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수'를 말한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1-08-24 10:05     조회 : 7963    
다시 '보수'를 말한다.

조,중,동은 '보수신문'이 아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824075105§ion=01

한국 사회에서 과연 보수란 무엇인가? 나는 다시 묻는다.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보수란 어떤 정의인가? 그리고 보수 세력은 누구이고 어떤 집단을 일컫는가?
 
한나라당?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재향군인회? 자유시민연대? 고엽제전우회? 바르게살기중앙협의회? 어버이연합? 이들 단체를 묶어 '애국시민대연합'이라고 스스로 칭한 것을 가리켜 온오프 신문, 방송 등이 하나 같이 '보수단체 연합'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정말 이들이 한국사회의 보수들일까?

심지어 더욱 기가 찬 것은 진보적이라 얘기되는 지식인들까지 '보수'라는 용어의 오용은 가히 무차별적이기까지 하다. 지식의 기본이랄까, 출발에서부터 크게 어긋나는 현실이다.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지식인들의 언어 용례와 오용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성이 없다. 이제 나는 또 다시 브레이크를 건다. 끔찍한 인식의 고장이다. 여기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들도 조,중,동을 가리켜 ‘보수신문’이라 일컫는다. 이는 크게 잘못된 미디어 매체의 언어오용이다.
 
언제부턴가 '보수'란 말의 의미가 왜곡되어 관용적으로 남발되고 잘못 명명되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없었다.

자, 내 묻자, 조,중,동 신문이 과연 보수세력신문인가? 그들 신문은 무엇을 ‘보수’하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수적으로 지키고’ 있는가?
본질은 조,중,동,이 언론의 탈을 쓰고 그들 자신의 족벌자본과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의 덧셈, 뺄셈, 나누기 흥정이 아니던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던가 말이다, 정말 조,중,동이 언론일까? 그저 ‘언론권력’일 뿐이다. 그들의 존재방식은 철저하게 ‘사익추구’에 있다. 공익을 빙자하여 신문을 통해 사적이익을 수단화했다. 일본식민지 시절에 “일본천황폐하!” 라고 하고서 일말의 반성도 없는 신문이 조선, 동아다. 어떻게 이런 신문이 대한민국 땅의 신문인가? 쿠데타한 전두환이를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고도 반성은커녕 완고한 자기네들끼리 협잡과 프레임을 쌓고 있지 않는가? 내 또 묻자, 조,중,동 사주들 자식들 중에 군대 갔다 온 자가 대체 몇이 되는가?

언어란 존재나 상황에 대한 현실 이해나 인지, 인식의 근거다. 하물며 언어의 근거부터가 박약한데 논지가 어떻게 설득력이 있겠는가? 용례고 관용이고 관습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안될 말이다. 시쳇말로 국어사전에서의 의미만 놓고 보더라도 현실의 '보수' 용어 오용은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버렸다.
 
역사에서 반동이나 수구(守舊)가 보수일 수 없듯이, 제 것, 남의 것. 모두의 것에 대한 구분 없이 탐욕에 눈이 뒤집힌 세력들이 보수의 옷을 입고 수십 년 설쳤으니 현실로 인정하자고? 구분의 편리함이 용례니, 세세한 언급은 번거롭다? 그렇지 않다. 이는 지식이 허용할 수 있는 언어의 용례 차원이 절대 아니다. 보수 용례의 헷갈림은 사회언어체계의 파괴이자 사회체계 인식의 뒤틀림을 바탕에 깔고, 짝발 뛰기나 짝눈으로 세상을 디디거나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헛것이고 헛짓이다.
 
바로 질러간다. 보수를 참칭(僭稱)하는 뿌리 뽑힌 ‘기득권 세력들’, 자신의 이기적 욕망만을 위해서는 어떤 구실도 차용할 수 있으니, 국가공동체도, 역사도, 민족도 얼마든지 배반할 수 있는 세력들, 반공을 허울과 빌미로 악행도 서슴지 않고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훼손하려는 세력들, 거듭 얘기하지만,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 받들었고 시간을 거슬러 일본제국주의 시절엔 천황폐하의 신민(臣民)이 되자고 주창하는 기사를 대문짝하게 내고도 오늘까지 전혀 부끄러움도 일말의 반성문도 발표한 사실이 없는 조선, 동아신문이 어떻게 정녕 보수란 말인가? 도대체 먹고살기에도 버거운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보수’라는 말이 얼마나 근사한 말로 오해를 계속 불러일으키는가 말이다.   

