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저널리즘문화'로부터 - 한겨레신문 김상수 문화칼럼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1-06-17 08:44     조회 : 5713    

병든 ‘저널리즘문화’로부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3302.html

바로 말한다. <한겨레> 구독자가 100만명이 되면 한국 사회가 바뀐다.
뭔 얘기냐고? 이 땅의 저널리즘 문화는 이미 시궁창이 됐다.
<미디어 오늘>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동으로 실시한 공무원 미디어 수용 실태 조사결과,
공무원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라고 했다. 3위인 <조선일보>는 한참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근무처에서 가장 많이 구독하는 신문이 <조선일보>다.
공무원들 대다수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들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하면서도 신뢰하는 신문과 구독하는 신문이 다른 경우다.
상사의 지시로 신문구독을 결정하니 이건 병든 저널리즘현실이다.

‘보수’를 참칭(僭稱)하며 “정의를 옹호”하고 “불편부당”을 주장하는 기득권신문 <조선일보>의
정기구독자가 140만이 겨우 넘는다는 최근 기사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동안 <조선일보>가 이 정도 구독자 수를 두고 나라를 흔들겠다고 긴 시간 떠들어댔단 말인가?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한다는 또 다른 기득권신문 <동아일보>나,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로 한국 언론 중 가장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었다”고 역시 주장하는 <중앙일보>는
구독자가 훨씬 더 적다.

<한겨레>가 정기구독자 100만이면 세상은 달라진다.
사회는 오늘보다 훨씬 정의롭고, 피눈물 흘릴 사람의 절대숫자는 준다.
따라서 이 땅에 언론의 정도를 확연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할 <한겨레>의 책임은 막중하다.
더구나 후퇴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최선의 노력까지 <한겨레>는 사명으로 더 짊어지게 됐다.

이런 당위의 입장에서, <한겨레>는 독자와 만나지는 접점(接點)을 새롭게 점검할 시기다.
종이신문의 현실적 한계와 신문시장 구조 자체가 왜곡된 현실이지만,
인터넷 웹신문과 종이 신문의 차별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만
<한겨레>를 보지 않고, 나서서 <한겨레>의 종이신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과연 있는가.

젊은 세대들에게 역동적인 기획으로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을 넘어, 공감하는 신문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뉴스를 따라가는 식이 아닌, 보도의 기동성과 아울러 예리한 통찰과 시각,
대안, 정보, 실증, 가치의 확산과 공유,

‘왜’?(Why)와 ‘다음은?’(Next)을 정확히 짚는 기사의 깊이(분석)와 넓이(세계성),
종합적이고 세부적인 치밀한 신문 편집전략의 안출을 통해
여타 신문과 차이를 두는 사진, 레이아웃, 타이포그래픽 등의 시각 이미지의 과감한
파격성과 현대성, 격조 있지만 신선한 아트디렉션,

문제를 리드할 수 있는 <한겨레>로의 전위성,
이를 뒷받침하는 신문 경영체제의 입체적인 분석과 최적화, 경영혁신의 구체적 방안,
회사의 철학과 경영이 유리되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과 내부개혁에의 상관성,

<한겨레> 전 직원의 정체성과 통합성, 지속적인 긍지와 뒷받침,
이런 문제의 대책을 항시적으로 개선 극복하고자 하는 시스템,
신문 정기구독자 증대로 신문수입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의 조정,
곧 <한겨레>는 어떤 가치와 어떤 존재방식으로 지금 신문을 만들고 있는지 새삼 질문한다.

올봄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이 부수 400만의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를 고발하는 기획취재기사를 연재했다.
기득권 세력의 선전도구 노릇으로 언론을 부패시키는 죄상을 같은 신문업종에서 간섭차원이 아닌, 민주주의 공동체 파괴를 묵과할 수 없다는 언론의 역할 때문에 <슈피겔>은 <빌트>를 공격했다.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조·중·동의 보도 행태는 자본권력과 한몸이 되어 부패세력의 계속 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기관’이 됐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문제에서 심각한 결함을 넘어서서 이제 이들 신문 자체가 권력의 헤게모니를 꾀하는 ‘기구'가 됐단 말이다.   

저널리즘 문화를 일대 혼돈 속에 빠트리며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왜곡시키는 이들  신문을
<한겨레>는 계속 두고 보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