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블루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3-10-24 11:14     조회 : 9630    



2002. 2. ITALY. VENEZIA. BLUE WATER. PHOTO

겨울이었다.
혼자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이태리 베네치아까지 갔다.
배를 탔다. 파도가 기웃거렸다. 작은 배가 기우뚱댄다.
리도섬에 예약한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데스크에서 먼저 여권을 달란다.
이태리 놈들, 옛날 로마의 영화(榮華)를 갉아먹고 사는 후손들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어느 나라 호텔에 가도 손님이 호텔측에 여권을 맡겨야 하는 나라는 내 경험에 비추어 이태리 한 곳이다.
"왜 내 여권을 너에게 맡겨야 하니?"
"......"
"이봐! 난 이 호텔에 손님이야. 예약확인 해 봐"
"......"
"방줘, 내 여권은 못 맡겨"
"......"
데스크에 있는 놈이 열쇠를 건넸다.
열쇠를 받아들고 4층 방문을 열었다. 옛날 귀족이 살던 빌라라고 했다.
화려했다. 창을 열었다.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울인데도 짙은 녹색의 빛깔이 질펀했다.
그 날 로비곁에 싸롱에서 만난 미모의 흑인 여성과 한잔을 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서로 말을 건넸다.
로비 싸롱에는 둘 밖에 없었다.
"너는 직업이 뭐니?"
"군인이야. 중위"
"혼자 왔니? 휴가니?"
"휴가야. 독일에서 왔어"
"독일? 미국캠프가 크대며?"
"음. 아주. 근데 넌 뭐하니? 직업이?"
"나? 그냥. 아티스트... 그냥 건달이야"
"후후.. 건달같진 않은데"
"포도주 좋아하니?"
"음. 이태리 포도주 죽이지"
우린 한잔했다.

밤중에 둘이서 배를 타고 산마르코성당이 있는 섬으로 나갔다.
옛 베네치아 공화국의 중심으로.
서로마 제국 멸망부터 르네상스 시대 때 지중해 무역으로 절정을 이루고 나폴레옹에게 멸망당한 천년의 나라.
산마르코 광장에서 난 카메라를 들고 그녀를 찍었다.
그녀의 눈빛이 맑았다.
타이트하게 입은 검은색 판타롱이 그녀 몸의 윤곽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1650년에 오픈했다는 유명한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브랜디를 한잔씩 했다.
걸었다.
수로를 끼고 한참을.
한 통의 필름에 그녀를 담았다.
"너 영화배우 같구나"
"나? 후후. 안그래도 둑일에서 캠프 근처를 걸어가면 독일 놈들이 모델 하라고 따라다닌다"
"독일 놈들이?"
"무슨 모델회사 직원이래나"
"검은 애 있잖아? 유명한 모델, 이름이 뭐지?"
"아프리카 애?"
"몰라. 니들 조상이 다 그곳 아니니?"
"나오미 캠벨? 걔보단 내가 더 이쁘지? 그치?"
그랬다. 나오미란 모델보다 이뻤다. 키는 한 일미터 칠십정도쯤.

수로에 파란색의 물결이 일었다.
"파란색이야. 물빛이!"
"물에 내 얼굴이 비치지?"
"그래, 비쳐. 너 이뿌다"
"물 속에 있는 내가 나를 보고 있잖아"
"그래, 그렇구나"

물의 주제는 '씻는다', '흐른다', '합친다', 등등이다.
파란색의 물을 쳐다보는 건 황홀하기까지 했다.
어둠 속의 바다 수로에서 춤추는 파란색은 하나의 가득한 이미지다.
부드럽고 따뜻한.
킴블리안.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에게 파란 물빛은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파란빛의 바다는 모성이며 물빛은 놀라운 젖이다.
바다는 자신의 자궁 속에서 풍부한 양식을 준비하고 있다.
따뜻하고 포근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