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아침, 이곳 화가분의 안내로 일출(日出)을 맞이하러 바닷가에 나갔다.
인적이 없는 백사장을 한참 걸었다.
파도소리, 바닷새의 아우성, 구름 사이사이로 간간이 얼굴을 내밀 때마다 터지는 햇빛, 남극의 소리와 빛의 찬연(燦然)한 강렬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걸었다.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밀려오고 떠나가는 바다 물결이 세상의 하루를 걷어갔고 새 날을 불러왔다.
명상(冥想)일 뿐이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Christchurch City 시내 중심에 있는 HAGELEY 공원을 또 거닐었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미술을 봤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에 감동으로 와닿는 조각 작품이었다.
간결했다.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작품에 드러나는 정신이 충일(充溢)하고 정결(淨潔) 했다.

저 조각의 여인은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무엇을 찾는가?
기다리는가?
침묵으로, 무엇을 외치는 건가?
다가오라고 부르는 건가? 희망인가?
한참을 서서 조각을 쳐다봤다.
작품 주위에는 작가의 이름도 작품 제목도 알려주는 표식 판이 없다.
이곳에서 공공장소 작품에 ‘알림판’이 없다는 건 드문 일이다. 왜일까?

어쨌든, 작은 연못 그 가장자리 큰 나무아래, 물속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인상이 물위에 반신을 드러내고 팔을 뻗고 있었다,
눈을 가리고 ‘조용히 소리치고’ 있는 저 조각은,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저 조각의 메시지에서, 사람들이 이젠 제대로 길을 찾기를 바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세상의 아이들이 까닭 없이 다치거나 죽지 않고, 가족들이 생이별을 당하지 않고,
가난해도 인간이 위엄을 잃지 않는, 인간의 神에게 인간의 구원을 절규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묻고 있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디로 가는 건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청청한 바람에 실린 햇살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p.s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 전에 여기 아트센터에서 알게 된 디자이너 David Thornley를 만났다. 새해 ‘해피’하란다. 고마운 얘기다. ‘유 투!’-이곳 Christchurch 시내를 다니는 인상적인 노란색의 Shuttle Bus를 디자인한 David Thornley는 무대미술, 건축, 산업디자인 등의 디자이너다. 그가 디자인한 버스를 이 visual diary에서도 곧 소개할 예정이다-그의 말에 의하면 공원에 여인상 조각가는 Sam Mahon(50세, 남성)이라는 이름의 이곳 출신 아티스트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훌륭한 조각과 폐인팅도 같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