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최후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0-03-17 13:17     조회 : 12419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최후 
뉴질랜드로 이민 간 루마니아인 친구의 소식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98100322170045&Section=01

최근 나는 2년 전 뉴질랜드 남섬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잠시 머물 때 만난 루마니아 출신 친구 ‘보그단 코르두’가 뉴질랜드에서 보내온 엽서를 받았다. 
39살의 그와 그의 가족이 드디어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정식 이민 허락을 받아 이제 뉴질랜드 시민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사는 집에 이웃들, 한 루마니아인의 눈물 kimsangsoo.com visual diary - Christchurch City, > 
 http://www.kimsangsoo.com/g4/bbs/board.php?bo_table=news01&wr_id=235&page=24 
     
뉴질랜드에서 만났을 때 6살, 7살, 두 사내아이를 데리고 3개월간 뉴질랜드에 체재하고 있던 루마니아인 부부는 내가 뉴질랜드를 오고 1주일 후에 루마니아로 돌아갔다.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이민 허락을 받기위해 서류를 잘 만들어서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2년 만에 바라던 뉴질랜드 시민이 3개월 전에 됐단다. 축하할 일이다. 


독재정권에는 맞섰지만 새로운 ‘부패경제독재’에는 무력하게 무너졌다

2008년 1월, 그를 처음 만난 저녁, 숙소 앞 잔디밭에서 이 루마니아인 친구와 나눈 얘기가 기억난다. 그는 루마니아가 지금 지옥이라고 했다. 사회 전체가 정경유착의 부패로 더러운 나라가 됐고 공기도 나빠졌고, 인정이 있고 순박했던 사람들이 배금주의에 물들어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사회 전체가 돈, 돈 얘기만으로 허구한 날들을 보낸다고 했다. 수단은 따지지 않고 돈 되는 일만 찾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낮이고 밤이고 싸구려 술독에 빠져 걸핏하면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일삼으며 인간관계가 거칠어졌다고 말했다.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1989년 구국전선 혁명군에게 총살을 당한 직후 루마니아인들은 자유를 찾았지만, 이후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슈티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버는 졸부들이 생겼으며 과거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을 이기며 독재정권에 맞섰던 루마니아인들이 오늘 새롭게 등장한  부패세력들의 경제독재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단다.   


‘깨어나라 루마니아여’를 부르면서 나라를 살렸는데

루마니아 사람들은 과거 루마니아가 시련에 빠질 때마다 마음을 한데 모아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끝까지 펼쳤는데, 이때 늘 부르던 노래가 국가(國歌)인 ‘깨어나라 루마니아여’를 부르면서 나라를 살렸다고 했다. 국가 중에 나오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라는 노래 말은 루마니아인들로 하여금 불의에 저항하며 나라를 수호하는 정의감을 심어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온갖 탈법과 비리를 일삼는 부패경제 독점세력인 소수 재벌이 왕이 된 지금의 현실은, 사회정의도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가능성도 새로움도 생동감도 루마니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자기 나라인 루마니아를 어서 떠나야겠다고 확고하게 결심을 굳힌 까닭은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자기 아이들의 미래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는 연줄도 없고 돈도 없어서 서러움을 많이 받지만, 자기 아들들한테는 사람으로 인권을 존중받는 사회에서 ‘사람처럼 살게 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는 말끝에 눈물까지 흘렸다.


 2100만 인구에 1100여 개의 도청센터와 320만개 이상의 도청장치 

루마니아하면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생각난다. Nicolae Ceau&#351;escu(1918. 1. 26~1989. 12. 25) 1965년부터 1989년 12월 25일 구국전선 혁명군에 의해 총살되기까지 24년 동안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이자 1974년부터 1989년 루마니아 공산체제 퇴출까지 대통령이었던 인물.

차우셰스쿠는 고아출신들을 뽑아 어려서부터 훈련시켜 비밀경찰과 보안군 친위조직 ‘세쿠리타테’(Securitate)라는 특수조직을 만들어 정보수집, 테러, 암살 등을 맡겼고 이들이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지탱하게 했다. 2100만 인구에 1100여 개의 도청센터와 320만개 이상의 도청기를 설치할 정도로 국민들 동태를 빈틈없이 철저하게 감시하였으니 루마니아 국민들은 어디에서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집단 정신질환을 앓을 만큼 서로 의심하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했단다. 감시와 밀고, 도청과 염탐, 느닷없는 수색과 체포. 24년간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기간 동안 국민들이 입은 정신적 내상(內傷)은 지금까지도 너무나 깊어서 1989년 차우셰스쿠를 총살시키고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후유증(後遺症)은 너무 크다고 했다.       


