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중’을 말한다 - 화가 권순철 미학의 보편성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4-16 18:00     조회 : 24927    

다시 ‘민중’을 말한다. 

                            - 화가 권순철 미학의 보편성을 나는 읽는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416182623&Section=04

지난 30여년 이상의 세월을 화가 권순철(65)은 줄곧 ‘인물’을 그려왔다.

권순철이 그리는 인물들은 한국인들, 그리고 권순철이 20년간 체재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진 다양한 인물들과 그가 ‘현실’을 살면서 만난 무수한 ‘인물’들이 그의 미술작업의 대상들이다.

권순철의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이는 바로 ‘고통’에 처한 인물들이다.
따라서 권순철의 ‘인물’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의 인물’인 '민중'들이면서 동시에 나날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삶을 살고 있는 현재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의 여기저기 도처(到處)에서 사람들이 비명(悲鳴)을 지르고 있다.
위기다. 세상이 위기이고 인간이 곧 위기다.
인간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의 수많은 생명들이 비닐봉지처럼 함부로 취급되면서 끝내는 인간 자체가 멸(滅)할 수도 있다는 다양한 시그널이 시시각각 내 눈과 귀에는 들리고 보인다.
그런데도 이 위기의 근본을 사람들은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지식과 문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잘 포장된 야만(野蠻)으로 뾰족한 창검(槍劍)이 인간의 심장을 바로 정통으로 찌를 기세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감성은 너무나 충분히 마비되어 이를 분간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나는 1995년 겨울, 파리 볼로뉴 '아스날 작업실'에서 권순철을 처음 만났다.
이후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인간’을 그리고 있는 권순철 화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의 ‘고통’을 그리는 권순철 전사(戰士)의 외롭고 긴 악전고투의 모습은 2009년 4월 오늘, 파리에서 새삼 나를, 나 자신의 마음과 사람으로의 내 자질을 반성하게 한다.

그래서 권순철 ’선생님’의 그림에서 나는 내 삶을 배우게 된다.   

아래 글은 9년 전인 2000년에 발간된 본인의 책 <착한 사람들의 분노> - 사회 문화 예술 비평집에 실렸던 '권순철론'을 다시 이곳에 새로 고쳐 옮겨 싣는다.
권순철 '선생님'의 예술작업에 대한 이해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이다. (필자 주註)


인간의 교만을 반성하게 하는 그림

권순철의 작업에서 나는 인간 존재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끈덕진 생철학(生哲學)의 밀착을 보고 느낀다. 그가 인간을 파고드는 힘에는 근원적 세계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가 표현하는 ‘얼굴’과 ‘넋’은 한국인의 투철한 삶을 말하고 있으면서 비단 한국인만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세계 인간들인 '민중'에 대한 동시대적 표현을 본다.

그의 미술 표현은 면밀한 필치와 단순하고 기초적이지만 강렬한 우연성을 거의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나는 그래서 그의 그림의 주제만큼이나 그가 그림에서 표현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그가 담백하게 여백으로 남겨 놓는 화면의 부분에는 텅 비어있는 화면이 ‘그냥 비어있음’의 단순함이 아니라, 그림의 표현에서 정신적인 영역과 인과 관계가 있다. 이 '정신'은 곧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일깨우는 '정신'이고 죽음을 삶의 불가결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문제삼는 '정신'이다. 다시말해 세상의 중심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인간의 능력에 상관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은 채움과 비움에 있어서 ‘비움’을 통해 ‘정신’을 드러내면서 삶과 삶의 긴장을 다시 일깨운다.

이는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화면 전체가 존재의 ‘울림’으로 상관한다. 이 ‘울림’은 인간인 '민중'의 보편적인 울음과 슬픔의 정화(淨化)다.

그의 그림은 사람의 근원을 생각하게 해주고 사람들이 길을 잃고 있음을 보여 준다.

내용적으로 그의 그림에는 인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 파괴되거나 파기(破棄)되었고, 착하고 맑고 선한 것들은 한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역설이 스며있다.
이는 그의 그림에서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인간의 교만을 유추하게도 한다. 

인간의 교만과 건방짐을 거부하는 권순철 그림에서  인간에 대한 ‘울림’에는 낱낱의 인간들, 한국인 또는 세계 ‘민중’들의 삶의 무게와 삶의 몫이 엄정하게 실려 있음을 나는 본다.
권순철은 줄곧 이것을 응시(凝視)했다.

