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프랑스 파리에 젊은 한국인 예술인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7-20 21:52     조회 : 28711    

이정우 photo - '파리 북역'
홍유경 설치미술 - '기억'

                            흔들리고 흔들리는, 그러나 중심을 찾으려는 
                        - 내가 만난 프랑스 파리에 젊은 한국인 예술인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721162823&Section=04
 
나는 오는 10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사진전 준비와 사진작업을 파리에서 진행하다가, 일정에 따라 연극 작업과 설치미술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이십일 전에 다시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비록 내 몸은 나라 밖에 있지만 한국 뉴스를 접할 때마다 수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그렇듯이, 나도 매일매일 괴로운 마음으로 지낸다.

온갖 부정과 비리 의혹을 받아온 검찰총장 후보자가 여론에 밀려서 후보를 사퇴했다지만 '영혼없는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된 이가, 한 나라의 국가 사회 법정의를 책임지고 운용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착란으로 국회 청문회장에 버젓이 앉아서 의원들의 질의에 엉터리 답변을 하고 있는 너무나 위험한 현실이란, 그리고 이런 자를 검찰총장으로 자신있게 임명하겠다는 자의 사고란, 이는 상상 이상으로 나라가 이미 파국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책임있는 공직을 맡은 이가 그 자리를 이용하여 사적인 탐욕을 거리낌없이 추구한단 사실이 공공연한 일상의 현실이 되고만 내 나라, 더구나 용산 강제철거시민사태에서 보듯이 테러진압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철거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삶의 터전에서 시민들을 강제로 쫒아내는 한국에서의 오늘 현실이란, 내가 지금 마물고 있는 여기 독일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이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타협하고 양보하며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인권 실현을 일상으로부터 지켜나가는 노력이 최우선인 이곳 독일의 사회원칙과 비교할 때 내 나라의 현실은 참으로 서글퍼다.
 
여기 독일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협상과 타협이 기본이다. 많이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만 일방으로 힘이 동원되는 경우란 여기에선 가능하지 않다. 
사회란 '더불어 같이 사는 구성체'라는 '사회계약'의 정신이 시민들 의식에 철저하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여기 독일에서 테러진압 경찰을 동원하여 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건, 일개 정권의 퇴출 차원이 아니라 애초에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독일 사회와 비교할 때, 같은 21세기를 사는 내 나라는 사회 구성 요건의 가장 기초인 사람의 기본인권이 예사로 침해당하는 참담한 인권현실이니, 너무나 절망적이기까지하다. 
비정상적이고 무교양하며 심지어 영악하되 무지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런 사익추구집단이 정권을 잡고나서 무차별로 감행하는 갖가지 횡포란, 마치 도적떼 조직에 나라 전체가 잡아먹히느냐 마느냐하는 절박한 지경이 되고만 오늘의 한국 현실이다.
 
자, 이런 내 나라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내 몸은 비록 나라 밖에 나와 있지만, 내 의식은 내 나라 현실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어 늘 고통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과연 어떻게? 내 모든 유럽 일정을 다 취소하고 귀국해서 보잘 것 없는 내 힘이라도 사람들과 보태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적(敵)'들과 싸운다?
 
예술이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지상의 삶속에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명제는, 어쩌면 내 예술 작업을 잠시 유보하고라도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것이 꼭 정답인 것만 같다.
 
이렇듯이 괴로운 심정의 일상에서도 지난 번 프랑스 파리에 머물 때는 반가운 얼굴들과 나는 해후(邂逅)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젊은 한국인 예술인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것이다. 보다 넓고 보다 자유로운 예술표현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여러가지 어려운 삶의 조건에서도 꿋꿋하게 정진하고 있는 젊은 한국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들 젊은 예술인들을 보면서 오래전에 내가 경험한 파리에서의 예술 작업과 미술 전시를 기억하게 됐다.
 

1995년 파리에서의 첫 미술전시의 기억
 
1995년이니까 지금부터 14년전이다. 나는 그 해 3월 파리에서 첫 미술전시를 했다. 서울이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어는 전혀 하지 못하고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지금도 여전히 그렇다-현재는 문을 닫은 갤러리에서 간신히 첫 미술전시를 열 수 있었다. 가진 돈이 너무 없어서 처음의 구상대로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궁리끝에 내 이름자가 '한자(漢子)'로 새겨져 있는 흰 바탕의 빈 200자 원고지를 사진으로 찍어, 원고지를 검은색 바탕으로 만들고 가로세로 흰줄만 나타난 빈 검은 원고지를 대량 복사하여 전시장 벽에 가득 붙였고, 시꺼먼 콜타르가 덕지덕지 묻은 4미터 3미터 길이의 철도 갱목 두개를 구하여-이 갱목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차로 실어나르는 철도레일의 버팀목이었을까-가로 세로로 배치, 십자가를 만들고, 파리 경찰청에서 빌린 빨갛고 노랗고 파란 불빛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교통 신호등을 그 십자가 중앙에 박았다.
 
