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그리고 투안 두옹 사진 산문집의 출판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1-18 12:58     조회 : 9941    



2004. 1. paris

프랑스 파리는 곳곳에서 흘러들어 온 유민들이 넘쳐나는 도시다.
며칠전에 택시를 탔을 때는 캄보디아 출신 택시운전사였다. 폴포트 군사독재 정권이 자기네 국민들을 300만명이나 학살할 때 구사일생으로 혼자만 빠져나와 파리로 어떻게 어떻게 흘러들었단다.
대가족이 다 몰살당하고 자기만 살아 남아서 여기 파리에서 새로운 핏줄을 시작하고 있단다.
'살아온 게 믿어지지 않는다, 불가사의하다'라고 말했다.
태도가 정중한 신사였다. 파리대학을 다녔고 일본계 은행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일이 꼬여서 택시를 운전한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자기는 한국인을 존경한다고 했다, 꿋꿋하고 의지가 있으며 근면하고 신뢰가 있단다. 오래전에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어떤 젊잖은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은적도 있다고도 했다. 이후 자신은 한국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됐단다.

만난적은 없지만 '파리의 택시 운전수'를 쓴 한겨레신문의 홍세화님이 생각났다.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생활을 했던 홍세화님의 고통도 가혹했지만 그보다 더 기구한 운명과 인생이 이 캄보디아 출신의 운전사였다. 온 가족이 전부 다 처참하게 학살을 당해야만 했으니까.

프랑스가 오랫동안 식민지를 하면서 그 여파로 프랑스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알제리인들로 대표되는 아랍사람들,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와 부족의 사람들, 베트남인들, 그리고 공산권이 어느 날 급작스럽게 무너지면서부터 러시아인들, 동구유럽의 여러나라의 사람들, 여기에 갑자기 더 늘어나는 중국사람들 숫자까지.

투안 두옹도 35년전 할아버지가 베트남에서 가족을 이끌고 프랑스로 이주를 했고, 그 할아버지는 일가를 이루어 파리에서 태어 난 투안이란 손녀까지 두게 된것이다. 지금 나이가 93세가 된다는 투안의 친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의사로 일했고 지금은 베트남 하노이로 다시 돌아가 정정하게 의사로 활동을 계속 한단다. 투안의 집안은 대단한 장수 집안인가 보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건 슬픔이다.
행선지의 정체도 모른채 막막한 걸음을 옮긴다는 건 너무나 두렵운 일이다.
더우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또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자기 고향을 등진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일 것이다.

한국인들도 한때 떠나야만 했던적이 있었다.
중국으로 극동 러시아로 이고지고 짐보따리를 싸들고서 자식새끼들의 손목을 잡고 떠나야만 했던, 그 기구한 처지의 기나긴 세월이 있었다.
자기 의지로 떠나는 게 아니라, 가난에 떠밀려서, 나라를 잃어서 떠나갈 수 밖에 없었던, 그렇게.
이후, 오늘은 더 잘살기 위해서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위해서 심지어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또 그 유랑이 끊이지 않고있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 떠남의 슬픈 정한을 노래로 한 게 아리랑이다.
한 때 나라의 노래로 불려지기도 했던 '아리랑'이란 노래에는 한과 아쉬움도 있지만 눈물과 슬픔을 끊어내고자 하는 절절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고 정서적인 '씻김'이기도 하다.
'나를 두고 떠나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고 했다.
떠나야 하고 떠나 보내야만 하지만, 떠나서는 안되고 떠나지 말라는 이 역설의 노래가 우리 근현대사 바로 그 자체다.
사실 난 이 운명의 자각앞에 똑바로 정면으로 서서 있어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작가로 제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민족이니 국가니 뭐니하는 그 거창하고 거북스런 그런 명제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내 삶의 내 근거에 대한 자각말이다.

난 투안의 민족 베트남인들을 존경한다.
어떤 의미에서 캄보디아 택시운전수가 나에게 한국인을 존경한다고 하듯이 말이다.
내가 투안 두옹에게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도 어쩌면 그 민족의 불굴의 강렬한 인상과 전통문화에 기초하는 삶의 태도, 그것에 대한 경의 인지도 모른다.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우리의 이십대 초반 젊은이들은 이유도 잘 모르고 베트남 백성들을 향해서 총구를 겨눴고 살상을 해야만 했다.
엄청난 화력과 기름범벅의 달러로 무장을 한 명분없는 전쟁의 당사자인 거대한 미국을 쇠꼬챙이같은 원시적인 무기로 맞서 싸우고 끝내는 그 미국을 이겨낸 나라 베트남.

내 사진 산문집 '파리의 투안 두옹'은 어떤 입장에서는 베트남인들에게 헌정하는 사진산문집일 수도 있다. 당신들의 여리고 작은 새같은 투안 두옹의 핏줄을 끊기지 않고 이어온 그 놀라운 생명에 대한 경의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떠난다는 것. 그 기구한 떠남에서도 생은 끝까지 이어진다. 또 비로소 만남에서 생은 거듭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