인간의 본질을 향한 화가의 치열함에는 '민중'의 개별성을 내포하는 보편의 외연(外延)이 있음을 그는 냉철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말하는 민중, 그리고 삶의 연대

그가 그림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인 '민중'들은 하나같이 무력해 보이기도 하지만 끈덕지고 '강한 착함'을 지닌 ‘민중’들이다.
인간들이 구축한 세계로부터 소외된 ‘민중’의 현실에 대한 진술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은 서로 서로 연대해야만 한다는 세상에의 ‘참여’로의 권순철의 세상 인식을 말해 준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인간에 대한 호소와 외침, 괴로움이 많은 사바세계(娑婆世界)로부터 저 너머 깨끗한 땅을 기다리는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한 조용한 조응(調應)과 관조(觀照)가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 도저히 피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이 세상 현실에 대해 정면으로 직각(直角)으로 즉각으로 대면할 것을 그는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권순철 그림의 추상과 구체가 같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그림의 보편성이 담보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오랫동안 줄기차게 대상으로 하는 ‘얼굴’, ‘넋’의 그림에는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인간들인 '민중'들의 질곡과 어두운 상황에 놓여진 얼굴을 포착(捕捉)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어느 프랑스인 미술 평론가가 말했듯이 "권순철의 그림에는 네덜란드 농부를 그린 반 고흐 그림과 유사성이 있다.”고 한 얘기는 바로 이 상황을 드러내고 있는 그림의 보편성에 있다.

인류의 흔들림-빈곤과 불안정-을 표현하는 그에게서 나는, 미술이 인간과 사회의 현장을 파헤쳐 표현할 수도 있다는 강한 믿음을 암시받는다. 따라서 그에게는 인간의 윤리적 담화와 정치적ㆍ민중적 담화가 함께 표현되고 있다. 이것에서 나는 미술이 현실에 상관하는 작가로의 근본을 의식하는 그의 집념을 보게 되면서 삶과 예술의 밀접한 상관에 대한 그의 믿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거침없는 표현, 화가의 힘 

이런 믿음에서 그의 붓놀림은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다.
빠른 붓놀림과 뚜렷하게 자리 잡은 형상 대신 번지고 퍼지고 뒤섞인 질감의 표현들, 그리고 움직임들, 나누어지는 색채들, 불균형한 채색, 그러나 갑작스럽고 조밀한 밀도, 붓을 밀고 나가면서 퍼져 나간 거친 자국들은 권순철 그만의 특유성이 있다.
이 특유성과 보편성은 하나의 울림으로서 등가 관계(等價關係)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때로는 그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표정에서 완고한 치밀함을 엿보기도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그의 모습과 그의 그림의 표현과 형식에서 다시 한 번 세상에 대한 그의 단단한 응시를 나는 보는 것이다.

이제 권순철의 작업은 점점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다. 한국인을 넘어서서 더 깊게 더 넓게 세상의 인간을 향하고 있다. 권순철이 갖는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그림을 통한 현실개입은 한국인에만 유독 국한되지 않음은 이미 밝혔다. 이제 그는 모든 인간들을 향해서 세상에 참여하고 의사를 소통할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권순철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듯 하는 사람들의 저 표정들의 표현에서 나는, ‘민중’을 보는 것과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정체성을 끈질기게 되묻는 권순철의 시각과 방식을 보는 것이다.

참으로 너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한국의 들녘에서 그리고 서울의 외진 한 구석에서 가냘픈 그러나 억센 사람들의 표정, 또한 파리의 지하철역에 쓰러져 있는 저 남루한 사람들과 파리 북쪽의 벼룩시장에서 보았던 조막손의 반벙어리 애꾸 할머니의 기막히게 무기력한 표정에서, 그리고 그가 청년시절 파고다 공원에서 하늘을 쳐다보던 어두운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을 수없이 연필로 그리고 또 그리면서, 그들 일상에 겹겹이 스러져간 시간을 파고 또 파는 인각(印刻)의 그림을 통해, 그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인간들의 넋을 우리 모두에게 붙들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인간의 ‘얼굴’과 ‘넋’을 통해 세상을 넓게 투시하고자 하는 원근감의 내용적인 구성과 인간 본성의 구심의 정점을 향하는 충돌이 한꺼번에 한 화폭에서 같이 제시되고 있다.
이렇듯 그의 그림은 캔버스를 떠나 현실에 작용한다.

그의 보편성은 그림을 통해서 인간을 보여 주는 그의 능력과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능력을 즉각 연결시킨 것에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쉽지만 참으로 어렵다. 이 어려움이란 사람의 사람다운 자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려움은 보는 이들에게 경건함으로 다가온다.

2009년 4월 프랑스 파리, 이제 그의 작업은 그가 몸담고 있는 프랑스 파리든 한국이든 실제로 그가 처한 공간의 논리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그는 그가 몸을 두고 살고 있는 곳에서 그만의 공간, 그 이상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그의 미학적인 지향이 더 깊어지고 견실할 것을 그가 의식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내 삶을 자꾸 배운다.
 

권순철 화가 약력
권 순 철 (Kwun Sun Cheol)
1944    창원출생
        서울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1981    서울미술관, 서울
1986    서울미술대전, 서울
1988    스톡홀름 미술대전, 스톡홀름
          가나화랑, 서울
1990    "FORUM", 뒤셀도르프
1991    가나화랑, 서울
          타도라브와르 화랑, 파리
1992    프랑크 하넬 화랑, 프랑크푸르트
1993    제4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서울
1996    가나화랑, 서울
1997    갤러리 가나보부르, 파리
1998    가나화랑, 서울
2000    갤러리 가나보부르, 파리
2000    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2000년 이후, 서울 등 수다한 국제 미술전 초대

                                                                          2009. 4. 프랑스 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