미술 전시의 제목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프랑스어로 붙였다. 당시 유럽은 유고내전의 후유증으로 발칸반도에서의 피빛이 사방으로 퍼져가고 있었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전 유고연방 대통령)의 잔악한 전쟁범죄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을 때였다.
나는 미술전시를 통해 당시 유럽인들에게 질문했다. 세계 2차 대전에서만 무려 5천만명 이상이나 죽음으로 이끌고도 모자라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전쟁으로 내몰아야야만 하는지를, '당신들 유럽인들은 정작 어디에 있는가?'라고 나는 묻고 있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건 외톨이로 단독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대를 통해 세상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를, 나는 내 검은 원고지를 통해서 미술전시에서 말하고자 했다.
 
원고지는 네모난 작은 하나의 칸에 하나의 단어를 적는 종이이다. 하나의 칸이 점점 둘 셋 칸으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집적해 나간다. 한 칸의 네모난 박스는 전체를 향해서 배열된다. 한 칸은 언어를, 존재를 말하는 가장 기초의 단위이다. 이 한 칸들이 전체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질서바른 판도(domain)를 만들어 나간다. 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곧 전체의 반향(resonance)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검은색의 어두운 원고지는 침묵의 원고지다. 글을 쓸 수없는 검은 원고지는 시각적으로 변용되어 미니멀(minimal)한 모노크롬(monochrome)으로 변화되어 관객들을 명상(瞑想)으로 이끌었다.   
 
또 십자가에 교통신호를 박은 것은 종교에 영적(靈的)인 시그널(signal)과 일상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지하시요, 가시요, 돌아가시요'의 교통신호등의 시그널과의 그 '차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유럽인들에게 십자가는 일상의 오브제(objet)인 교통신호등 만큼이나 과연 쓸모있는 것인가를 되묻는 식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럽사람들에겐 대단히 도발적인 미술전시였다. 이방인인 나 자신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세상의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한 것이다.
 
1995년 당시에도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때 전시를 앞두고 내가 본 50일 간의 파리에도 인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 십자가의 상징을 떠받드는 인간들은 신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십자가는 그저 하나의 상징적 기호에 불과한 것인가? 교통신호등 보다도 가치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십자가인가? 그리고 지금 신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이 당시 내 미술전시의 주제였다.
 
14년의 세월이 지나, 오늘 파리에서 한국인 젊은 예술가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내 지난 30대 중반의 과거 시간이 스치면서, 이방인의 곤란한 처지에서도 아르바이트등을 하며 고군분투 생활히면서 미술의 진정성에 관심을 두며 제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예술을 실현하고 있는 이정우(37, 사진. 조각), 이나비(31, 비디오아트), 정광화(35, 설치미술), 홍유경(34, 설치미술)의 미술작업을 대면하면서 나는 새삼 '밝은 빛'을 보았다.
 
이 '밝은 빛'이란, 네 사람의 미술작업이 개인의 관념적인 작업으로만 머물고 그치는 것이 아닌, 미술 작업을 공공의 영역을 대상으로 인간의 '기억의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 사람의 공통점이 있으며, 일찍부터 미술이 장식이 되고 돈이 되기를 안달하는 요즘 세태와는 뚜렷한 판별점이 드러나면서, 놓여진 자기 처지에서 진지하게 자기 상황과 맞부딪치는 '너무나 당연한 작가로의 열정'에 네 사람의 미술작가가 합치되는 지점에 있다는 점이었다.
 

이정우의 '흔들리는' 사진
 
먼저 조각을 하면서 사진작가을 하는 이정우(37)는 한국에 있었을 때는 조각으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파리로 와서는 집중적으로 사진작업을 하기 시작했단다. 
그가  조각을 해오면서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었던, 특정 공간에 놓여질 수밖에 없는 '조각'이란 운명은 과연 무엇인가. 그는 "건축은 공간을 창조하는 위치에 있고 조각은 창조된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로 전락해버린" 현상에 의문을 가졌단다. "조각의 한계는 이미 여기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제 사진들은 조각을 하며 느꼈던 건축과의 종속관계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조각을 만들어 아무 것도 없는 들판이나 초원 위에서 전시를 한다면 모를까, 도심의 인공 어떤 공간에서 전시를 해도 실재 공간 안에 조각을 놓아야 한다면, 그건 건축가의 영향을 피할 수 없으며 공간의 제약속에 놓여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평면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지죠."
 