자, 제대로의 보수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가치들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고 지키고 가꾸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엄격하고 완고한 태도다.
그럼 무엇을 지키는가? 가장 먼저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고 보수 가치의 체계인 헌법이다. 하물며 가정, 지역, 국가, 전통문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존중과 같은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결사적으로 지켜냄이 보수의 행동양식이다. 따라서 나라가 위난으로 빠졌을 때 개인의 일신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행동했던 독립 운동가들이나 패권주의에 매몰되어 이데올로기로 동족을 압살했던 세력들에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 군사독재시대 때 민주주의를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했던 사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일깨우는 만3년 전 광화문의 '촛불'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고 보수 세력들이다.
 
삶의 터전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대운하를 파고 있고, 그 짓을 ‘빨아주는 신문’이란 ‘보수’가 아니잖는가? 헌법을 밥 먹듯 유린하며 권력에만 집착하고 권력의 확대에나 집중하는 정치경제세력이란 보수일 수가 없다. 어불성설이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 편향이 진보일 수 없듯이, 반공을 앞세워 인간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것도 보수일 수 없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와 또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서 보수란 엄격한 자기 각성과 행동양식의 절제를 동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보수란 생태나 평화가 삶의 기초임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통일을 지향하거나 분단체제의 극복이 전적으로 진보나 급진의 전유가 아니듯 보수의 근본 가치에 큰 으뜸 항목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은 조,중,동을 ‘보수신문’이라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보수란 시장의 패권을 거부하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 사회, 국가, 미래를 구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또 한번 만3년 전 광화문 '촛불' 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적 시민 각성이 현실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청 앞에서 특정 국가의 싱징물인 성조기나 흔드는 우격다짐이야말로 보수 자체를 파괴하는 정체성 불명의 ‘가짜보수’들이다.
해방 직후부터 줄곧, 대한민국은 이런 가짜들의 전횡과 폭력으로부터 진짜가 고립되고 핍박당하며 진(眞)과 실(實)이 흐려지고, 가짜가 도리어 진짜 행세를 하고 가짜가 무리를 지어 구조적으로 중층적(重層的)인 집단으로 탄탄한 지배계급이 됐다. 이 지배계급에 동원돼 가짜들의 정점에서 이명박이란 기이한 인물까지 나왔다.
 
지금 한국사회는 바로 이 기이한 인물이 대표하는 집단이 ‘보수’를 도둑질한다. 작금의 한국사회 문제를 '이념갈등'으로 획책하면서 가짜언론과 가짜 지식인들을 동원하는 익숙한 방식이란 ‘보수’일 수 없다.
 
그리고 이념갈등?, 도대체 이 땅에 이념의 정체가 정연하게 논리적으로 한번이라도 공론으로 있어본 사실이 과연 있기나 있었던가? 선무당 굿하는 식으로 이쪽저쪽 갈려서 하는 싸움질을 시켜 '이념갈등'이라고 칭한다. 여기에 보수란, 편 가르기 식 구색으로 편의적으로 슬쩍 갈아입는 외양이고 크게 잘못된 언어용례다.
 
이렇듯 우리사회 보수 개념이 헷갈리게 된 연유에는 지식인의 책임이 크고 참지식인이 드물다는 것에도 있지만, 지식이나 지식인이 주저 없이 도구로 전락하는 인식의 도그마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또 권력과 금력을 추종하면서 일부 소수 부초(浮草) 지배집단에 확고하게 편입되기를 안달하는 것을 보수의 얼굴로 분칠하는 반이성에 근본 문제가 있다.

 ‘기득권 가짜보수’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배웠다는 지식인들도 다반사로 오용하는 보수란 표현은 다시 말하지만,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이는 인식의 오류다. 이즈음 말하는 보수란 무차별적 욕망계층인 뿌리 뽑힌 ‘기득권층’을 말하고자 함인데, 빨리 바르게 고쳐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회에서 조,중,동, 한나라당 등은 ‘보수’가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걸신(乞神) 집단인 ‘기득권 층’ 이라 불러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