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정명훈 판단, 낡고 쇠퇴함을 부수는 파격을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1-12-13 11:15     조회 : 6276    
박원순 시장의 정명훈 판단, 낡고 쇠퇴함을 부수는 파격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발전을 위한 제언 2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064

지금은 지휘자가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주의 대중사회로 전환된 20세기 후반부터 유럽이나 미국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위상 또한 시대변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세계 최정상  이라 일컬어지는 베를린 필하모니는 지휘자를 선정할 때, 전 단원의 투표에  의해 결정한다. 또한 독일의 교향악단들은 일반적으로 신입 단원을 뽑을 때도 전 단원의 수락을 받아야 비로소 입단의 자격이 주어진다. 지휘자든, 신입 단원이든, 일정 기간 동안 전 단원에 의해 같이 음악을 할 음악동지인가를 확인하는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모아진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임명의 예

끝없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니의 카라얀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통해 음악 행정까지 두루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켰다. 그는 영상 미디어의 힘에 일찍 착안,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전용 스튜디오에서 10여대 이상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촬영하게 하였고, 편집에 까지 세세하게 관여했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카리스마는 세대의 변화에 따른 민주적 흐름이나 오케스트라 운영의 절차에서 단원들과 충돌을 빚었으며 단원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오랜 독단은 거부와 반감을 쌓게 됐다. 이후 1989년부터 베를린 필은 카라얀 시대의 종지부를 고하고, 지휘대의 민주주의 시대를 연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를 내세운다.

아바도가 건강 악화로 베를린 필을 떠난 이후 2002년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사이먼 래틀(Sir Simon Denis Rattle)의 베를린 필하모니 상임 지휘자 선정은 전 세계 클래식음악 팬들에게 영상으로 두 사람의 지휘를 중계하면서, 지휘자와 단원들과의 호흡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연습 실황이 방영되고, 전 단원들의 투표에 의해 사이먼 래틀이 선정되었다. 2010년에 단원들의 투표를 통해 임기가 2012년에서 2018년까지 연장, 현재까지 세계 최정상의 베를린 필을 이끌어가고 있는 래틀은 1980년 버밍엄의 열악한 처지였던 버밍엄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젊은 나이에 부임했다.

그는 그 곳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버밍엄시립교향악단을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발전시켰다. 특히 현대음악과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눈길을 끈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영국의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CBE 훈장을, 1994년에는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지휘료만 연간 평균 18억 내외 정도 지출한다면

정명훈의 상임지휘료와 다른 지휘자의 객원지휘료를 포함하여 연간 약 18억내외 정도가 지휘료로 서울시향이 지출한다. 지휘료 지출만으로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지휘료 지출과 거의 맞먹는다. 이런 지출의 규모라면 지금과 같은 정명훈 1인에게 지휘료를 몰아주는 식이 아니라, 젊고 패기 있는 한국인 지휘자를 상임으로 두고, 수 명의 국내외 객원 지휘자를 선정해 교향악단이 과거처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단원 경쟁 체제보다 지휘자 경쟁 체제로 가는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또는 세계적인 실력의 지휘자 3,4명을 명예지휘자로 위촉해서 연간 2-3회씩 연주지휘를 시키는 방식이 훨씬 더 다양한 연주지휘를 시민들은 경험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역시 세계 수준의 기량을 지닌 지휘자들과 연주를 함께 할 수 있고, 당연히 유료관객은 훨씬 많을 테고, 청중은 지속적으로 서울시향 연주를 찾아올 것이다.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의 대대적인 혁신이 서울시향에 있어야

지금과 같은 식의 단원들에게 숨 막히는 오디션으로 압력을 넣지 말고, 상임지휘자든 예술감독이든 직책에 걸맞게 최소 5개월간은 국내에 체류하며, 치밀하고 입체적인 연습방법과 연주일정을 알뜰하게 챙기고, 빛 좋은 개살구 식의 ‘찾아가는 음악회’ 등의 일정은 재조정되고,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도 정명훈만이 지휘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세계적인 지휘자들에게 정기연주회를 더 만들어 맡긴다면, 교향악단의 질은 성장하게 된다.


