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연극 작업 - 2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4-02 01:16     조회 : 15292    
나는 독일어를 읽고 말하지 못한다.
카페같은 장소에서 혼자 있을 때 사방에서 독일어가 시끄럽게 들리지만
말 뜻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이 쓰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독일어를 하겠다는, 또는 배우겠다는 '의지'가 지금은 전혀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한국어로 쓴 내 연극 텍스트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에서 독일 배우들과 무대에 올릴려고 한다.
지금 내가 처한 조건은 전문 번역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쓴 내 희곡이 과연 정확한 독일어로 제대로 번역이 되고 있는지조차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런 '욕망'을 버렸다고 해야 맞는 내 현실이다.
배우들과 리허설이 시작되면 하나하나씩 자연스럽게 '확인'되리라 나는 내다본다.
내가 쓴 텍스트가 리허설 중에 독일어로 진행되면서 독일어는 나에게 '언어'로 들려오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경험도 그랬다.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섬.isle.島>을 일본인 배우들과 준비할 때도 지금처럼 나는 일본어를 몰랐다. 영어로 소통도 거의 불가능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무대는 세웠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에 텍스트의 일본어는 나에게 '언어'로 들려왔고 일본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연극 예술의 힘이다. 낯선 언어가 읽혀지는 힘. 

나와 만나진 독일 배우들은 물론 한국어를 모른다.
심지어 나를 만나기 이전에는 한국이 지구 어디쯤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잘 몰랐고 한국어가 중국어와 일본어가 아닌 별개의 언어이고 '한글'의 모양이나 글꼴은 처음 본다고 했다.

많은 독일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하면 따라오는 질문이 '남쪽에서 왔니, 복쪽에서 왔니?' 하고 바로 묻는다.

나와 연극 작업을 같이 하기로 마음을 정한 배우들은 '마음'을 열고서 만나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상대를 향해서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입장에서 사태나 상황을 보고자 하는 태도다.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문화나 언어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생겨나기 시작했고 내가 말하는 한국어가 무슨 의미인지 자꾸 캐묻는다. 영어로 말이다.

여기 독일의 배우들은 영어가 훌륭하다. 내가 떠듬거리고 이어가는 영어를 금새 알아차린다. '열린 마음' 때문이리라.

현재는 '이중(二重)의 언어인 영어가 소통의 방식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미지수다. 이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