사진은 평면의 작업이고 실재의 공간과 시간의 피사체를 이미지로 찍는 작업이지만 현실의 제약성을 뛰어넘는 작업이란 얘기다. 사진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인화지등 평면의 이미지란 체적의 실재 공간을 크게 점유하진 않지만, 사진 이미지를 감상하는 관객의 상상속에서는 얼마든지 공간은 확대되고 변형되고 깊어질 수도 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의도적으로 피사체를 흔들리게 표현한다. "존재는 물리적으로도 시간의 허락에 의해서 잠시 그 자리를 차지할 뿐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음을 표현합니다." 이는 존재하는 인간이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순간 순간 존재하는 것이며 잠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겐 인간의 기억속에서만 모든 것이 존재할 뿐이란 의미를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지워지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흔들린다.
 
그는 사진 작업을 하면서 서구의 미술 중에서 특히 인상파의 그림들에 주목했다고 했다. 인상파 화가들인 드가, 마네, 모네, 반 고호, 고야, 르느와르 등이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는 특징인 순간의 빛에 영향을 받은 사물이나 환경의 인상(Impression)에 주목한 것이야말로 사진의 과학성이자 특성과 만나지는 것이며 전통적인 사진들이 세밀하고 정밀한 실재묘사에 주력한 것이라면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자신의 사진은 "인상파들의 실존주의에 대한 오마쥬일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사적으로는 사실주의 이후에 인상주의가 출현한 것에 주목해 아날로그 사진에서 디지털시대의 흐름을 저는 초사실주의시대로 보고 신인상파의 출현이라는 해석을 해봅니다" 고 말한다. 
 
그는 최근에 사진을 찍는 공간의 대상으로 '공공장소'를 자주 선택한다고 했다. 파리의 북역(北驛)을 찍은 것도 "기술적으로는 빛이 좋아서 그 장소를 선택한 것도 있지만 일단 공공장소 중 한 장소를 선택한 겁니다. 공공장소는 모두의 공간이자 누구의 공간도 아닌 곳이므로 저의 사진 주제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고성이나 박물관을 찍은 사진들도 과거에는 절대사유지였던 곳들이었지만 현재는 공공화된 장소이기 때문에 촬영한 것들입니다." 라고 했다.
 
이정우의 사진에서 나는 인간의 존재 상황을 포착하는 의지를 읽는다.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 인간들의 삶의 리얼리티란 이처럼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마냥 흔들리는' 것에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의 틈이며 그런 간극(間隙)에서 안타까운 생들이 '흔들리는 것' 이다.

 
기억의 체계로 '시간', 정광화의 설치미술 
 
사람의 '기억'의 문제를 미술작업을 통해 형상화, 물질화 시켜 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를 지난 10년간 줄곧 자기 작업의 중심 주제로 삼은 정광화(35)의 설치미술을 보면서 '흔들리는 기억'에 '시간의 체계'를 부여하여 존재의 중심을 잡으려는 미술적인 시도를 하는 정광화에게서 나는 '우직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 가능성이란 정광화가 한 사람의 작가로 일관되고 성실하게 작업에 정진하는 태도에 있다. 얕고 빠르고 금새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이즈음의 세태에서 정광화는 반대로 고집스럽게 보일만큼 자기 세계로의 몰입에 묵묵하게 열중한다. 이런 우직함이야말로 당연한 작가의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그렇게 흔치않다.       
 
정광화의 설치미술을 보자면 높이 80cm 가량의, 가로 세로 2,3m의 사각형의 입방체가 경사면 기울기로 기울어져 서로 다른 높이의 등고선 평면에는 마치 폭격을 맞아 산산이 부서진 콘크리트 가루처럼 보이는, 흰 석고 가루더미와 흰 석고로 형상을 떤 갖가지 일상적인 물건들이나 물체들이 석고 가루에 파묻혀 있거나 삐죽 튀어나와 놓여져 있는데, 이는 마치 9.11 테러 때 뉴욕의 마천루가 형상도 없이 부서져내리고 기괴한 몰골로 문명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던 모습들과 흡사해 보였다.

