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힘, Christchurch LAVENDALE Gallery를 다녀오는 길에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12-26 07:06     조회 : 7401    

이제 인류가 나무를 지켜내는가 하는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것 이상으로 실존의 문제가 됐다.

빈곤에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자원 격차 또한 생존의 여탈을 결정한다.
그래서 대안이 꼭 전쟁인가?  크게 어리석다.
이 작은 행성인 지구에서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글로벌리즘이란 바로 생명대(生命帶)의 연장선에 있음을 의미한다.

나무 한 그루의 힘이 생명의 근본일 수 있다.
Christchurch LAVENDALE Gallery 뜨락에서 바라보는 나무의 숲을 찍었고,
다녀오는 길에 싱싱한 대기의 기운을 찍었다.
나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대야말로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대안으로 생각한다.

여기서는 나무로 지은 집들이 100년도 더 넘게 세월을 견뎌내고 있음을 본다.
세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재의 실험적인 건축의 기본 요소들을 미래의 기준으로 만들어 친환경 건축을 보편화시키는 일이다.

영국 정부는 2016년 이후에는 탄소가스 배출이 없는 주택 건설을 목표로 건축법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도 따라서 박차를 가한다고 한다.
21세기 인간이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모색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여러 국가들이 정책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우리 한국도 규모의 아파트만 짓는 어리석음이 계속될 게 아니라, 친자연 환경적인 건축붐을 일대 획기적으로 일으켜야 할 때다. 세계 에너지 소요의 절반이 건물에 소요되며 1/4이 교통수단에 쓰여진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처럼 수입에너지 만으로 그 모든 것을 충당하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화급하게 변화를 일으켜야만 한다. 

이 도시 Christchurch가 나에게 주는 큰 기쁨은,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큰 나무들의 기운을 내가 맞을 수 있음에 있다.
규모의 아파트나 빌딩은 아예 없고 시내 중심에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해봐야 7층 이하, 전체적으로 적당한 크기의 사람의 스케일에 알맞는 목재 건축과 저층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시내에 전차가 다니고 , 자연을 강제하는 식이 아닌, 자연에 포섭되고 포함되는 건축들과 교통체계, 무엇보다도 땅 밑에 넉넉한 수자원이 있어서 가정에서는 돈을 안내고 물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가까운 나라의 도시인 Australia sydney가 물이 귀해 애를 태우는 경우라면, 여기에 자연은 사람을 끌어안을 만큼 넉넉하다는 점이다.
복 받은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