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극을 하는가?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1-01-04 00:26     조회 : 7634    
11년전이다.
신문사 신춘문예 희곡부분 심사를 하며 쓴 심사평에서 나는, 희곡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  되물었다. 
물론 희곡이란 연극 공연을 전제로 글을 쓰는 작업이며 우리가 희곡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의 껍질(殼)을 한 꺼풀씩 깨고 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연극을 보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연극 만들기를 하는가?, 라는 질문도 했다.
연극의 본질에는 인간이 세상을 알려고 하는 저 무한한 욕구를 의식하기 때문이며 '잃어버린 것, 감추어진 것, 외면한 것,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자기 인생의 시간 속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을 통해 빚어내는 추체험(追體驗) 속에서 삶의 사실도 찾아내고, 좀 더 생생하고 사실적인 삶에 대하여, 그것을 보고자, 알고자, 꿈꾸기 때문이다, 라고 썼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오늘 한국연극은 죽었다.
연극의 1차적인 과제인 사회에 대한 비판도 고발도 없고, 제도로서의 연극환경도 너무나 열악하다. 
대학로를 나가보면 그저 저급한 오락물로 공연 현실은 추락했다. 기실 이는 오늘만의 현실도 아니지만. 서울에서 마지막 연극을 했던 9년전보다 더 망가져 보였다.
최근 나는 몇 편의 연극을 봤다. 희곡이, 연극이, 무엇인가를 알고나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연극의 언어가 아니었고 무대는 대부분 조악했다.

연극의 언어는 결코 '개그'가 아니다.
연극의 장면 장면이란 저 천박하고 상투적인 일부 텔레비전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지겨운 말장난이나 '개그'는 더욱 아니다.
연극의 언어나 장면은 진지한 열정으로 삶을 바라 보는 것이고
잘근잘근 삶을 ‘깨물어 보는 것’이며 ‘끈질기고’  ‘겸손하게’  인간의 존중과 인간의 위엄과 인간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개그'를 폄하하진 않는다.  '개그'란 동시대 사회적인 언어이고 삶의 뒤틀림을 웃음의 말로 표현하는 대중의 언어다.
문제는 한국의 연극공연 대개가 어떤 구조나 문법도 없는 말장난과 무차별로 해외에서 빌려온 텍스트들을 조악하게 번역한 것들-번안이 아닌- 위주로 끊임없는 우스개 소리로 관객들을 웃길려고 안달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되풀이 말하지만 연극을 한다는 것은 '개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을 한다는 태도는 연극을 통해서 인생의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연극을 통해서 삶을 꿈꾸며 생을 탐구하고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가를 현장의 시간 공간에서 '액팅Acting' 하는 것이다.
갖가지 개성이 충돌하고 의견과 말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연극의 언어는 가로 세로로 인생의 의미를 직조(織造)하고 구축해서 인간과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이란 세상에 부지런하고 자기 자신에 치열할 수밖에는 없는 사람들의 예술작업이다.그래서 아무나 연극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연극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저 숙명적인 가난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지겨운 가난까지 말이다.

대체로 설익은 무대들의 특징은 왜? 무엇 때문에 연극을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이 없다.
어설픈 제스처가 난무하고, 세상을 보는 데,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제대로 구분이 어려운 공연들이 연극이란 이름으로 휭행하는 현실이다.

연극은 당대의 사람들, 당대의 사회와 인간을 그리는 것이다. 
세상을 말하고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한국연극사에서 식민지 연극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 만큼이나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어떻게? 한국연극, 그것도 한국인의 한국어로 된, 고전으로의 창작연극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나에게도 거듭해서 숙제다. 이번 연극 TAXI,TAXI는 이를 실험하고자 한다.

김상수 2011-1 연극 TAXI, TAXI
club.cyworld.com/2011-taxitaxi  http://club.cyworld.com/ClubV1/Home.cy/54592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