평평했던 평면이 거대한 힘에 뒤틀리고 구겨져 원래 놓여져 있던 물건들이나 형상들은 본래의 모습들로부터 멀어져 전혀 다른 형상으로 쳐박혀 있는 듯한 정경은 정광화의 미술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스산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면서 근본적인 원래의 형상은 어떤 무엇이었던가를 반추(反芻)하게끔 한다.
 
정광화는 자기 주변에 있는 흔한 여러가지 물건들 중에서 자신의 기억들과 상관하는 물건들을 일차 재료로 선택한다. 그 물건들 중에는 돌, 나뭇가지, 일기장, 미니 자동차등, 일상의 물건들이 그의 선택에 의해 석고나 투명한 재료로 떠내어 변화를 주는 식인데, 그것들의 형상은 변형되거나 서로 뒤섞이거나 엉키고 부서지면서 형상은 원래의 모습에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변화를 일으키기 직전의 형상에 대한 기억과 변화를 일으킨 이후의 형상은 시간적으로 순차적인 것이지만 석고등으로 형상을 떠내는 작업이 되풀이 되는 동안에 최초의 형상은 부서지면서 처음의 원래 형상에 대한 '기억을 떠내기'하는 개념적인 작업으로 진전된다. 이런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서 입방체의 흰 석고 평면에 석고로 덧씌워진 물건들이나 물체들이 놓여지고 그것들이 놓였던 흰 석고 가루 위의 자욱과 물건이나 물체의 형상은 마치 기억의 체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정광화의 작업에서 형상을 석고로 떠내어 입방체에 배치하는 작업이란, 그의 미술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의미에서는 '기억의 떠내기'를 통해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보았던 시각적 이미지란 때때로는 형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라할지라도 우리들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전혀 다른 이미지들은 아니라는 의미이며, 또 그 반대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오던 형상도 전혀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형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볼 때, 우리가 사물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란 어떤 불변의 고정체가 아님을 염두에 두어 '기억의 개방성'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사실 정광화의 온통 흰 색인 설치미술을 보면서 그가 기억을 형상화 물질화하여 시간의 변화를 통한 기억의 문제를 화두로 삼는 작업의 과정에 유의하기 보다는 그의 미술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첫 인상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인상은 인간의 문명에 묵시록(黙示錄)적인-Apocalypse Now-현상을 펼쳐보이는 것으로 보여졌는데, 그 정체는 나에게는 '문명의 슬픔'이었다.

나는 그의 미술을 보면서 불현듯 도어저(The Doors)의 끝(The End)이라는 노랫말이 기억났던 것은 뭣 때문이었을까. 그저 감상이었던가.
 
이것이 끝이다, 아름다운 친구여
이것이 마지막이다, 내 하나뿐인 친구여
우리가 공들여 세운 계획의 종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종말  안락도 경악도 없는 종말, 종말
이제 다시는 너의 눈을 바라 볼 수 없겠지.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Of our elaborate plans, the end
Of everything that stands, the end
No safety or surprise, the end,  the end
I'll never look into your eyes again. - 1967 

 
이나비의 비디오 아트, 불멸을 꿈꾸는 도시, 그러나 흔들리는 기억의 영혼들
 
프랑스 르-프레느와(Le Fresnoy) (http://www.le-fresnoy.tm.fr)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 학생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이나비(31)는 서울에서는 의상 디자이너로 출발했다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와서는 의상디자인에서 영상으로 예술작업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했다.

르-프레느와의 특징인 미술작품의 제작과 실험을 첨단 테크놀로지 장비와 멀티미디어 장비를 갖추고 예술작가들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프랑스 국가가 국가적인 노력으로 현대예술을 뒷받침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에 국제적인 경쟁을 뚫고 입학한 이나비는 자신이 서울에 있을 때는 보지도 못했고 만져볼 수도 없었던 장비를 챙겨들고 서울을 찾아와 서울이란 도시를 비디오 아트로 표현했다고 했다. 
 
르-프레느와 교육 목표가 각 부분별 예술을 통괄적으로 엮어내는 이론적, 미학적 조화와 각 분야를 초월한 종합 예술을 추구하며 21세기 표현 방식의 진화를 꾀하는 것에 있음은 지난번 칼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를 보면서, 프랑스 르-프레느와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에서" 내용에서 소개한 바 있다.
 
