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주문하지 말자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9-07-23 02:53     조회 : 19745    

                                  불가능을 주문하지 말자
                          - 오늘 또 100년의 무덤, 그 실체를 보았다.

국회 날치기 '언론법', 오늘 우리는 이명박 집단의 실체를 본 것이다.
지난 100년, 누가 과연 이 나라를 가렴주구(苛斂誅求)했고, 누가 이 나라를 욕되게 하는지를 똑 바로 본 것이다.

그렇다. 이명박이의 역할은 한국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명박 집단의 정체를 제대로 드러낸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 역사는 지난 100년간 지난한 고통의 역사였다. 누가 적(敵)인지, 누가 진정 한국인인지, 마구 헷갈리는 그런 역사였다. 이명박 덕택에 이젠 선명해 졌다.

자, 더 이상 이명박에게 그리고 이명박 집단에게 불가능을 주문하지 말자.
그들이 어느날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를 말고 주문을 하지말자. 

작년 6월 19일 이명박은 촛불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사과와 송구를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담화에서 말했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라고 했다.
이후 그의 말과 행동은 딴판이었다. 

오늘 국회 ‘언론법’ 날치기는 이명박 집단의 시체를 묻는 구덩이 그 묘혈(墓穴)을 스스로 판 것이다. 이명박이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 운운은 말 장난이었다.
말 장난도 이 지경이면 거의 착란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언론법을 반대했다. 이명박이도 이명박이 집단도 이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네들은 막무가내로 밀어  부쳤다.
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비가 퍼붓는 날, 신부님들과 스님들이 3배 1보를 했다.
용산철거시민 유가족들이 학살에 대한 이명박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3보 1배를 했지만 경찰을 동원해 강제로 틀어 막았다.
과연 이명박이나 이명박 집단이 3보 1배의 의미를 알까?
무지하고, 영악하고, 더러운, 이 집단의 ‘아해(兒孩 )들이 왜, 무엇 때문에 신부님들과 스님들이 3보 1배를 하는지 알수가 없다. 또한 그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다.

자, 자, 이제부터는 지혜로워야 한다.
3보 1배 이젠 그만하자.
우리의 진정성은 이네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이제부터 아끼자. 단식(斷食)도 하지말자.
도대체 의미를 모르는 대상들에게 자꾸 친절할 이유란 더 없다.

정말 필요한 건 몽둥이다. 결코 촛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몽둥이를 들기에는 검,경찰의 공권력을 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이건 소모다.
흥분도 하지말자. 보다 냉철하자.
우리가 보다 더 치밀해야 이명박 집단을 물리칠 수 있다.
지난 100년의 억울함은 분노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실력을 보여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난 100년간은. 그래서 정의는 패퇴했었다.

이젠 그 때가 아니다. 치밀하게 엄청난 ‘공포’를 이들에게 몸으로 체험시켜야 할 때다. 
바로 불복종 운동이다.
비폭력 불복종으로 이들에게 진정한 ‘공포’를 비로소 가르쳐야 할 때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더 따지고 내야 한다. 내가 낸 세금이 도독놈들이 뜯어가지 않는지 이젠  살펴야만 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를 가라고 영장이 나오면, 과연 이런 현실의 나라를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질문해야만 한다. 지켜야 할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지 일당 독재체제가 아니다.

벌금을 내라고 하면, 내가 낼 벌금이 합당한지와 낼 벌금이 어떻게 쓰일지를 잘근잘근 캐물어봐야 한다.

국민과 시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검, 경찰은 시민의, 국민의, 검,경찰이 이미 아니다. 이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명박 집단을 보위하는 검,경찰은 국민과 시민의 편에 선 검, 경찰이 아니다. 그 정체가 다 드러났다. 따라서 이 또한 불복종이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전투경찰을 하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국민과 시민들에게 전투를 강요하는 집단의 명령은 무조건 거부해야만 한다. 전투경찰은 적과 전투하는 것이지 국민과 시민들에게 전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한국인들끼리 어렵고 괴롭다 하여 피곤과 곤고(困苦)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명박 집단의 인간들을 ‘한국인들’이라고 칭하기에는 지난 100년의 고달픔이 이미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지만 스스로 한국인임을 포기한 자들이다. 
이명박이 일본국 왕을 만났을 때 감읍(感泣)하여 고개 숙인 사실이란 이명박이 실체가 딱 그것이다.

이명박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그는 한국인임을 더럽히고 부정하고 심지어 한국인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다 한국인은 아니다. 자기 조국을 존경하고 자기와 같은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을 존중할 때만이 비로소 한국인이다.
이명박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이나 그런 식의 불가능을 더 이상은 주문하지 말자.

여하히 지혜롭게 비폭력적으로 이들 집단에게 ‘공포’를 일러줄 때가 됐다.
지난 100년, 그 두꺼운 무덤의 실체가 완연하게 드러났음을 이제 알았으니 우리는 우리를 아끼고 자중(自重)하면서 지혜로워야 한다.
또 한번 더 말한다. 그 방법은 불복종이다.
이제부터 세세한 불복종 매뉴얼을 짜서 하나하나 몸으로 실천할 때다.
그래서 ‘공포’에는 더 큰 ‘공포’로 화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