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월간 중앙 8월호 [김상수 칼럼]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5-09-30 17:59     조회 : 9816    
문화기획가 김상수 칼럼

내 나라…허무하고 또 허무하다


‘참여정부’가 출발부터 일찍이 스스로 ‘고립정부’화 되면서 지금 이 나라는 과연 국가인가 부실조합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정치력은 거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고 정치적 집단들이 작금에 보여 주는 정치력 부재는 분열만 더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기대하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믿음은 무너졌고 국민들이 정치집단에 느끼는 배신감은 이미 도를 넘었다.

반개혁의 세력들만이 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의 총론과 각론은 방향을 잃었고 정부의 많은 정책은 일관된 개혁 의지를 보여 주지 못했으며, 심지어 정책은 빈곤하다 못해 실천력이 뒤떨어지며 행정 체계는
계속해서 난맥을 보였다.

자본과 노동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능력 또한 이 정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겐 박약했다.
그 결과 사회 구조를 개편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정권보다도 더 기득권층에 포섭되는 경향이었고 자본과 노동의 힘은 균형을 잃었고 민주주의까지 위협을 당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노무현대통령 스스로가 밝혔듯이 이 정부의 문제란 "도덕적 신뢰의 상실"이다.
이는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바뀌어 거꾸로 뒤집혀 있는 현실을 말한다.

투기로 마구 손상된 토지와 주택의 경제정의 원칙을 이 정부는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 정부 출범이후 아파트 가격만 150조 폭등한 현실은 이 정부에 대한 믿음을 어렵게 한다. 집값의 상승율이 전세값 상승율의 50배가 넘는단다. 실거래가 보다는 호가에 의한 상승분이다. 농사짓던 땅을 강제수용 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지닌 택지개발촉진법은 입법취지에서 한참 어긋나 서민주택 확충은커녕 공기업의 땅장사와 건설업자들의 불로소득원이 됐다.
공기업은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개발한 택지를 주변시세보다 훨씬 헐한 가격으로 엉터리 감정하고 소위 공공기관이라고 문패를 단 곳과 주택건설업자에게만 시세의 50%가격으로 복권추첨방식과 수의계약으로 공급한다. 선분양 제도를 이용하는 건설업자들은 주변시세보다 아파트 분양가를 부풀려 이중의 폭리를 취해왔다. 또 택지를 우선 공급받은 업체들은 택지매입가의 10%정도밖에 납부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주택업체에게 택지를 되파는 수법으로 수백억씩 차익을 남기면서 지난 3년간 수도권에서만 약 7조원 이상의 전매 차익을 챙기면서도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공공소유주택(장기임대주택) 비율은 전체주택 약 1,400만 가구의 3.4%에 불과하다. 툭하면 비교 대상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네덜란드 40%, 영국 22%의 수준에 비할 때 턱도 없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과 서민의 주거불안은 자기 나라 국가에 대한 회의에까지 이르게 했다. 이러고도 무슨 '참여정부'이고 서민들에게 '참여'를 요구하는가?
근본적으로 지금의 정부는 국민의 주거안정에서 정책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정책의 안출과 집행에서 너무나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인데도 이 정부가 지금 국가를 이끈다고 할 수 있을까?

오직 돈만 벌면 만사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의 문제 해결 방식이 사람들의 삶을 교란시킨지 오래다. 땅은 썩고 병들었고 강은 말라 비틀어졌으며 숲은 마구 파괴되면서 숨쉬는 공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전체 인구의 5%가 전체 부동산의 90%을 차지하고 최근 국세청의 강남지역 아파트 거래실태 분석 결과에서 보듯 아파트 취득자 중 60%가 3주택 이상의 다주택소유자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과연 공동체 국가인가? 부실조합인가를 의심케 한다.

지난 달 남쪽 어느 지방 작은 도시에서는 아파트를 청약한다고 남녀노소 몰려 와 잠도 자지 않고 3만 명이나 밤새워 줄을 서서 뜬 눈으로 돈벌 궁리에 골몰했단다. 츄리닝 차림의 껄렁껄렁한 사내는 나이 먹은 이빨 빠진 노인네가 줄을 새치기 했다고 윽박질렀단다.
이제 아파트로 재산을 증식할 수 있다는 믿음 앞에서 국민들 누구든 무차별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사고 팔수 있는 시대에 부동산은 현재적 삶의 모순을 어떻게 변형 확대하는가에 있어서 그 절정을 맞았다. 한국에서 과도한 부동산의 집착은 실재보다 더 실제적인 하이퍼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런 한국경제의 왜곡된 현실체계는 사람들 삶에 극도의 니힐리즘의 질곡을 드리우고 있다. 허무하고 또 허무한 것이다, 삶 자체가.

주택공급은 넘치지만 실수요는 여전히 부족하고 한술 더 뜨 아파트를 한 채라도 더 가져야만 하고 또 더 비싼 값을 불러야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의 선으로 여겨질 만큼 착란적 현실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하고 결핍을 느낀다. 이제 부동산이나 아파트는 한국에서 실재이면서 상상계이고 상징계가 됐다. 많이 가진 자의 가난과 동시에 가지고 있지 못한 자의 가난은 저마다 과도함의 함정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끝없는 결핍을 일제히 양산한다. 총과 칼만 안들었지 거의 전쟁 수준이다.

우리사회 사회 경제적 언어의 본질에는 “소유하다” “먹어치우다”에서 “죽이다”로 변화를 일으킨지 오래이고 “바꾸다” “되찾다” “교환하다”의 경제 언어는 한물간 얘기가 됐다.
이런 생태적 윤리적 결격의 경제체계는 끝내는 사회 전체를 파국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런 식의 경제체계라면 터하고 사는 땅은 물론이고 일자리와 가정, 인간이 지켜야할 존엄성마저 깡그리 파쇄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이렇듯 지금 한국이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인간의 상식적인 이해를 넘어서고 있다. 누구나 주거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와 주택을 보유할 권리는 조롱받고 있으며 토지는 주거생활과 생산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재산증식의 목적으로만
소유되면 안된다는 실수요자 원칙은 무너진지 오래고, 토지와 주택투기를 뿌리 뽑아 땅값과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경제 정의는 유린된지 오래고, 토지로부터 발생한 모든 불로 소득은 사회에 환원 되면서 근로소득이 존중되고 불로소득은 근절시켜야 한다는 사회 존립 일반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음은 물론이면서, 토지와 주택은 반드시 본인명의로 거래되어야하고 등록되어야 한다는 거래의 투명화도 공소한 공론이 된지 오래다.

이러고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한 나라의 국가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이렇게 저렇게 막 얽혀서 뒤죽박죽 살아가는 부실조합의 모습이 아닌가, 이 나라가 말이다.

정치란, 더욱이 민주정치란 전체 국민의 삶의 호혜와 의사 결정의 정합성, 부를 누릴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한다면, 정치를 이끄는 지금의 정부는 진실로 작금의 사태를 알아차려야만 한다.
불난리 물난리가 났는데 최상위층의 재난 책임자인 국무총리가 토양침식 제초제를 뿌린 풀밭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몰골은 그 자리가 부실조합의 부조합장 정도로 스스로 여기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지금의 정부와 정치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반생명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 국민들의 고통은, 사람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과연 이 정부와 정치는 이 땅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일까?
2005년 현재, 우리들 삶의 고뇌는 점점 다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