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에서 예술작업 하기, 그리고 자전거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1-24 20:44     조회 : 18016    

                          독일 베를린에서 예술작업 하기
                  - 13년 만에 온 독일 베를린, 이제 한 달 열흘 여. 
                                                   
뉴질랜드에서 만난 독일인 지질학자 Jochen Bind의 아주 희미한 소개장을 들고 독일로 온지 이제 한 달 열흘 여. 아무런 사전 연고도 없이 13년 만에 불쑥 다시 온 베를린은 한 겨울이고 몹시 추웠다.
거의 매일 영하 20도씩 수은주가 내려갔고 숙소를 정하지 못한 나는 이리저리 싼 호텔을 전전하다가 겨우 숙소를 정했지만 동거인이 둘이 있는 집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너무나 불편했고 집이 추웠다. 그 집에서 이십일 머물다가 다시 더 싼 호텔로 옮겨야 했고 겨우 일주일 전에야 작은 아파트 겸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숙소를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베를린에서 숙소를 구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무려 한 달 이상을 나는 헤맸다.
 
13년 전, 1995년 초에 파리에서 미술전시를 끝내고 그 때 베를린을 딱 이틀간 다녀간 적이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Gate) 앞에 대로를 걸었다. 그 때도 추웠다.
 
베를린의 겨울은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졌다.
차라리 해는 볼 수도 없다. 자주 눈이 오고 비가 내린다. 매일 이런 날씨다.
여기에,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내 몸과 마음을 더 얼어붙게 했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소식은 이명박 집단에 대한 분노가 한층 더 차올랐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들이란 도대체 이네들이 하는 말이 어느 나라 어떤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네들의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착란을 입을 통해 주절거리면서 함부로 지껄여대고 있었다.
내용도 억지스러웠고 더러웠다. 이들의 언어는 정치적인 언어라고 얘기하기에는
그 '정치성'마저도 졸렬하고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가 그지없다. 

지난 1년 동안 이명박 집단에서 내놓는 언어라는 게 차마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전혀 아닌 것이, 반이성적인 실성한 자들이 큰 확성기로 궤변을 떠들고 있는 것과 같다.
나라의 언어가 시궁창에 뒹굴고 있는데 이는 정말 고역이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일반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도 너무나 해롭다.

경찰이나 겸찰 등 ‘공권력’은 그 존재 이유를 스스로 빠르게 망가트렸고 이제 ‘공’권력이라고 하기에는 ‘공’(公)이란 표현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철저하게 권력의 편에선 주구(走狗)들이고, 그 앞잡이일 뿐이다.

지난 한 달, 내 몸은 멀리 베를린에 있지만 내 의식은 한국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게 고달팠다.
작년 내내, 그리고 올해가 막 시작되는 이 시간까지, 나는 나의 일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어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생업을 뒤로 미루다시피하면서
부당한 권력에 빼앗긴 민주주의를 어떻게 되찾고 지킬 것인가 노심초사하고,
미쳐서 그냥 막 돌아가는 이명박 집단의 행태에 잔뜩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지경이니,
내 나라 정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많은 시민들이 걱정으로 지고 샌다. 자,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어떻게?

지금 내 몸은 베를린에 있다.
잠시라도 이제는 예술작업하는 한 사람으로 내 작업을 좀 시작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산다.
서울의 상황을 내 머리속에서 잊을 수는 없지만, 잠시 좀 숨을 고르고는 싶다.
마저 끝내 서울에 보내야 할 원고도 있고, 여기 베를린에서 하기로 한 작업들을 하고 싶다.
사진 작업도 해야 하고 ‘연극 만들기’도 해야 한다.
 
마침 베를린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고맙게도 내 사진전을 초대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전시를 망설임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사진 스무 점을 인화하고 액자 만드는데 드는 경비가 한국과 비교할 때 거의 두 배 이상의 경비가 나왔다.
4600유로, 우리 돈으로 치자면 950만원이 넘는다.
액자 없이 그냥 사진만 프린트를 해서 전시 벽면에 붙이는 전시를 할까 하다가, 이도 그만 두기로 했다.
내가 그 돈을 들여서 전시를 하기에는 내 사정이 너무나 곤궁했다.
사진 프린트와 액자까지 화랑 측에서 부담하지 않는다면 난 여기서 전시를 할 방법이 현재로는 없다.
그래서 사진 전시는 미루었다. 다시 기회를 만날 때까지.

