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ist 이나래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4-29 17:22     조회 : 10492    

사진 위,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행사 월인천강지곡 연주 남산 3호 턴넬 SBS T.V 뉴스

사진 아래,
2003년 <섬.島.isle> 일본 도오쿄 공연 실황 일본 Fuji T.V 뉴스 


바이올리니스트 이나래의 연주에는 '시적인 표정'이 살아있다.
음역을 이끌어 내는 이나래의 연주에는 다이나믹을 조정하는 절제된 균형감이 있다.
마치 시의 운율과 리듬을 나누듯이 이나래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단정하게 화음이 전해져 들린다.
또 맑고 강한 소리로 치고 올라가는 활의 움직임에서 배우의 살아있는 연기와 아름다운 시를 듣고 보는듯한 느낌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바이올린의 현을 가르는 이나래의 활기 찬 모습에서 연주의 표정은 다분히 '시적'이기도 하고 '배우적'이다.

연주 음악이면서 동시에 시 낭송을 듣는듯한. 그리고 또 다른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는 듯한 바이올린 연주자란 연주자의 각별한 재능에서 비롯된다.

4년전부터 이나래와 작업을 하고 있는 나는 그녀의 재능과 연주에 임하는 성실성에 신뢰를 지니고 있다.

내가 2000년 예술의 해 총괄행사인 '월인천강지곡'이란 행사의 총연출을 맡았을 때 도시환경을 예술적인 환경으로 뒤바꾸는 경험을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남산 3호 턴넬 안의 벽면 그래픽 작업을 시도했다. 나는 그 당시에 연주장이 아닌 남산 3호 턴넬 안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겠느냐고 다분히 엉뚱한 제안을 이나래에게 했고, 이나래는 흔쾌히 내 제안을 따라 주었다.

컴컴한 턴넬 안 양벽면을 그래픽 작업을 하기 직전에 그 미술 전시의 기념연주를 이나래에게 부탁한 것이다.

심야의 시간에 서울시와 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한쪽 차선을 막고, 이나래는 턴넬안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물론 현장의 관객은 없다. 신문사와 텔레비전 방송사 기자가 전부였고 연주 시간은 곡을 한 곡 연주하는 시간이었지만, 턴넬안의 환경은 매캐한 매연과 숨쉬기 어려우리만큼 불결했다. 그러나 이나래는 군말없이 연주의 취지를 이해했고 열심히 연주를 했다.

그 이튿 날 주요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로 이나래의 연주 모습이 보도됐다. 아마 이나래는 "이상한 선생님을 만나서 이상한 장소에서 연주를 다 했다"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차가 다니는 탄넬안에서 연주한 사례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나래가 처음일 것이다.

 2003년 작년에 일본 도오쿄에서 내 연극 <섬.isle>를 공연할 때도 나는 이나래를 무대 위에서 주제음악을 실연으로 연주하게 했다. 공연을 본 일본 관객들의 갈채가 뒤따랐다. 화려하면서도 예리하며 연주에 창조성이 있다고 일본의 음악 전문가들이  칭찬했다. 그러나 난 그보다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일본 여배우들, 그리고 무대스탭들과 화기있게 잘 어울리는 그녀의 성품에 안도하고 무사히 공연을 끝낼 수 있었다.

난 바이올리니스트 이나래에게 오늘 새삼스런 주문을 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의 거죽과 깊이에 대한 사색 말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란 무엇이며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과 눈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할 것을 권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젊은 예술가가 세상에서 꽃을 피우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연주계의 세계는 잘 모르지만 한 연주가의 각광에는 우연과 필연이 있을테고 필연을 이끌어내는 필사의 노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무엇보다도 중요한 태도가 세상의 세속적인 척도와 기준으로 연주를 하고 출세를 꿈꾸는 허위의 연주자가 아니라,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동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들려주고 시를 들려주는, 참다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참 연주자가 되기를 난 이나래에게 기대하고 소망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나래에 대한 내 주문과 기대가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것일까.
내 생각으로 예술작품은 또는 연주자의 아름다움은 감각적 표현으로 구성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깊이와 예술의 깊이가 난 동떨어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고루하고 낡은 생각일까? 아니다. 이즈음 삶을 살면 살수록 나의 이런 생각은 더 공고해 진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도 그렇다. 세상의 현실과 외떨어져 근사한 콘서트장에서 비싼 연주복으로 몸을 감고  매스컴을 타고 대학교수를 하고 음악가니 뭐니하면서 초대권이나 돌리고 하는 음악인들이 범람하는 현실에 대척하여, 차라리 조금은 외롭더라도 묵묵히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한 시대의 움직임과 진정성에 연주가의 재능이 놓여질 때 꽃 피는 연주가고 예술가가 아닌가.

이나래도 이제는 스무살의 재능만을 앞세우는 그 흔한 연주자는 이미 아니다.
이제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성인이다. 시대의 삶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연주자가 될 때 이다.
난 이나래에게서 많은 가능성을 엿본다. 그 가능성은 전적으로 이나래가 세상을 보는 정신과 눈의 깊이에 연유할 것이다. 시대의 삶을 표현하는 연주자 말이다.

사치와 부귀와 허영을 쫒는 것에 그녀의 음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자연의 공경에 공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운에 그녀의 음악이 같이 있기를 나는 바란다.

오랫만에 바이올리니스트 이나래의 연주를 듣게된다.
사진전 '파리의 투안 두옹' 전시장인 가나 인사아트센터 4층에서 5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이나래의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 보게 된다.
벌써 난 설레인다.
"선생님 이번 전시장 연주에서는 연주 때 무슨 옷을 입을까요?"
"나래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 엄숙한 연주장이 아니니까 꼭 연주복을 입을 필요는 없지. 나래가 가끔 입는 검은 츄리닝도 좋고 청바지도 좋고"
"하하"
때때로 나래의 웃음 소리는 꼭 사내 아이같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