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냐? 부시냐? 미국의 진짜 얼굴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8-04 21:14     조회 : 14509    

사진-존 케리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12월 선거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 NEWS WEEK




매일매일 일상의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우리가 살고있는 삶이 삶의 가치지향이나 본래의 뜻과는 거의 무관하게 어떤 명확하지 않은 <막강한 힘>에 의해서 끌려가거나 지배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미 알게모르게 익숙해져버려서 그 <막강한 힘>에 대해 거의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겠지만.

동북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살고있고 살아야만하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미국>은 지금 현재 그 <막강한 힘>의 실체다.
과거 수백년이상 중국이 한국인에게 그랬고 반세기전에는 일본이 역시 한국인에게 그런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단연 미국이다.

만약에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개표로 우왕좌왕만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미국 대법원이 공화당의 부시의 손을 들어주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클린턴의 후임으로 민주당의 엘 고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세계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이라크에서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미동맹의 줄서기로 이라크 전장에까지 파견을 나가야만 했을까? 대 북한과의 문제는 또 어땠을까? 지금처럼 남북교류가 난맥상으로 빠져들기만 했을까?

 미국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고 미국의 다음 번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서 한국과 한국인은 어쩌면 희비의 쌍곡선을 계속 그려야만 하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과연 누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현재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미국에 가서 사진이나 찍고 밥이나 얻어먹고..." 마치 큰 나라에 조공이나 가는듯 했던 종전의 한국의 정치인들이 보여주던 태도와는 뚜렷하게 차별을 두겠다는듯이 호기있게 말했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면 자주외교로 주체적인 국가정체성을 보여주리라는 순진한 기대나 생각을 한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필리핀 노동자 한 사람의 목슴을 구하기 위해서 자국군대를 이라크 전장에서 곧바로 철수시키는 필리핀 여성 대통령 아로요 만큼의 결단은 미치지못하더래도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김선일의 목이 잘린 시신을 봉합하기도 이전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당연히 파견될 것이라는 '불변의 원칙'을 서둘러 공포해야만 하는 한국정부의 현실은 너무나 옹졸함에 있어서 코미디적 비극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들이 가슴을 치고 배신감을 느끼기에는 <외국자본이탈>이라는 위협 앞에서는 그도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는 것이었나. 대통령에 당선되고 청와대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계현실의 무자비한 패권과 비정한 세계권력의 정체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무지했고 동시에 무기력함을 저절로 느낄수 밖에 없는 지경이었을까.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로 편제되는 세계화 경제현실에서 저절로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비참, 말이다.

국익, 즉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한 개인, 김선일은 죽어야하고 또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죽음들도 국익을 위해서는 마땅히 죽을수도 있다는 저 노골적인 정치적 파행의 주장은 교묘하게도 한미동맹과 혈맹의 이름으로 옹호되어야 하며 결코 회의에 빠져서는 안되는 신앙이된지 오래다.
미국은 일찍이 한국의 종교이고 미국이란 귀신은 한국인의 신흥교주가 된지 이미 오래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 개개인의 희생은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 셈법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로 인한 심성의 굴절과 황폐, 이후 동족상잔의 무차별한 전쟁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생명에 대한 경시를 넘어서서 생명쯤은 하고, 마구 함부로 생명이 취급된다. "물론 김선일의 죽음은 슬프고 가혹한 일이지요. 그러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도..." 운운 한다.

세계 정세의 변덕과 미국 정치의 변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지금 한국인들은 집단적으로 정신분열적인 삶을 살고있다. 일상의 삶은 비닐봉지처럼 조악하고 거칠고 피폐하며 문화는 잡민적(雜民的)인 수준에서 허덕이고 오직 돈벌이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면서 삐뚤어진 현실에 낑겨서 저마다 힘겹게 살고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식민지 종주국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식민지 후예들은 사회전체를 온통 그들이 보고 온 그들 나름대로의 미국식-미국 한복판에서 정면으로 볼수도 없는 처지인 주제에-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미국인 그들보다도 더 앞장섰다. 후진적이고 비개발적이며 무식하며 함부로 취급되어도 무방한 열등한 종족이 바로 자신들의 동족이었다.

