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월간 중앙 12월호 [김상수 칼럼]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5-12-02 09:30     조회 : 8109    
월간중앙 원고 바로가기 - [문화기획가 김상수 칼럼] 경제는 결국 사람이고 인간이다




원고 본문 이 나라에 과연 경제정책은 있는가?

-경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김상수(극작가, 연출가, 미술가, 문화기획가)


빈곤과 실업의 확대,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심화 등 경제문제가 ‘참여정부’ 들어서는 ‘사회해체’ 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불완전 취업자를 포함한 거대한 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선결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실천이 미미한데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를 형성하는데 실패하는 것에 기인한다.
착시적(錯視的)시각의 경제 전문가들이 선성장이냐 후분배, 또는 그 역이냐 식의 비논리적 토론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정부의 정책 또한 그 실상에서는 분배를 배려한 정책이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큰 배반감을 갖게 됐다. 경제정책이 분배 위주로 가서는 성장이 안 된다는 가설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그러나 정작 분배주의에 입각하겠다는 이 정부가 실질적으로 분배의 성과를 내지도 못하는 현실은 경제 정책의 무기력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이 정부가 기업에 토지 수용권을 인정하는 기업도시 추진 등을 놓고 볼 때 차라리 기업 편향적인 정부라고 보아야 더 정확하지 않을까? 결국 현재까지 보여주고 있는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면서 일관성마저 없다. 이는 곧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를 이해하는 관점이란 게 당장의 현실에만 핍진(乏盡)되어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보다 그저 경기에 신경을 빼앗기느라 체제 개혁적인 정책적 노력은 아예 접근도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금의 한국의 경제문제는 본질적인 구조 문제에서 해법을 찾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소득구조와 내용, 노동시장이나, 실물 경제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구조 조정은 시급하다. 재래 산업은 신산업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고 저부가 가치 산업은 급속히 사양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제 생산력은 한국의 저부가 가치 산업 경제를 초토화시킨 지 오래다. 실직자의 양산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 정부에 국가비전과 목표를 위한 경제정책이 있는가?

결국 예측 불가능한 정치와 이 정부의 미숙한 경제정책은 불안을 부추겼고 국민의 전반적인 지지가 없는 정치와 경제정책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고립으로 떨어졌다. 장기적 안목과 포괄적이며 실천 가능한 경제정책 계획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갑작스런 위기 상황이 닥치면 상황적 변수들에 의해서 어설픈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 왜곡되는 정치 경제적 리더십은 계속해서 국가에 손상을 입히는 형국이다.
새삼 이 정부에 국가 비전과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세세한 경제 정책 설계도가 있는가를 묻게 된다. 개혁이나 심지어 ‘혁신’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사구시적인 정책안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실용주의적 경제 개혁 실천 안이 제대로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우리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공공 정책을 입안하며 집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국가 경제 운영과 사회 통합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경세제민의 인식과 능력이 과연 이 정부에 있기는 있는 것인가를 묻게 된다.

생존을 위하여, 나은 삶을 위하여 한국은 세계의 경제 변화에 능동적으로 도전해야만 하는 이 때, 아직도 우리는 개발경제, 성장경제, 규모경제의 근대적 경제방식으로만 경제를 이해하는 현실이다. 그러니 멀쩡한 산을 파괴하여 생태계를 교란하고 아파트나 때려짓고 턴넬과 도로를 자꾸 만들어야 하고 '기업도시'를 만들어야 하니, 등으로만 경제를 알고 있다.
서구적 경제발전 모델에도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고, 서구 국가에서는 ‘지속 가능’하며 보다 ‘영속적인 발전 모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이는 석탄이나 석유 등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화석 연료는 곧 바닥이 나며 그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인 논의나 깊고 열띤 사회적인 토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보자, 좁은 국토, 많은 인구, 무차별한 국가 경쟁들 가운데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명제처럼 보일 때, 보다 더 창의적이며 보다 더 탁월한 경제 방식의 선택은 무엇일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은 이것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의 경제는 선진국 따라잡기나 선진국 흉내 내기 차원이 아닌, 우리들 생존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절실하게 질문하는 태도에서 출발되어야 하며, 산업화가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압축 산업화가 절대 빈곤을 감소시킨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대가는 우리들 삶의 토대인 자연 환경, 전통문화, 지키고 가꾸어야 할 삶의 긍정적인 양식까지도 파괴했으며 한국인의 심성 공동체를 거의 파탄으로 이끌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국경제는 혁신경제를 요청한다. 혁신경제는 경제성장이 반드시 삶의 풍요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뚜렷이 하는 것에서 문제의 단서를 보아야 한다. 경제성장이 구조적 실업을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 당장 보이는 현상처럼 수출경제가 일자리를 더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면 할수록 도리어 구조적 실업을 강화시키는 측면을 낳을 수도 있다. 생산성을 앞세우는 세계화 경제는 단 시간에 많은 생산성을 확보하지만 인간의 노동력에는 크게 의존하지 않는 모델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제 혁신한국은 경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경제성장이 반드시 석유가 있어야 하고 땅을 파헤치며 산허리를 뚫어 턴넬을 만들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각성의 요청이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자원을 수입하고 투입하며 더 빨리빨리 물건을 만들어 팔아 치우면서 노동의 생산성을 부가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그럴듯한 표현으로, 사람의 모가지를 아무 죄의식도 없이 싹싹 쳐내는 반인간의 경제학을 받아들여야만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자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인간의 경제학, 절망의 경제학

혁신한국의 경제는 지금의 경제 체제가 변화를 일으켜야 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체제는 지금까지의 경제 양식과 패러다임으로부터 일대 전환을 일으키는 양식이다. 이 체제는 장기적이고 어려운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진정한 숙제는 우리가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를 성장 경제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 파악하는 생각과 습성으로부터 과감하게 박차고 떠날 것을 주문한다.
경제란 궁극적으로 사람이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과 기능에 있다.
경제성장이 없어도 제대로 기능하는 경제를 창조하는 것,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중요한 과제이고 혁신한국 경제의 가치 목표이다.
혁신한국은 쓰레기와 공해, 무차별적인 자연 훼손과 인격 훼손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다짐을 해야 하며, 창의성으로 경제를 이끌고 세계인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생존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재창조하는 것이 역할이다.
곧 혁신경제는 지혜의 경제이다.
이는 경제적인 조건과 주어진 제약을 보다 현명하고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방식이며 난관을 기회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혁신경제는 크기(量)의 경제가 아닌, 질(質)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삶의 내용과 삶의 질을 문제 삼는다.

혁신경제는 조화의 경제이다. 자연과 자원의 구성,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생산과 알맞은 소비생활, 이것을 추구한다. 혁신경제는 문화적인 삶을 추구한다. 생산과 소비와 지출의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배려를 우선한다. 여기에 경제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