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모더니즘 건축은 정당한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1-15 14:09     조회 : 10879    


paris 2004. 1. Pompidu center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는 파리에 오면 꼭 둘러보게 된다.
최근의 현대미술 흐름이나 동향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만 전시기획이나 전시설계 전시개념의 설정에서 빼어난 안목과 실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건축또한 렌조피아노가 중심이 되고 지안프랑코프랑시니, 리처드로저스 등이 설계한 혁명적인 이 건축은 건물의 뼈대인 거대한 철골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공기닥트와 수도관등을 건물 외관 벽면으로 처리하여 건물 내부를 시원하게 넓게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그 이전까지만해도 건물 내부와 천정에 설치하던 장치와 시설을 모두 바깥으로 드러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오사카를 갈 때마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피아노의 칸사이공항을 마주하게된다. 바다위에 떠있는 거대한 은빛 금속의 수평 구조물은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적인 조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렌조피아노가 중심이 되어 설계한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오사카의 칸사이공항. 이 두 건물은 80년대와 90년대 초의 현대건축과 현대미술이 인간의 상상력과 테크놀러지의 결합으로 빚어낸 기념비적인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감탄과 찬사가 뒤따랐고 현대건축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 두 건축물은 역설적이지만 어마어마한 건축비만큼이나 건물 유지비와 보수 관리비가 건축을 지을 때의 경비를 이미 몇배나 초과했고 관리와 보수에서 설계 당시와 비교할 때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계속적인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가치와 실현이 과연 그 근본에서 정당성은 있는가를 질문하게 되며 포스트모던의 지향성이 새롭게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당위가 발생한다.
인류가 수백년 전에 지은 돌과 나무등의 자연재료로 지은 거대한 대형 건축물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오늘날 관리와 보수에서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건축의 허상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비교의 측면이 있다.

현대건축이 인간의 현재와 미래와 어떻게 화해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이나 사색을 건축설계에서부터 생략하거나 소홀히하면서 시위적이며 테크놀러지 중심의 건축물의 소용은 한계에 있음을 뚜렷하게 자각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고층빌딩의 신축을 제한하고 생태건축이나 자연재료 건축을 옹호하는 저층의 건축을 유도하는 이유에는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이 만들고 숭상한 현대문명에 대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태어난 고향이 현대아파트 몇동 몇호이고 무슨무슨 병원이며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새로운 선망의 주거양식이면서 초고층빌딩의 사무실이 일터로 각광받는 현실이라면 그런 생각은 한참 뒤떨어진 후진적인 사고라고 지적할 수도 있어야한다.

어쩌면 미래는 과거에 벌써 있었다.
자원의 재생과 생태적인 환경이 자연스럽게 삶과 어울려 배반하지 않던 그 시절, 바로 그 때의 시간과 공간을 구축하는 건축과 주거형식이 바로 인류가 지금 절실하게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중국 상해 푸동의 초고층빌딩들이 중국 경제발전의 상징이라고 선전하는 현실은 이제 위험스럽고 낡은 사고방식임을 직시할 때가 됐단 말이다.
인간이 자기 손으로 창을 열고 닫으며 살고 일하는 집의 구조나 환경이 확연하게 자기 몸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컴퓨터시스템에 의존하면서 중앙통제식 획일적인 조정방식이 대형사고로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현실은 현대건축의 역설이기도 하다.

난 우리조상들이 옛날에 지은 집들을 보자면 그들이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화해롭게 설계하였는가에 눈물이 다 날정도로 존경스럽기까지하다.
이제 옛날에 이미 미래가 있었다는 자각은 너무 자연스러운 생각의 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