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어긋남이 없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 민중의 분노가 솟구친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1-20 19:17     조회 : 21673    
그렇다, 다시 민중이다.
부당한 이권 집단의 정권에 저항하는 인간의 자존(自尊)으로의 민중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120163534&Section=03

20년도 훨씬 지난 뉴스를 이역 땅 독일 베를린에서 듣는다. 깜짝 놀랐다. 독일시간 아침 7시, 용산 상가 철거민들의 농성, 용역깡패들의 돌진, 경찰특공대 투입. 제복 깡패들의 무차별 폭력, 철거민들의 결사항전, 사망 6명. 의식불명 수명.

생존권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용산 상가 철거민들은 하소연할 방법을 찾았지만 콘크리트 담장 같은 돈과 권력에 언로는 아예 막혔고, 화염병을 만들지 않고는 이젠 생존의 방법이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대화? 누구와,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방책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돈의 힘만 믿는 상대는 막무가내로 몰고 들어왔다. 일찍부터 용역깡패가 동원됐고 '제복 입은 깡패'들은 뒤에서 핑계거리를 찾고 버티고 있었다. 철거민들은 사지로 내몰렸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결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끝내 죽고 싶진 않았지만, 죽음으로 몰려야만 했다. 참담한 현실이다.

이것이 2009년 1월의 생존권을 부르짖는 민중들에 대한 이명박 집단 정권의 시그널이다.

지난 1년, 한 치 어긋남이 없는 수순으로 정확하게 가고 있다.

미루어 충분히 예상한 그대로, 고통과 혼돈, 분열과 갈등을 시민과 대다수 국민들에게 안기면서 민중의 생존을 모욕하고, 1% 소수와 어림잡아 어중이떠중이 30%를 대상으로 정치를 하고 경제를 하는 정권이란, 70%가 넘는 대다수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기에는 시간 문제였다.

이젠 정말 시간만 남았다. 시민의 각성과 분발만이 촉발되는 시간만 남았다.

공장 노동자가 용산의 철거민일 수 있고, 넥타이 매고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면서 애들 학원 보낸다고 아등바등 사는 샐러리맨들이 용산의 철거민이며, 오늘이나 내일을 속수무책으로 모가지가 잘릴 비정규직 800만이 바로 용산 상가 철거민 처지다. 아울러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을 찍은 20대 30대 백수들이 바로 용산 철거민일 수 있다. 이는 너무나 명확한 현실이다.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사건은 실질적인 시민의 탄핵과 대다수 국민의 거부를 받고 있는 이명박 집단 정권이 이미 끝나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갖은 '꼼수'와 저열함을 동원하는 '작태'에서 이명박 집단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다.

이명박 집단 정권의 '법치'의 노골성은 점점 더하여 이명박 집단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미친 탐욕집단의 돈과 권력에 저항하는 그 누구든, 가차 없이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폭력', '명예훼손', '업무방해', 공권력은 옹색한 법적용을 들이댔고 가히 무차별로 날뛴다. 드디어는 '경찰 특공대' 투입이란다.

경제를 살린다는 헛소리에 속아 지난 대선에서 모두들 이명박을 찍었다. 그리고 이명박 집단은 시종일관 궤변과 억지였다. 불확실한 이권집단의 모호한 정체성을 '실용'이란 터무니없는 말로 치장하는 출발에서부터 시작했고 세상 사람들을 미혹(迷惑)하게 하여 속이고자 하는 것에서 이들의 궤변은 국민 일반과 그들 스스로까지 지금 참으로 위태롭게 몰아가고 있다.

나는 벌써 얘기했다. 이명박 집단은 본격적으로 민주시민들을 '압박'하면서 '융단폭격'에 들어갈 것이라고. 그래서 이네들이 얘기하는 가설(假設), 가공(架空)의 국가 만들기를 통해서 이명박 집단의 사적 욕망의 획득에 질주할 것이라고. 그런데? 과연 이네들의 뜻대로 될까?

'전혀'다. 불가능이다.
근본의 땅에 착근되지 못하는 그릇된 정책이나 욕망이란 공중에 뜬 가공(架空)의 한시적 가짜 설치물인 가설(假設)일 뿐이다.
이는 필경 무너진다. 폭풍이 내려치면 스러져 무너진다. 일제히.

용산 재개발 사업에 앞장서는 대기업 회장들의 비리는 사면으로 탕감해 주고 국민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윽박지르면서 법을 빌린 폭력이 '법치'라면 이는 '법치'의 조롱이고 야만적인 행위이다. 이런 '법치'가 권력의 전횡으로 지금 시시각각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이고 칼춤의 시작이 바로 대기업이 '뉴타운' 만든다는 이권 판에 강제로 끌려들어가 철거를 당한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이다.