오래된 방치된 자전거를 발견했다.
자전거 체인을 새로 갈고 브레이크 부속을 교체하고 손보는데 26유로, 우리 돈으로 5만 원쯤 들었다.
15년 된 자전거다. 
녹색 폐인트 칠을 한 자전거는 묵직하게 무거운 자전거다.
브레이크도 폐달을 뒤로 돌려 멈추는 낯선 방식이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베를린 시내는 자전거 도로가 발전되어 있지만 얼어붙은 도로는 미끄럽고,
여기서 알게 된 이 중에서, 도로에 있는 전차 선로 틈새에 자전거 바퀴가 끼는 사고라도 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 했다.
나는 조금씩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전은 뒤로 미루고 당분간 ‘연극 만들기’에 열중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초청한 극단이 여기 베를린에 있는가, 없다.
여기에 오기전에 어떤 준비도 연고도 없었다고 이미 얘기했다.
어디 어느 극장에서 언제 공연할 것인가, 전혀 미지수이고 아직은 모른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작품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번역은 또 누구에게 맡길지.
애초에는 출연배우가 9명 정도 나오는, 좀 규모가 있는 무대작업을 생각했지만
그 작업은 뒤로 미루고 딱 2명의 여배우만 무대에 등장하는, 보다 간단한 연극을 먼저 착수하기로 했다.

공연할 극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연 시기도 제작비도 전혀없는 막연한 방식이지만,
믿음이 있다면 어디서든 공연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먼저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이는 나에게도 새로운 작업방식이다. 모든 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란.
20대 30대 때도 이런 식의 작업은 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독일 말을 전혀 듣거나 하지 못하는 데, 독일에서 이런 작업 방식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너무 무모한 방법은 아닌가.

일단 1991년에 출판한 <김상수 희곡집>의 희곡 중에서 한 작품을 각색과 번역을 생각하다가 완전히 새 작품으로 새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써나가면서 배우를 찾는 캐스팅에 동시에 들어갔다.

세트는 있는가, 없다. 안 세우기로 했다. 소품은 있는가, 안 만들기로 했다.
의상? 아마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옷을 입을 것이다.
돈이 더는 건 전부 안하기로 했다.
일단 나하고 배우 두 명하고 작품을 만들어놓고 조금씩 만나지는 면면을 통해서 이곳에 네트웍을 가동해 나가면서,
공연할 극장도 시기도,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정해나갈 생각이다.
제대로 진행이니 될까.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연극의 내용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어떤 사랑일까.
사람은 누구든 사랑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아끼는 마음, 그 관심과 아낌은 정당한가?
그리고 타인과 진실한 소통을 나눌 수는 있을까?
우연히 만나진 인간들이 각자가 지닌 ‘사랑할 수 있는 요소와 그 잠재성’을 서로 확인하고,
자신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내거나 그런 현실과 만나질 수는 있는 것일까, 과연.

사랑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까.
막연하고 관념적인 사랑이나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인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마음과 육신으로 존재하는 사랑,
욕망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고 분노가 있으며 미움과 원망이 생겨나는 관계,
피가 돌고 눈물이 흐르고 고통이 따르는 사랑,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인간과의 사랑,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도 고통을 느끼게 되고,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살아있는 인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던 가치들 또는 생각들이나 삶의 방식들,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면서,
다른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영혼이나 정신, 그리고 밖으로 드러난 육체를 통해서,
자신의 실재하는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알아차리는 상황이란,
그런 감정이란 무엇이고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자신을 보다 더 알아내거나 깨닫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영영 낯설고 껍데기뿐인 생으로 마감하는 건 아닐까.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말이다.

사랑이란 자기가 믿고 있는 완고함을 깨트리면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찾는  것일 수도 있는데,
자기 안에 아집(我執)과 독선을 제거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기 안의 자신의 진짜’를 발견해내는 것이 아닐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이란, 인간들 상호간의 이해,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태도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 같은,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도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세상 거의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사랑이라는 얘기다.
참으로 나에게는 요원한 문제다.

그래서 또 질문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정말 무엇인가?
사랑은 주는 것인데, 정작 무엇을 주는 것인가? 자기 영혼이나 생명을 주는가?
결국 의지와 결심의 문제인가. 또 무엇을 의지하고 결심하는가?
바로 다른 사람의 중심에서 다른 사람과의 일체감을 도모할 것을 부단히 의지하고 결심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활짝 개방함으로써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모두 변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닌가.

왜, 나는 베를린에서 하는 이 연극에 이성애가 아닌 여배우 두 사람을 등장시켜 동성애에 주목하는가.
베를린에는 동성애자들이 수두룩하게 많아서 그것에 착안한 것인가.
이성애자인 나는, '아름다운 여성'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인가.

어쨌든 이 연극을 통한 내 질문은, 과연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명제일 수 있는가, 이다. 
이 질문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이번 연극작업을 통해서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유럽에서. 일단은 독일어로 번역을 해서 여기 베를린에서 먼저 무대에 올릴 생각이다.

여전히 나에게 베를린은 어둠과 빛의 도시다.
여기 베를린에서 나는 조금씩 빛을 보거나 빛을 찾고자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