 경제제일주의 경제만능주의의 작금의 한국사회 현실은 소위 얘기하는 "선진국식  미국식"인 디지털방식 경제게임으로 빠르게 편입되어 한국인 스스로 인터넷 강국 운운하면서 잽싸게 신식민지로의 자가가동(自家可動) 되면서 이 새로운 식민지 현실로의 그 전환을 한국인들 손으로 앞당겨 버렸다.

 한국의 일부 매스미디어는 국민들이 현재의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부시 현 정부를 반대, 비판하는 태도와 미국 국가를 비판하는 태도와의 구별과 구분을 아예 눈 감기고자 '아둔한' 국민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막가는 세상이라도 6.25 때 피를 나눈 혈맹인 미국을 반대할 수는 없다" 는 식으로 말이다. 
 
 아, 우리들의(?) 미국, 그 미국은 과연 어떤 얼굴일까?
아마 미국 국경 안에서는 언론과 종교의 자유, 인종차별 반대는 물론이고 사상과 예술표현의 자유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모범적인 법령과 사회적 기준을 마련했다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국경밖에서 미국은 어떤가? 사담후세인을 지지하고 사담후세인에게 미사일 제조법과 달러원조와 생화학무기 제작법을 일러주고 나서 또 사담후세인이 이라크 국민들을 폭압과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갈 때는 짐짓 못본체하다가, 갑자기 이제와서는 사담후세인을 축출하고 이라크라는 국가에게 '미국식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겠다고 탱크와 미사일과 팬텀폭격기로 무고한 이라크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얼마나 인간사회에 유용한 것인지를 이라크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주문할수도 있다는 미국의 오만은 이라크 국민들이 정작 미국식 민주주의를 경험하기도 이전에 미국이 쏜 폭탄에 터져 아라크 국민들은 죽고 마는 현실이다.

 테러리즘을 박멸하겠다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의 단초는 그 출발부터가 모순 투성이였다.
전쟁을 통해서 테러분자를 응징한다고?
이는 마치 바늘을 찾겠다고 초가집에 불을 지르는 어리석음과 무슨 차이일까?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몇백명 몇천명씩 죽어 나가고, 죄없는 평범한 이라크 민중들은 영문도 모르고 불에 타죽고,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어린이들까지도 죽어야만 하는, 이 가혹한 미국의 전쟁은?

 전쟁이 분노를 증폭시키고 전쟁이 수많은 자생적 테러분자를 양산시킴과 아울러 그들의 자국민인 미국민을 테러분자를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검열 감시하게되는 이 아이러니한 미국의 체제는 너무 자승자박적이지 않은가?

 왜? 무엇때문에? 미국의 부시정부는 이 자가당착을 스스로 감행하고자 하는가?
미국의 얼굴은 진짜 무엇이기에, 그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은폐되어 있기에, 이런 미친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거대 석유산업과 무기산업체들 그리고 거대 미디어 체제와 이들 한 통속 그물망(네트워크)들은 미국의 국경밖 대외정책을 조종하고 지배하면서 탐욕적인 경제적 이윤을 추구한다.
질기고 정교하며 정밀한 프로그램을 동반한, 섬뜩한 이들의 욕망앞에는 이라크도 북한도 아프카니스탄도 삽십년전에 베트남도 남아메리카의 몇몇국가들과 아프리카도, 심지어 혈맹(?)인 한국도 무차별 대상일수 있다.

'문명의 충돌'이니 하는 사이비 문명비평가 새뮤얼헌팅턴의 충동질과 선과 악의 대결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내세우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충동질에 점점 익숙해지는 현실을 어떻게 정말 깨트릴 수 있을까?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