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없는, 20.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08-24 20:45     조회 : 14876    
정치는, 정치의 요체는, 정치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삶의 공동체를 정의롭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나날이 살고있는 삶의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사람으로 납득할 만한 환경과 삶의 조건을 기본으로 문제 삼으면서 개개인과 사회전체의 평등한 기회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원리를 사회통합의 이치(理致)로서 해결 하고자 하는 이성적(理性的)인 통로와 방법이 곧 정치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이 이치의 가치이해(價置理解)와 가치실천(價置實踐)을 공고히 할 때 비로소 정치에 대한 이름에 답한다. 따라서 정치적 말과 힘이 진실의 편에 있지 않을 때, 국민의 편에서 정당하게 발휘되고 있지 못할 때, 말은 지리멸렬해지거나 표리부동해 진다.
그 땐 이미 정치는 없다.

국민대중의 삶의 속살이와 무관한 패거리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거나, 절제할 줄 모르는 탐욕의 잡당(雜黨)으로 무리를 지어 사방을 쏘다니는 걸, 이리저리 떼어놓고, 붙여놓고, 갈라놓는, 정치 '게임'을 우린 정치라 할 수 없다.
 
국민들은 누가 어떤 식으로 어떤 형태로 파당(派黨)을 짓는가에는 관심이 없어진지 오래다. 일부 얼 빠진 언론이 끼리끼리 모여 밥먹고 삿대질하는 작태를 정치동향이라고 매일같이 보도 한다면 그건 국민 대다수가 갖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는 아예 무관한 오도된 언론의 정치일 뿐이다..

정치행위와 정치활동이란 것이 그릇된 명분만을 앞세워 뿌리깊은 금력과 권력의 추구를 탐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서로 덮어주고 정당화시키며 강화해 주는 논리의 억지나 너스레를 국민들은 긴 시간 지켜 보았다. 그럴듯한 정치적 과잉된 언변과 수사에서 정치가 비롯되는 것으로 정치인들이 아직까지 알고 있다면, 그건 현실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너무나 간과한 것이며 국민을 함부로 알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정치의 실체란 무엇일까.
정치는 국민들이 마음으로부터 동의하며 국민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힘에서 기초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오늘의 시점에서 과연 어떤 그 누가 정치란 무엇인가하는 실제적인 물음에 정면으로 답할 수 있을까?
정치행위를 단순한 게임이나 공작, 또는 정치 수사에 함몰되는 차원이 아닌, 정당한 실체임을 발현시킬 수 있는자가 누굴까? 

작금의 경제적 재난과 거듭되는 일상의 혼돈에서 국민들은 갈팡질팡한다.
이 힘들어 하는 국민들의 피눈물 앞에, 겸허하게 말을 건네고, 묻고, 따지며, 귀 귀울이는 양식이 바른 정치적 활동의 시작임을 간단하게 체득한 자가 누구일 수 있는가 말이다. .

거듭 얘기하지만,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 아니던가.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와 민을 빠트린채로 경제를 얘기하는 습성에 익숙해졌다.
경제를 걱정하지만 정작 경제의 목적과 수단을 혼돈하면서 경제의 가치이해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배타적으로 돈만을 추구하는 탐욕은 환경의 약탈, 국토의 무차별적인 유린, 인구의 과잉집중, 심지어는 소비하는 물건이나 국가, 사회, 직장, 동료, 가족간의 관계,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마저 극단적인 분열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비이성적인 상황의 만연은 곧 사회적 파국으로 진전되면서 사회적 위기의 정체는 거의 익명적(匿名的)이기까지 하다.

이는 곧 위기의 근본이 오직 경제만의 위기가 아닌, 보다 깊고 지속적인 위기는 문화의 위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위기는 일시적인 충격이나 좁고 얕은 정치적 통제로는 도리어 문제를 그르칠 뿐이다.

문화의 위기는 실존의 위기이며 경제위기 또한 이것에서 파생한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자본의 이기적인 사용행태가 우리들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기형적인 사태를 유발하고 있는가를 목도하면서도 여전히 공동체의 기반에 대한 의문은 등한시되거나 호도되고 있다.

개혁이니 하는 문제도 결국은 인간의 책임과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문제삼는 태도여야 하며 지금 즉시, 여기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과연 실제적인 민주정치의 토대인 삶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에 더 파격적이고 광범위한 이바지를 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제대로 따져보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