러였을 때 복지정책과 비교를 해 보아도 턱없이 빈곤한 복지정책이다.

결국 현재까지 보여주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면서 일관성마저 없었다.
과거의 정권에서 변화를 이룩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러나 정책은 일관된 방향을 못잡고 갈팡질팡했고 정부의 정책이 도리어 현실에서는 혼란을 초래한 실정이었다.

이는 곧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며 경제를 이해하는 관점이 당장의 현실에만 핍진(乏盡)되어 편협하며, 체제 개혁적인 경제적 조치는 전혀 접근도 못했음을 뜻한다.

한국의 경제 침체가 구조적인 문제인데 그저 경기에만 신경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이니 근원적인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기울이기가 쉽지 않았다.
단기부양도 중장기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면 바람직한 것이고 특히 소프트웨어 등, 사회 간접 자본에 보다 더 투자를 한다면 일정 부분 재정 적자가 난다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가능한 정책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시야는 닫혀 있었다.

결국 지금의 경제문제는 한국경제의 본질적인 구조 문제에서 해법을 찾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노동시장이나, 소득구조, 실물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구조 조정은 시급하다.

재래 산업은 신산업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고 저부가 가치 산업은 급속히 사양화 됐고 중국의 경제 생산력은 한국의 저부가 가치 산업 경제를 초토화시킨지 오래다. 실직자의 양산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가장 큰 노무현 정부의 실정은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세대, 이념 또는 생각, 계층, 지역이라는 복합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의 측면에서나 위기관리의 능력에서 노무현 정부는 계속적인 실패를 거듭하면서 심지어는 갈등이나 분열, 위기의 단서를 정부 스스로가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한다.

일정 기간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의 위기를 관리하며 국민 여론을 참여시키고 여하히 세론(世論)을 통합시키는 역할에 정부의 입장이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고립되며 국가의 분열과 혼란과 위기를 초래하는 현실이었다면, 이는 정부라는 존재의 어불성설에 다름이 아니다.

‘참여’란 무엇인가? 국민 스스로 동의하는 힘의 결집이 정치적 정책적으로 행사하는 실체이다. 그러나 ‘참여’라는 말을 이 정부를 지칭하는 접두어로 스스럼없이 갖다 붙이기에는 참으로 민망하다.

지금까지의 노무현 정부는 국가 관리 원칙이나 국가 경영 원칙에서 산만했으며 구체적인 정책의 진행에서도 파행적이었고 비효율적이었다. 따라서 ‘참여’의 동기를 이끌어 낼 수가 없었다.

정치란 폭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운영하는 것인데도 노무현 정부는 끼리끼리의 사당적인 행태로 스스로 고립되어 정치나 정책의 활달한 실현이 불가능했다.

일정부분에 한해서만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지난 정권의 정책 관리자나 정책 기술자등을 동원하고 충원했지만, 이는 이 정부가 얘기하는 통합이나 화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고, 등장시킨 사람들이 그만한 역할을 했는가도 의문이며, 헌신과 책임을 보여주기 보다는 공명심을 앞세우는 경우이거나 이 정부의 도덕성을 훼손하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이 대개의 경우였다.
더하여 진보적 지식인들이 일부 청와대나 정책으로 참여했지만 이내 고립되었고 역량에 있어서 역부족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와 정책은 불안을 부추긴다.
국민의 전반적인 지지가 없는 정치와 정책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고립으로 떨어진다.
장기적 안목과 포괄적이며 실천 가능한 정책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갑작스런 위기 상황이 닥치면, 상황적 변수들에 의해서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 왜곡되는 정치적 리더십은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대통령에게는 국가 비전과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세세한 설계도가 과연 있는가를 묻게 된다.

개혁이나 심지어 ‘혁신’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사구시적인 정책안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실용주의적 개혁 실천안이 제대로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우리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공공 정책을 입안하며 집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국가 운영과 사회 통합을 이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다음 정부에는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차기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