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정체성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8-16 02:58     조회 : 8831    

8.15, 해방이 된지 만 59년이 됐다.
21, 22년전인 1982년, 1983년, 나는 당시 연극 <1919. 3.1>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질문했다.




8.15 해방 59년 기념사로 어제 대통령 노무현은,

과거역사 청산 의미에 대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과 반목은 굴절된 역사에서 비롯됐으며,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고 했다.

대통령 노무현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다운 발언'을 어제 8.15 기념식사에서 말했다.

59년 전, 해방은 우리나라 사람들 힘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고 일본은 일시에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당시조선은 일본제국주의 식민국가의 갑작스런 철수로 '해방'이 된 것이다.

1982년, 83년, 지금부터 21년에서 22년전에, 두 해에 걸쳐서 나는 연극 <1919. 3.1>을 연극으로 극작, 연출해서 무대에 올렸다.
82년 문예회관 소극장, 83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그 연극의 주제는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 을 질문하는 연극이었다.
우리가 우리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역사의 과거, 현재를 질문하는 내 예술적인 작업이었다.

내게 연극 작업은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갈래 지어진다.
하나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론적인 철학적인 물음이다.
공연했던 작품중에 <섬>이나 <환> 등이 그렇다.
어느 측면에서는 지극히 관념적인 물음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내 존재의 역사적인 근거를 따져 물으면서, 우리 공동체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었고, 이는 한국인의 과거, 현재에 대한 내 질문이었다. 
근대사에서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작업들, <1919. 3.1>, <TAXI, TAXI> 등이 그렇다.
연극 <1919. 3.1>은 우리 국가 정체성의 붕괴와 와해에 대한 통렬한 내 고발이었다.
1948년 이승만 정권시절 반민족특별법으로 제정한 민족반역자 처벌은 이승만 정권의  농간에 하루아침에 유아무야되고 만다.
자기 권력을 뒷받침하던 세력이 허약했던 이승만은 일본식민지제국주의에 협력하고 친일했던 세력들을 정부 요직에 중용하게 된다.
이후 일본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출신의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한국은 식민지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한 일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후 계속 반복되는 박정희 후예들의 군사쿠테타로 인한 굴절들.
1945년 이후, 59년이 흘러서 정녕 한국은 '해방' 되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연극 <1919. 3.1>은 내 국가의 현재 모습과 역사적인 부정의, 그 근원적인 문제를 보고자 했고, 우리 공동체 내부의 적이 과연 누군가를 질문했었다,
왜? 우리는 오늘과 같은 이런 식의 일대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매일매일 겪으면서 살아야만 하는지를, 깊은 의문을 지니고 만든 작품이었다.
"역사의 선은 구부러지가나 끊어졌다" 고 난 1982, 83년에 연극 <1919. 3.1> 의 당시 연극 포스터에 크게 헤드 카피를 정했다.
이후 해방이 되고 60여년, <1919. 3.1>을 공연하고도 20년이 더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했고, 안했다.

어제 비로소 대통령이 8.15 제안으로 국회에 반민족 친일행위와 과거 국가권력의 불법행위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회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한 것은 참으로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역사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제대로의 거울일 수 있을까?
국회는 과연 역사의 굴절과 왜곡으로부터 그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이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