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했던 친구의 EPITAPH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8-07-25 17:41     조회 : 23211    

Photo, Kim Sang Soo  2008 Newzealand Christchurch

오늘 낮 시내에서 가까운 지인과의 점심식사 약속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붐볐다. 대학로 혜화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오늘 오후에 있는 공공운수 노동자 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었다.

KTX 로고가 찍힌 노란 색 티셔츠를 입은 가냘픈 여성들도 눈에 띄었고 작업복을 입은 사내들도 보였다. 나도 내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지하철 문이 이내 닫혔고, 나는 손잡이를 붙잡고 선채로 눈을 감았다.
내 사는 동네 지하철역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내렸다.
자전거 앞바퀴에 물이 튀었고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컴퓨터를 켰다.
벌써 몇 달 째다, 내가 해야 할 업인 예술작업은 거의 못하고 있다.
온통 걱정으로 꽉 차있다. 어디 나만 그렇겠는가.
프레시안 기사가 떴다. ‘인터뷰, '촛불집회' 진압 '양심선언' 이길준 이경‘ 기사였다.

참담했다.
이제 스물네 살, 앳된 한 청년의 괴로움이 온전하게 전해져 왔다.
문득 80년 광주에 공수특전단 진압군으로 출동했다가 제대 직후에 스스로 세상을 마감한 내 사랑하는 고등학교 동창친구가 생각났다. 이 이경과 같은 나이 때 였다. 아름다운 친구였다.

스무 살 입대하기 전까지 우린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을 같이 읽었고 King Crimson의 ‘Epitaph’를 듣고 또 들었다. 우울했다. 소주도 그때 처음 마셔봤다.
그리고 좀 덜 우울할 땐 Moody blues의 노래 'Night in white satin'을 들었다. 

나는 대학을 안 갔으니 만 스무 살 이전이지만 78년 가을에 먼저 군 입대를 했고, 친구는 서울대 공대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79년 봄에 입대를 했다.
우린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개 같은 죽은 시간’ 동안, 우린 세상과 절연하고 스스로 유폐하는 심정으로 지내기로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린 세상에 없는 거다’

만 3년 후에 제대를 하면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난 그에게 편지를 부치지도 않았고, 나는 어떤 계절엔 서로 잠시라도 빠져나가겠다는 군대에서 내 휴가를 반납까지 하고 그냥 ‘죽은 그 곳’에 ‘죽은 것처럼’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

난 지독스럽게 그에게 편지를 부치지 않았지만 친구는 나에게 몇 통의 편지를 부쳤다. 그 때가 79년경이었고 이듬해인 80년 5월 나는 육군 상병으로 강원도 철원 산속에서 근무를 했고, 친구는 차출을 받아 공수특전단으로 광주에 출동을 했다.

81년 내가 먼저 제대하고 82년 봄에 그가 제대를 했다.
제대를 하고 다시 만난 내 친구는 거의 말이 없었다. 원래도 말이 적었지만 이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아낀게 아니고 말 자체를 잘 하지 않았다.

착검을 하고 M16 소총에 실탄 장전을 하고 맨 앞줄에서 명령을 받고 서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우린 제대를 했지만 군대 얘긴 서로 나누지 않았다.

이듬해인 82년 여름에 내가 쓰고 연출한 연극을 보러 친구는 극장을 다녀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가을에 세상을 먼저 떠나버렸다.

내 아름다운 친구는 광주에서 진압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는 간신히 몸은 살아서 제대는 했지만 넋은 죽어서 제대를 한 것이다.

이 이경이 인터뷰에서 얘기한 “뭔가 하얗게 탄 것 같았다. 인간성 같은 게...” 이 말이 어쩌면 80년 5월에 내 친구의 심정인지 모른다.

이제 막 단숨에 읽은 ‘진압 '양심선언' 이길준 이경‘의 기사는 내 의식에 고여 있던 깊숙한 상처를 건드렸다.

이십년도 더 이전에, 내 간절하게 사랑을 나누었던 아름답고 젊었던 내 친구를 앗아갔던 그 지옥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놀랍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이건 모독이고 치욕이다.

