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31일, Christchurch City Library에서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7-12-31 07:20     조회 : 7693    

-시내 도서관 입구
-도서관 3층 창으로 내다 본, 숲과 작은 강의 도시 정경 

31일, 해가 가는 마지막 날 아침에도 시내 도서관은 어김없이 열렸다.
한 해가 끝나는 날, 나는 먼 나라의 도서관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낸다.
이 나라의 곳곳을 찍은 사진 화보집과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한 사진 책들을 들춰보았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장면들을 인물별로 재구성하는 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도서관 창 너머 숲과 흐르는 냇물과 깔끔한 정적(靜寂)을, 긴 시간 지켜본다.

여기엔 일체의 소요(騷擾)가 없다.
며칠 전 파키스탄처럼 폭탄이 터져 전수상 부토가 죽을 때, 옆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까지 120 여명이나 일시에 몰살당하는 일도 없고, 노무현 못지않게 불안한 사람을 새대통령으로 뽑아 ‘한번 해 보라’고 도박을 거는 여기 사람들도 아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충분히 예측되고, 경제는 '나누고 더불어 같이하는' ‘경세제민’의 경제로 복지민생이 안정적이다. 실직자가 일자리를 다시 구할 때까지 매달 150 여만원 내외 상당은 나라가 보전해 준다. 시민을 거지로 만들진 않는 것이다.
준세가 정확하고 공평 과세이기 때문에, 탈세는 법으로 엄중하다. 커피집에서 커피 한잔 마셔도 자동 계산기로 영수증을 내준다. 
 
2007년 나는 ‘대통령 만들기’니 뭐니, 마지막 몇 개월은 참 어수선하게 보냈다.
현실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다짐을 새삼 한다.
서울서 떠나오기 전에 두개의 정당으로부터 국회의원으로 나와 달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게는 낯선 역할이다.
봉사와 헌신으로 주민을 상대하는 그 자리에 나는, 봉사와 헌신을 하기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이기적인 사람이고, 자질도 없고, 내가 갈 길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도 그럴만한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정치는 쓸데없는 공명심이나 삶의 투기(投機)일 수 없다. 정치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준열(峻烈)한 책임감과 다양한 식견(識見),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처신하고,
정확하게 소신껏 판단하며 또 무엇보다도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정치는, 정말, 생각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작업을 빨리 끝냈으면 한다.
이번 1월 중에 바짝 서둘러야겠다.
2007년은 이제 송구(送舊)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