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흰 빛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8-06 21:37     조회 : 14326    

1998. paper on paint and collage 가로 150cm, 세로 120cm  2점



1998년 여름에 한 폐인팅이다.
그 여름의 붉은색과 흰색을 잊지못한다. 뜨거운 습기(濕氣)도.

오늘, 한 낮 여름의 시간은 충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축축함과 뜨거운 열기가 뒤섞여 정신도 흐릿해져왔다.
뜨겁고 무거운 물기가 대기에 촘촘히 떠다니고 있었다.

문득, 붉은 색의 햇빛더미에서 흰 색을 봤다. 잠시 아득했다.
내가 꿈을 꾸는가. 붉은 색덩어리 속에 날카로운 흰 색이 눈밑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오, 흰 색의 환영이여!

인도를 걷다가 마주 지나치던 여자의 이마에 흰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돌아다 봤다.
여자도 길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아주 가까운 간극이었다.

문득 마주보는 순간, 아주 짧은 시간인데도, 아주 길게 느껴져왔다.
여자의 입가에 순간 웃음이 스쳤다. 웃음에 번지는 물기가 참 시원했다.
나는 팔을 뻗어 내 손으로 여자의 이마를 살짝 만졌다.
여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먼저 발길을 옮겼다.
나도 그만 수줍게 작은 웃음이 일었다. 쑥스럽기도 했다.
여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여자의 뒷모습에 흰 빛이 쭈욱 따라가고 있었다.
둥 둥 둥.
물기가, 습기가, 여자의 등 뒤에서 흰 기둥으로 둥둥 따라가고 있었다.
흰 빛의 기둥이 아주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