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음악인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1-12-06 17:48     조회 : 18043    

2008년 3월 25일, 이명박에게 지휘봉을 건넨 정명훈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948

‘함께 가요, 국민성공시대!’라는 ‘이명박식 정치표어’를 내걸고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취임식에서 정명훈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 '환희의 송가‘ 앞부분과 독창이 등장하는 부분을 짜깁기해서 지휘를 했다. 기이한 편곡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을 정명훈 나름대로 해석한 것일까?

그 날 지휘자 정명훈은 오케스트라 정면이 아닌 행사 중앙연단 앞에 서서 지휘를 했다. 저 끝에 줄지어 서거나 앉은 합창단과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지휘가 제대로 보였을까? 지휘자가 선 그 위치는 실상은 음악을 지휘한다기보다는 거대한 ‘선전 쇼’를 앞에서 지휘하는 상징적인 자리배치였다. 음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명박은 박수를 치면서 즐거운 얼굴로 정명훈과 마주한다.

정명훈은 음악을 지휘하던 지휘봉을 이명박에게 활짝 웃음 띤 얼굴로 선물한다. 이튿날 대형 기득권 보수참칭(僭稱) 종이신문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잘 지휘하라는 의미로 지휘봉을 준 것’이라고 해설했다. 취임식 날, 그 날 연주와 합창은 사전녹음 연주를 틀어놓은 것이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히틀러의 생일 전야제 공연으로 ‘위대한 독일민족의 지도자 히틀러’를 찬양하기 위해 동원된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angler)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의 ‘환희의 노래’와 정명훈이 이명박 취임식에서 지휘한 ‘환희의 노래’는 어떤 차별성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을까? 이명박 정권 4년째다. 거대 기득권 종이신문들의 바람대로 이명박은 정명훈의 지휘봉을 받아들고 ‘대한민국을 잘 지휘’했는가? 비통한 현실이다. FTA 국회날치기 통과를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살수차를 동원, 영하의 얼음물 공세로 답하는 이명박 정권이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누가 봐도 지금 이 나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깊은 위기에 빠졌다. 정명훈이 이명박 취임 때 지휘한 ‘환희의 노래’는 지금 한국인들에게는 ‘절망의 노래’ 민주주의 후퇴의 ‘탄식의 노래’가 됐다.

21세기 민주주의 도시, 서울시립의 교향학단 지휘자란?

나는 이명박에게 정명훈이 지휘봉을 건네는 장면을 보면서, 저 지휘자 정명훈이 과연 음악가인가? 그것도 한국의 매스컴에서 떠드는 “세계적인 지휘자”, “마에스트로” “예술의 거장(巨匠)”인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나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넘기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장인들이 군주들의 후원을 받고 군주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방식이 어쩌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현실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에게 지휘봉을 바친다? 정명훈이 개인 이명박을 좋아하든, 그의 예술적 후원자로 이명박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건 개인적인 문제다. 그러나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가 연주지휘봉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명박에게 갖다 바치는 건 부적절한 정치적 행위다. 예술의 정치화를 꾀하는 권력자나 이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예술행위자의 태도란 곧 예술을 형해화(形骸化)시키고 예술을 이용하여 사적인 특권을 꾀하면서도 예술을 하찮게 여기도록 예술을 모독하고 능멸(陵蔑)하는 모습일 수 있다.

정명훈은 왜? 베토벤 음악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을까?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주제 가사는 프리드리히 폰 쉴러(Friedrich von schiller )의 송가(頌歌)에서 발전된 노래가사로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리라”가 중심 주제다. 독일의 작가 쉴러는 거의 모든 작품들을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작품을 썼다.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해명하는 역사인식과 논증에서 인간의 자유이념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의 작품의 중심사상은 인간의 존엄과 시민적 계몽적 사상이 전 작품들에 녹아있음이 이를 말한다. 쉴러는 그의 역사극을 통해 현실을 이상화하고 자유이념을 고취하고자 의도했다.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에서 쉴러의 시를 노랫말로 가지고 온 것은 계급과 인종을 떠나 인간의 연대를 노래한 것이니, 공화주의자 베토벤은 권력에 음악을 바친 것이 아니다. 그의 교향곡 3번 ‘영웅’이 나폴레옹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지만, 이후 나폴레옹의 행적에 베토벤은 실망, "그 놈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구나. 그 놈은 틀림없이 사람들을 함부로 여기고 인권을 짓밟고 자기의 야심을 만족시킬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총보(總譜)의 속지를 찢었다.