차우셰스쿠 선전에만 빠진 텔레비전 방송과 신문들 

농산물이 풍부했던 농업 국가였던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는 동안 급격한 공업화로 산업 체제를 몰고 가면서 농업기반 경제는 파탄 났다. 
 
그러나 당시 루마니아 텔레비전 방송과 신문들은 사실들을 왜곡했고, 차우셰스쿠의 정치 경제 실정을 거꾸로 국정의 성과로 뒤집어 차우셰스쿠를 찬양하는 선전보도 일색이었다. 제 3세계 동맹전선에 앞장서겠다고 툭하면 국영항공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나다니던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17일 루마니아 학생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중심이 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이란을 방문 중이었다.

장로교회 목사인 퇴케시 라슬로 목사가 루마니아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설교를 계속하자 보안군은 그를 체포했다. 이 사건은 숨죽이고 있던 루마니아인들을 격분시켰고, 차우셰스쿠에 대항해 시민들과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그러자 차우셰스쿠 보안군은 발포를 가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루나미아는 국가 최대 폭력사태를 맞는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고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차우셰스쿠의 착각

급히 루마니아로 귀국한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경제정책 실패로 경제가 파탄 난 현실을 자신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투철한 애국심으로 인민들을 생각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 가까이 다가 간 대통령으로,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을 붙잡고 걸어왔다고 말했다. 도대체 누가 시민들과 학생들을 선동하고 동원했는지, 시위의 배후를 끝까지 밝히라고 비밀경찰과 친위대와 보안군을 닦달했다. 철저한 감시체계 때문에 혁명이란 아예 불가능한데 외부 불순세력에 의해 시위가 주도되었다며 12월 21일 부쿠레슈티의 광장에서 그를 지지하는 대회를 열게 했다.

하지만 이는 차우셰스쿠의 착각이었다. 차우셰스쿠 지지 대회에 모인 군중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중앙위원회 건물 테라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던 차우셰스쿠에게 욕설과 야유를 보내면서 군중들이 경찰 바리케이드를 넘는 모습이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광장에서는 성난 군중들이 보안군과 경찰에 대항하여 충돌하기 시작했고 차우셰스쿠 내외는 중앙위원회 건물 안으로 급히 대피했다.


160여발 총탄세례를 받고 처형된 독재자 차우셰스쿠 내외

루마니아 민주화 시위는 본격적으로 루마니아 전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2월 22일 무장한 정부군이 루마니아 시민들의 민주화시위에 전격적으로 가담하면서 혁명 구국전선이 결성된다. 구국전선은 방송국과 수도 부쿠레슈티의 전 도시를 장악했고 차우셰스쿠 친위대인 보안군과 시가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시민들과 구국전선은 차우셰스쿠 편에 선 경찰과 친위대와 보안군에 맞서서 끈덕지게 싸운다. 드디어 보안군은 시위대에 굴복하면서 중앙위원회 건물 사수를 포기하고 차우셰스쿠 내외는 건물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부쿠레슈티를 탈출하여 도망을 쳤지만, 12월 23일 지방에서 경찰에 붙잡혀 구국전선에 넘겨진다. 그들 내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구국전선의 혁명군사법정에서 국가반역과 살인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날 오후 5시 30분 16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받는다. 이렇게 독재자 차우셰스쿠 내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http://www.dailymotion.com/video/xxp8o_nicolae-elena-ceausescu_news

챠우세스쿠 정권 몰락이후 20년, 오늘의 루마니아는 

3개월 전에 뉴질랜드 시민이 된 보그단 코르두는 1989년 공산 독재 정권이 붕괴될 때 17살이었고 당시에 수많은 루마니아 시민들의 희망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기대하면서 대학을 다녔단다. 그러나 차우셰스쿠의 후임이었던 이온 일리에스쿠가 대통령이 됐고, 공산당 출신인 그의 패착은 공산주의 청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부패세력들의 정경유착을 용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차우셰스쿠 이후 지난 20년간 루마니아의 정치 경제는 차우셰스쿠 정권과 관련된 인물들이 활개를 쳤고, 오늘 날 사회개혁세력은 제대로 힘을 쓸 수없는 역부족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민주주의 외피를 띠고 선거는 있지만 독재정권 때의 과거 인물들의 죄악을 확실하게 단죄하고 정리하는 때를 실기(失機), 민주주의 사회로의 근본적인 사회체제 개혁에는 실패했다.