내가 르-프레느와(Le Fresnoy)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를 방문한 지난 6월 14일, 학생들과 교수들인 초대예술가들이 지난 한 학기동안 실험하고 연구하며 제작한 여러 미술 프로젝트들을 파노라마(Panorama)라는 주제아래 전시결과로 보여주고 있었고, 그 전시 작품중에 10분짜리 길이의 이나비의 비디오 아트 '진실, 그리고 전화목소리 Realisation and Phone Tapping'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영상 화면은 여러 목소리의 겹치는 전화하는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어지럽게 들려오면서 기괴한 아파트와 빌딩들이 멀리 수평으로 펼쳐지면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서서히 도시의 거대한 아파트 덩어리들과 차량의 미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밤중의 서울의 도심을 잡아나간다.

이나비가 잡은 영상에 등장하는 서울이란 도시의 밤 정경은 인류가 만든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 참으로 기이하고 크로테스크하게 비쳐졌다.
괴물체의 어마어마한 군집(群集)으로 보인다고 할까, 이나비가 보여주는 서울이란 도시는 아름답거나 인간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인간들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마구 뒤섞여 낑겨서 겨우 숨을 쉬고 살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도심의 밤 정경이 흐르는 동안에 전화 통화를 하는 목소리들은 이어졌다 끊어졌다, 고민과 걱정을 늘어놓는, 너무나 익숙한 감정 표현의 한국어, 뒤이어 웃음소리와 이어지는 울음소리, 흡사 인간의 가냘픈 영혼들이 불밝힌 콘크리트 사이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와 흘러다니는듯한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사태는 이미 인간을 덮쳤고 불안한 기억의 영혼들인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한숨과 불빛만으로 겨우 지탱할 수 밖에 없는 정경들.
 
화면은 2, 3분여를 남겨놓고 화면 속에 등장하는 차량의 불빛들과 빌딩의 불빛들, 어둠속에 도시에 빛을 밝히던 모든 불빛들은 하나하나씩 세밀하게 컴퓨터 그래픽으로 갭쳐(capture) 되면서 모아지고, 그 불빛들은 화려한 군무(群舞)를 추듯이 화면 전체를 휘감고 돌아다닌다. 이는 불빛의 화려한 장관(壯觀)이었고 인간 영혼의 마지막 아우성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보던 관객들은 너나할 것없이 모두 숨을 죽이고 가만히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빛들의 춤, 정점(頂點)에서 화면은 다시 이른 아침 도시의 너무나 을씨년스런 정경을 냉정하게 비추면서 영상은 끝났다.
 
영상 상영이 끝나고, 나는 작가 이나비에게 영상의 끝 장면을 굳이 아침의 정경으로 마감하기 보다는, 불꽃들의 군무에서 끝을 냈다면 더 감동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질문을 했다. 이나비는 내 말이 제대로 잘 들리지 않았는지 작업 과정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고 있었다.
 
비디오아티스트 이나비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 비디오에서 볼 수 있었듯,  불안하게 흔들리며 두들기듯이Tapping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미세하게 저녁에서 한 밤중으로 관객을 리드하는 영상처럼, 인간들 기억의 덧없는 순간, 어디에 어떻게,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흔들리고 흔들리는' 사람들 삶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이란, '흔들리고 흔들리는, 그러나 중심을 찾으려는' 그녀의 작가로의 한층 가열찬 노력에서 더 선명한 '빛'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뻗어나가는 기억의 이 편과 저 편, 홍유경의 미술작업
 
설치미술 작가 홍유경(34)은 지난 8년간의 파리 생활에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단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작년 프랑스 지방 님스(Nimes)에서 열린 '유럽 젊은 작가 비엔날레' 에서 관객이었던 프랑스인 한 사람이 홍유경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다가와서는 그녀의 작품을 보고 '한국을 느꼈다'고 말했단다, 꿈틀대며 외부로 뻗어나가는 작품의 형상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나 현상'과 많이 닮았단다.
그럼, 그녀가 말하는 '한국', '한국인'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의미일까?

좁게는 작가 홍유경의 처지에서 살피자면, 프랑스 파리에서 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과 미술작업은 전략적이고 치열하지 않고는 살아나가기가, 또는 생활해 나가는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하면, 남에서 왔니? 북에서 왔니? 라는 질문에서부터,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껴서 '한국어'가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다르게 따로 존재한다는 설명까지, 길게 '한국'을 말해주거나 한국에 대해서 들려주어야 하는 '수고'를-물론 듣겠다는 의지가 있는 경우에만 그나마-해야만 한다.
 