그렇게 많은 안타까운 생들이 다치고 죽으면서 간신히 세우고 일으킨 연약한 민주주의 세상인데, 80년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인 한 줌의 인간들이 국민들에게 잘 살게 해준다는 감언이설을 동원해 경제를 ‘인질’로 정권을 차고 앉자마자 미친 세상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이 이병의 인터뷰 기사 중에 “뒤에서 밀어대는데 일단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사람들을 광화문까지 계속 밀었다. 그날 아침 해가 뜬 뒤에도 한참동안 계속 진압을 했다. 끝나고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이 인터뷰 기사는 내 마음이 아파왔다. 나도 “하얗게”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가슴속에 불끈 무엇인가 솟았다.
그러나 이 이병은 인터뷰 기사에서 또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6월 한 달간 계속 그랬고, 나는 도피를 시도했다. 나와 똑같은 시민을 향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행동의 정당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더욱 힘들어졌다. 물론 양심의 가책이 제일 컸다.”

난 80년대 세상을 떠난, 이 이병과 같은 나이 때인 만 스물네 살 때인, 내 친구가 만약 80년 5월 그 당시에 그 ‘개 같은 억압적인 진압명령’에 저항할 수 있었던 용기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은 갔겠지만 제대 후 스스로 목숨까지 끊지는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물 넷 청년의 의식은 투명하다.
청청한 이 젊은 나이에, 세상에 살아있음도 축복인데, 이 ‘개 같은 이명박 체제를 지킨다고 개 같은 명령’에 따를 수는 없다.
스물 넷 청년의 실존적 판단은 너무나 당연한 대한민국 청년의 권리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있어서 그간 한 번도 나를 억압하는 것에 자신 있게 저항하고 내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청년의 선택과 언어는 괴로운 갈등이었지만 당당하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먼저 죽은 내 친구의 삶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개 같은 전두환 시절’ 에 죽음으로 끝난 내 친구의 생은.

29만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이는 온갖 사치로 너절한 인생을 겨워 살면서도 하루 두 끼만 먹자고 헛소리를 하고 아직도 시 건방을 떨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정작 전두환이 명령을 받고 출동할 수밖에 없었던 내 사랑하는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30년전 내 사랑했던 친구와 듣던 그 노래를 오늘 다시 듣는다.

King Crimson,  EPITAPH(묘비명)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i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As silence drowns the screams.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When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예언자들이 새겨놓은 벽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악기 위로
태양이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헛된 꿈으로 분열될 때
누구도 월계관을 갖지 못할 겁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 버리듯

금가고 부서진 길을 내가 기어갈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뒤에서 웃을 수도 있을텐데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습니다.
민중이 우리의 장을 지키지 않는다면
지식은 그저 죽음의 친구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pqMmTdZXzuM


Moody blues'Night in white satin'
 
Nights in white satin
Never reaching the end
Letters I'd written
Never meaning to send

하얀 공단에 싸인 밤
결코 끝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가 썻던 편지
보낼 생각도 없었으면서...

Beauty I'd always missed
With these eyes before
Just what the truth is
I can't say anymore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내 두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운 그대
난 항상 그리워 해요
무엇이 진실인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Gazing at people
Some hand in hand
Just what I'm going through
They can't understand

손에 손을 잡은
연인들을 응시해요
내가 당한 봉변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Some try to tell me
Thoughts they cannot defend
Just what you want to be
You'll be in the end
And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어떤 이들은 답변하지도 못할
생각을 말 하려 했어요
결국엔 되고자 하는대로
당신이 될거라면서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Nights in white satin
Never reaching the end
Letters I'd written
Never meaning to send

하얀 공단에 싸인 밤
결코 끝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가 썻던 편지
보낼 생각도 없었으면서...

Beauty I'd always missed
With these eyes before
Just what the truth is
I can't say anymore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내 두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운 그대
난 항상 그리워 해요
무엇이 진실인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http://kr.youtube.com/watch?v=9muzyOd4Lh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