루마니아 소수 재벌들에 의해 통제되는 신문 방송들

그 결과는 오늘까지 너무나 참담하다. 차우셰스쿠의 후예들인 비밀경찰과 친위대 조직인 ‘세쿠리타테’ 출신들, 공산주의체제 부패관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이들이 공산주의 독재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하는 과도기에 재빠르게 변신하면서 공산당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루마니아 국영 회사를 값싸게 불하받는 민영화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신흥경제족이 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공공재산업 불하, 탈세, 착복, 비자금조성, 뇌물, 공갈, 협박, 주가조작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키워, 오늘에는 포브스(Forbes)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부자에 속하는 3인의 재벌들이 돈으로 전제적인 경제독재를 한다고 했다.

부패는 만연되고 뇌물은 루마니아인들의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연관되었다. 의료, 사법, 교육, 심지어 종교까지. 루마니아에서는 힘 있는 자들의 독재에 아부를 하거나 비굴해져야만 행세를 한다고 했다.
THE ROLE OF CORRUPTION IN EMERGING ECONOMIES THE CASE OF ROMANIA - Daniela Frederick

이들 신흥부자들이 이제는 루마니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과두(寡頭)부패경제 체제가 바로 오늘 루마니아 경제체제다. 이들 재벌체제는 자신들의 이익을 탐하기 위해서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을 독점 소유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여론을 가공하고 정치를 흥정할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에 직접 개입까지 하고 나섰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확한 정보가 불통이니 온전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가짜여론에 이리저리 휩싸여 혼돈과 방황의 연속이다. 부패경제재벌이 거의 모든 경제재까지 독과점(獨寡占)하면서 공공연한 정치경제 밀착의 권력체제가 형성됐고 루마니아는 부패의 질곡으로 점점 깊숙하게 빠졌다. 


가까운 유럽보다는 차라리 먼 나라 뉴질랜드로

보그단 코르두가 루마니아에서 가까운 유럽의 이웃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노력은 포기하고, 비행거리만 35시간 이상 걸리는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를 택한 이유는 -정확하게는 유럽연합회원국들이 루마니아인, 불가리아인 등 옛 공산동구권 이민자들의 유입을 까다롭게 규제,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루마니아 대학졸업자들의 학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가족사가 얽힌 세계2차 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유럽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오고 싶었고, 또 재수 좋게 유럽회원국에 간신히 입국한 루마니아 친구나 동료들 소식을 들으면, 자신들이 루마니아 대학에서 공부했던 전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자리에서, 하나같이 막노동이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IT산업의 인력을 원했던 뉴질랜드에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로 했단다.   


자기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루마니아인들 

루마니아는 89년 차우셰스쿠의 공산독재 체제가 끝난 이후 약 350만 명의 루마니아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지금도 성인인구 중 약 20%가 해외이주를 원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약 7만 명의 대학졸업자들이 있다니 웬만한 지식계층의 인물들은 죄다 루마니아를 떠나려 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보그단 코르두처럼 IT 계통이나 금속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 받아들이지만 그 숫자는 너무 미미하다고 했다. 자기처럼 루마니아를 떠날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나는 작년에 베를린에서 만난 루마니아 출신의 한 여배우가 생각났다. 독일 베를린으로 와 식당 시급종업원 생활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연극무대에는 계속 설 수 있는 자신이 ‘행운’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조국 루마니아와 떨어져  가족들 생각에 자주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법이나 정의가 죽고 무질서하고 엉망진창의 혼돈 상태인 부패한 자기나라로 당장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뉴질랜드 시민이 된 보그단 코르두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 그리고 아직 가 본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나라일 것인 루마니아에도 사회원칙과 법정의가 바로서서 정치경제가 정의롭게 운영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루마니아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나라를 등질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 살면서 자긍심을 갖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는 어디까지나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는 마음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