이런 현실에서 홍유경의 작품을 본 프랑스 사람이 '꿈틀대며 외부로 뻗어나가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나 현상'은 한 프랑스인이 자기 나름대로 한국을 이해하고 느끼는 감상이나 정서일수도 있을 것이고 또 외부에 비치는 한국의 나라 이미지가 역동성으로 비쳐보일 수도 있으니, 이 시각이 반드시 맞고 틀림을 떠나서라도 닥쳐진 상황과 마주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홍유경의 작가적 기질과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형상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흡사 유목민들의 생의 방식에서 보이는 '꿈틀대며 외부로 뻗어나가는' 그런 모습처럼,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움직이는 특성인 기동성(機動性)의 면모를 작가의 미술작업의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 홍유경이 미술작업을 해나가면서 무용학교에 따로 입학하여 신체를 직접 움직이는 '공부'에 열중한다든지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왕의 가치와 방식에 매이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는 행동과 사고 방식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지적 활동을 활달하게 함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홍유경의 설치미술 작품 중에서 특히 내가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일상의 현실에 작품의 형상을 직접 '던지는', 또는 '개입'시키는 식으로 현실의 실재 상황과 가상(假想)으로 만들어 낸 작품 또는 상황을 나란히 병치시키면서 보여주는 작가의 작업 방식이다. 즉 실재와 복사본의 구별을 한 눈에 판독할 수 있도록 보여주면서도 가짜와 진짜, 실재와 허구의 차이가 무엇이며 기억의 이 편과 저 편은 무엇으로 어떻게 구분짓고 있는가를 관객에게 묻는다.
 
가짜와 진짜, 진짜는 아니고 가짜지만 진짜와의 '차이'란? 이런 것들을 구별하고 분류하려는 노력들조차 차라리 애매해져서 진(眞)과 위(僞)의 구별에서 진짜와 가짜의 구별을 아예 없애버리면서 진짜 제대로 무엇을 보고 있다는 ‘지각’의 관습에까지 일대 의문을 던지는 홍유경의 설치미술은 우리가 보고 있고, 본다는 방식에, 근원적인 질문을 갖게한다.
 
그녀의 작품 fuchisa pink 003의 경우, 파리 골목 어느 집 담벼락에 버려진 쓰레기 바로 옆에, 작가는 핑크 색의 가짜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놓아둠으로써 가짜와 진짜 쓰레기의 표상은 구분이 흐릿해지고-어떤 이들에겐 둘다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도 여겨질 수도 있지만-작가의 의도된 쓰레기와 그냥 버려진 쓰레기의 '차이'란, 그래서 이 표상의 형식에서 사유는 '일상'의 현상으로 여기게 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효과로서 '기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면서, 작가는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생각하게 강요하는 표현을 동원하면서, 보여지는 표상, 그 자체 속에서 부분적으로 어떤 시각의 변주와 그 가능성을 보도록 의도한다. 
 
작품 fuchisa pink 001은 작가가 핑크색의 인형을 어깨에 나란히 메고 치장, 또는 변장한 미술이다. 이 미술의 표상은 외적 요소들을 서로 결합시키면서 또 다른 내재성으로 변형시킨다. 미술을 보는 관객들의 기억은 보태면서 확장되며 변형된다. 이는 시각적 이미지와 그 조건들을 다른 그 무엇으로 바꾸어 놓으려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변장된 모습, 즉 모사물을 보여주면서, 반복적으로는 그 모사물의 모습을 또다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내재화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상, 기억, 기억의 이 편과 저 편, 그 역할을 드러내어보임으로써, 사유나 기억이란 이미 기왕의 기억들에 의해서 이미 주어지고 만들어진 인상들을 근거로 보여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보여짐은 때때로 뒤집혀 엎어지거나 뒤집어 엎어 전복(顚覆)시킴으로써 사유의 독단성과 폭력성을 경계하자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파리에서 내가 만난 4명의 젊은 한국인 예술가들을 소개하면서,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밝은 빛'을 보았다고 말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밝은 빛'은 짙은 어둠에서 더 빛나기 마련이다. 이 어둠은 이들 작가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프랑스 파리가 이들의 작업 조건에서는 여러 어려움에 처해진 상황을 빗대어 말한 것이고, 갖가지 닥치는 어려움 속에  때로는 '흔들리고 흔들리겠지만' 그러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기에, 이들의 어둠은 내일을 여는 어둠이고, 스스로 헤쳐나가 '밝은 빛'을 내다 볼 어둠이기 때문에, 꼭 닫힌 그런 어둠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