불도저로 밀듯이 '밀어붙여!'가 이들의 해법이었다. 염치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인 수치심(羞恥心)도 없다. 여기엔 인간의 자존으로 민중의 저항의 방법으로 화염병을 들 수밖엔 없었다. 부당한 공권력에는 일일이 답할 이유가 없고 분명한 반대 어조로 저항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라는 헌법 21조가 하위 법에 의해 사문화되고, '법치'는 공공연한 억압과 통제의 빌미가 되어 헌법을 나서서 뭉개는 자가 "어떤 이유에서든 법치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법치가 없으면 인권도 없고, 자유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말까지 공중을 모아놓고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오늘의 '법치' 현실이란, 너무나 희극적이지만 참담하게도 비극의 현실이다. 오늘 용산의 사건이 이를 상징한다.

자, 오늘의 사태를 잠시 생각해 보자. 이명박의 '돌격'이 초래할 현실이 크게 걱정은 되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 당장 성과가 드러나지 않았던 지난 '촛불'에 회의를 가질 이유는 더구나 없다. 이명박 집단이 바라는 게 민주시민들의 절망과 '촛불'에 대한 회의감이다.

그러니 이제는 어차피 시간 싸움이다. 민주 시민이 이길 수밖엔 없는 싸움이다.

1%의 가진 자들, 뭘 제대로 몰라 허둥대는 30% 가까운 일부 사람들의 '이권조합 조합장' 정도인 이명박을 민주시민 일반이 상대하는 건 그렇게 처절한 싸움은 아니다.

문제는 돈과 정부 조직과 병든 공권력을 이들이 부릴 수 있단 얘기고 갖가지 법으로 시민들을 옭아맬 수 있다는 건 위협적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민주 시민은 반드시 이긴다.

민주 시민 또한 이명박 집단 정권과의 싸움에서 점점 대응의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용산 철거민의 저항의 방법은 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외로운 것이었고 스스로 내몰리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은 연대다. 튼튼한 어깨동무 말이다.

이명박이 버티고 있는 현실의 틀-프레임- 자체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현실적인 불복종 정신 운동 날을 곧 마련해야 한다. 전략과 튼실한 연대를 통해 확연하게 자꾸 내, 외연을 갖추어야 한다. 소모와 낭비를 줄이고 피를 흘리지 않고 싸우자면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은 빠르게 단축되고 있다. 허언일 수가 없다.
정당성을 결(缺)한 정권은 내부부터 자기 균열이 먼저 오고 권력 감당을 못하면서 제풀에 일시에 무너진다. 역사다.

지난 100년, 전쟁을 빼고 쿠데타를 빼면 이 땅의 민주주의 헌정 사상 최악의 정권이 이명박 집단의 정권이다. 국가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사시사방이 혼돈이다.

'민주시민'은 이제 저항의 정신으로 연대해야 한다. 흐르는 강을 죽이고, 숲을 사라지게 하고, 공기는 숨쉬기 어렵게 하겠다는 정권을 시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국민 일반의 마음까지 산란하다.

이제부터는 날마다 일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말해야 한다.
매일같이 '주권재민'을 소리 높여야 한다. 부당한 권력의 탐욕, 지배, 탄압에 저항해야 한다.

날마다 벌어지는 추악한 이명박 집단의 몰골에 목격자가 되어야 하며 '뻔하고 낡아빠진' 저 한심한 '꼼수'를 물리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제대로의 '민중'이 되어야 한다.

국가 이익이란 허구로, 어떻게 교묘한 방식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는가를 주저 없이 폭로해야 하며 2009년 한국의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우리들 시민의 힘으로.

방법이 없다. 이명박 식 틀 자체를 깨는 수밖엔. 그러나 이명박을 뽑은 국민들이다. 이명박 집단에 거의 농락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이다. 이게 또 현실이다. 그래서 작년에 '촛불'이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일 뿐이다. 용산 철거민들이 말했다. 그것도 목숨을 빼앗기면서. 그저 시작일 뿐이다라고. '촛불'은 꺼진 게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젠 '햇불'로 변했다.

오늘 같은 현실일수록 쉽게 지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며, 민주주의를 찾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 현실의 멍에를 지고 나가야만 민주주의를 다시 찾는다.

민주주의를 찾자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가혹하고 무거운 현실에 계속해서 눌리고 압사 당한다. 이제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비겁해지지 않아야 하고, 우리의 내부에 깃들인 인간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떼지어 사는 잡민'들이 아니다. 시민으로의 주권재민일 수 있어야 한다. 현실과, 이 가혹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엔 없다.

그래서 우리들 공동체 삶에 의미를 찾지 않는다면, 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민주주의'는 절대 추상적인 명제가 아니다.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일상의 삶을 이끄는 사회 동력원인(動力原因)이다. 언론의 자유도 교육받을 권리도 일할 권리도, 경제도, 이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정말로 다급하고 위험한 현실이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가 요구한다. 솟구치는 분노는 정연하게 제대로 반듯하게 일어설 수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