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를 배워보지 못했다. 나는 영어를 읽고 말할 줄 모른다.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게을렀다고 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
사실은 젊었을 때부터 뭘 ‘배우는 시간’ 보다는 ‘만드는 시간’으로 인생을 살았다.

영어로 얘기하면, 그냥 ‘내 방식’으로 한다. 주어, 동사, 형용사, 순서도 없다.
단어만 던진다. 오랫동안 아는 스위스인 화상(畵商)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
그는 내 영어가 ‘철학적’이라고 했고, 10년 이상을 만나고 2003년에 두 번째 사진집을 냈던 프랑스 여인 ‘Tuanh’은 ‘미스터 킴은 영어로 말할 때 시인처럼 시를 말한다.’고 농담을 한다.

어떤 때는 정확한 의사교환이 필요한 때가 있다. 외국인하고의 미술 전시관계나 작업관계로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해야 할 때, 제법 깊은 토론을 하고 싶은 때는 영어로 ‘진짜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어제 내 숙소로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진지한 작업으로 이름 있는 아티스트 두 사람이 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긴 시간 나눴다.
설치미술과 입체 조각 등을 하는 Peter Majendie와 Photographic image 아티스트인 Greg McKenzie 이란 친구, 좀 나중에는 한국인 화가 서석원님이 오셔서 4시간이 넘도록 떠들었다. 현대미술, 문명, 자연,... 
이 만남에서도 예의 '내 방식'의 영어는 계속됐다. 아마 듣는 분들이 마음을 여니까 알아듣는 영어지, 정상적인 언어소통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Peter가 아침 10시에 나를 데리러 와서 서화백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들렀다가 같이 자기 작업실로 데려가기로 했다.  조금씩 더 '내 방식'의 영어에 적응해 보겠단다.

말은 그렇고, 영어로 된 책은 완전 까막눈이다.
그래서 문자로만 된 책은 거의 보지 않는다. 꼭 봐야할 때는 사전 찾아가면서 볼 때도 종종은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도서관이나 책방을 가면 사진 있고 그림 있는 책만 본다. 굉장히 빨리 본다. 대강대강 보는 것 같은데 다 본다. 

어제 오후에는 손님들과 헤어지고 글 쓰는 작업이 오늘은 어렵겠다고 생각되어,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사진과 그림책들로 가득 찬 책방을 ‘발견’했다.
영어권이 워낙 범위가 넓어 출판 대상 인구가 광범위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뉴질랜드 출판 지식산업은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내게는 보여진다.

나도 이따금 사진 속에 저 어린이처럼 여기 와서 책을 구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