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uter Graphic 2004. 3.




지금 나라가 어지럽다. 그러나 시끄럽고 어지러울수록 이성(理性)의 눈을 밝혀야 할 때다.
역사는 인간의 삶의 산물이며 반영이다. 그런 입장에서 역사는 정치의 어느 일방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

1천 3백 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원효(元曉)는 분열과 반목의 그 시대를 뚫고 인간의 마음에 골고루 ‘따뜻함과 부드러운’ 화엄(華嚴)의 화평(和平)이 깃들기를 설파한 바 있다.

원효의 철학과 사상과 정신은 어느 특정 교리의 견해로 국한되지 않고 사고의 일반적인 원리로서 보편성을 지닌다.

일찍이 원효는 시와 설화, 노래와 춤의 총체적인 예술의 실연으로 사람들 의식에 원융(圓融)과 화해의 ‘장엄한 빛’,곧 화엄의 체험을 온몸으로 주창한 바 있다.
원효가 저자 거리에서 무애가를 부르고 그의 사상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여 누구든지 같이 즐기면서 동참 참여하게 한 사실은 오늘에 와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효의 시대 이후 1천 3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 삶의 처지는 또 다른 사회 문화적인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문화적인 억압기, 혼돈기, 황폐화의 과정을 극복하는 현실인식이 요청된다.

원융과 화해, 조화와 창의의 원리인 원효 화엄사상에서 그 지혜와 단서를 가져와 작금에 겪는 나라의 분열과 반목, 그 갈등을 치유할 방책을 모색함은 어떨까.

정치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더불어 같이 살아야만 하는 공동체에 정의로움의 가치를 발현하고 그 가치를 나누고 상호성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하게 하는 것에 정치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들 삶에 원칙과 법치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다. 바른 정치는, 생각하고 느끼고 감각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과 마음에 관계하며, 보다 인간적인 삶의 실현에 관여한다. 1천 300년 전 661년에 원효는 깨달았다. 해골이 나뒹구는 토굴 속에서 ‘잠’과 ‘깸’이라는 서로 다른 명제 속에서 그는 인간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인식의 전환을 통해 원효는 인간의 내면 속에 간직되어 있는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 마음은 곧 넉넉한 마음이며 모든 이의 마음과 교통하며 통찰하는 ‘아름다움’의 지향에 놓여져 있었다.

원효의 후손인 우리들은 이제 이 마음을 찾는 작업을, 기초를 더 튼튼히 할 수 있어야 하고 '마음의 정치'와 그 방법을 가다듬어야만 한다. 미움과 증오, 반목과 질시를 넘어서고 끊어내는 '마음의 정치'야 말로 지금 이때 가장 화급하다. 우리들 삶에 활력과 비전을 일깨우는 기회로 원효의 화엄사상을 다시 공부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