권력이 아닌, 인간과 인류에 바친 베토벤 음악 9번

이처럼 베토벤은 권력자가 아닌, 억압받고 노동으로 수고하는 인류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헌사(獻辭)한 것이지 절대 권력자에게 음악을 바친 건 아니었다. 베토벤은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여야한다”고도 했다. 이명박의 ‘성공시대’와 “부자 되세요! 여러분!”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베토벤 9번 ‘합창’교향곡이 동원될 것은 전혀 아니란 말이다. 하물며 베토벤 9번 교향곡은 특정 정치권력의 권력자 취임을 축하할 때 사용하는 그런 음악은 더욱 아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명박 취임축하 때 베토벤 9번 음악을 사용(私用)한 정명훈은 개인 자신의 후원자인 이명박과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부풀려 음악으로 정치적 해석을 한 것이며, 베토벤 음악 이해와 음악해석에서 정명훈의 근본적인 ‘그르침’, 즉, 베토벤 이해와 인식의 의도적인 오류(誤謬)를 나는 본다.

2008년 8월 14일, 광복과 건국(?)의 역사를 음악으로 재조명?

“대한민국의 힘찬 출발, 고난과 역경, 역동적 발전, 희망찬 미래에 대한 다짐, 194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60년 역사를 음악을 통해 재현할 이번 음악회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와 ...”
위에 인용한 글은 당시 일반에 알려진 기득권 언론들의 기사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이명박 정권이 광복절을 ‘건국 60년’ 행사로 치루겠다고 해서 열린 음악회였다. 이 음악회는 1948년 8월15일의 성격이 역사적 사실에서는 어디까지나 정부수립일인데도 ‘건국’이라고 일컬으면서 1948년 이전의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 ‘정치음악회’였다.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의 음악적 실행

일본 식민 통치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국부론’, 유신 체제는 고도 산업화를 위해서 불가피했다는 ‘박정희 찬양론’의 뉴라이트 이론이 바로 그 맥락이다. 역사를 찌그러트려 곡해하고자 하는 집권세력을 위한 음악회가 이 음악회였다. 정명훈의 지휘로 첫 곡은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였다. 이 음악회는 역사적 인식이나 역사의 사실에서 너무나 빈곤했고 음악의 자장(磁場)이 협소한 음악회로 비쳐졌다. 역사왜곡을 음악을 통해 합리화하고 집권세력의 정치선전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적극적인 정치행위로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의 의식이란?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역사의식의 고장을 스스로 드러냄을 의미한다. 이 또한 음악연주의 이해와 인식을 너무나 얕고 좁게 이해하여 음악을 마음대로 전용(專用)한 ‘그르침’을 뜻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베르디의 오페라와 베토벤 교향곡의 음악해석에서 독창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친 지휘자다. 소위 한국의 매스컴에서 말하기 좋아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실질적인 “세계적인 지휘자”, “마에스트로” “예술의 거장”이란 표현은 토스카니니 같은 이를 두고 말해야 하는 것이고 음악의 넓이나 깊이에서 이런 표현에 해당하는 음악가다. 토스카니니가 바이로이트 공연에 초청받아 바그너의 악극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 나치 집권 이후, 같은 음악제의 바그너 음악 지휘는 일언지하 거부했다.

파블로 카잘스의 유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도 있다. 역시 “세계적인 연주자”, “마에스트로” “예술의 거장”이었다. 카잘스는 나치에 협력했던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와의 공연은 끝내 거절했다. 자신의 조국이 프랑코의 독재통치로 암울한 시기에 빠져들자 일신의 안일을 좇지 않고 프랑코와는 적대적인 분노로 맞섰다. 프랑코가 카잘스를 영웅으로 받들고 전용 음악당을 지어주겠다, 전용 오케스트라도 붙여주겠다, 얼마든지 원하는 후원을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카잘스에겐 어림없는 얘기였다. 1971년 카잘스는 유엔본부에 초청을 받아 자신의 고향 카탈루나(Cataluna)의 민요 ‘새의 노래’ (El Cant Dels Ocells)를 연주하고 2년 뒤 푸에로트리코에서 96세 때 죽음을 맞는다. 그는 스페인이 민주주의를 되찾지 않는다면 자기는 죽어서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국땅에 자신의 주검을 그냥 있게 하라고 했다. 그의 시신은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난 이후인 1979년이 돼서야 조국 카탈루나로 돌아갔다.

음악이란,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

같은 음악도 어떤 목적으로 연주되는가에 따라서 음악의 해석은 천차만별인데, 특정 정치적 목적에 음악이 악용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토스카니니나 파블로 카잘스의 삶과 음악은, 음악이란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연주되어야 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비정상적인 체제에 협력하고 아부하여 자신의 영화(榮華)를 꾀하고 돈벌이로, 또 출세의 도구나 구실로, 특권적인 삶을 누리겠다는 식으로 음악이 연주되고 지휘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말한다. 이런 음악역사의 귀중한 사실은 이 땅의 음악인들에게도 두고두고 새겨져야 할 소명(召命)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