1인에게 몰아서 돈을 많이 준다고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는 건 아니다. 

서울시는 서울시향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더 살펴야 한다. 연주자의 안정적인 연주에의 몰두, 연주자 양성, 지휘자 양성, 영재 육성 등은 서울시향의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고, 서울시의 서울시향에 대한 지원과 주문이면서 시향과 서울시의 의무이기도 하다. 돈을 퍼부어 넘어설 수 있다면 이미 세계의 재벌인 아랍의 왕자들이 오일머니로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악단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돈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역사, 민주적인 운영방식, 단원의 자긍심과 앙상블,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기획 등 총체적인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의 대대적인 혁신이 서울시향에 있어야 할 때다. 지휘자와 예술감독을 한 사람이 겸임하게 하고 1인으로 하여금 무거운 책임을 떠맡기는 지금의 방식은 ‘토목공사식 문화성과주의’의 폐해이다.


정명훈의 재계약은 12월 중에 박원순 시장이 결정

시장이 바뀌었다. 밀실행정은 투명한 행정을 지향해야 한다. 서울시와 정명훈의 계약에서 불합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시향의 운영을 개선하기위해서라도 재계약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1인을 우상화하고 특권을 부여하는 식과 예술가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태도와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계약에서 서울시에 정명훈 일방의 우월적 계약은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공평성을 잃은 부분과 비효율적 계약은 서울시민을 모독하는 처사다. 불공정한 예산 집행을 눈감아 주면 안 된다. 보다 보편적이고 기회에서 공정하며 누구에게도 타당해야 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국가와 시민과 서울시향 단체를 높이고 살리는 방향으로 계약은 진행되어야 한다.

서울시 문화예술 행정의 새로운 비전을 위해서는 그 비전에 걸 맞는 낡고 쇠퇴한 방식을 부시는 파격적인 정책판단과 집행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때가 지금 이 때 박 시장 역할이다. 


서울시향의 발전을 위한 전용 콘서트홀 

전용 콘서트홀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이 찾아가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전용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 조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를 일일이 빌리지 않고도 전용 콘서트홀의 마련은 오케스트라의 질과 시민대중의 음악문화 수용의 측면에서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부지는 용산시민공원이 적절하지 않을까? 콘서트홀을 중심으로 녹음스튜디오 아카이브(archive)등이 함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있는 시설로 말이다.   


서울시향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재설계 할 때 고려 할 수 있는 요인들

서울시향은 재정의 80% 정도를 공공재원(서울시 출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비율로만 본다면 국내단체평균 10% 정도의 재정자립도와 비교할 때, 그나마 국내 국공립 예술단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낮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전적으로 공공재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인 추세가 아니다. 자금 재원조달의 다양화 문제는 서울시와 관계자들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울 때다. 전통적으로 공공에의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오케스트라들도 이 부분을 해소하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서울시처럼 현재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케스트라의 경영자 그리고 지휘자에게는 자주재원보전비율(재정자립도)에 대한 성과와 목표가 주어져야 한다. 예술의 성장은 반드시 계량화하여 측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경우 재원의 규모는 일정 오케스트라 발전에 비례한다. 경영자로서 그리고 상임지휘자 또는 예술감독으로써 공공재원 투여에 대한 성과 목표와 그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휘자와 경영자가 서로 견제하고 공동의 목표를 갖도록 유도하는 방식은 적극적으로 안출되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안정적 고용

국제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종신고용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양면성이 있다. 안정적인 예술활동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종종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고용의 형태를 준단원-단원-정년제 단원처럼 3단계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신예연주자들이 항상 등용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나이가 들거나 연주상해(musician's injury)로 연주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단원들을 교육프로그램 강사나 음악코치 등으로 재훈련시켜 퇴로를 열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평생을 음악연주를 한 사람의 소중한 경험을 서울시나 시향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마련이 시급하다. 서울시향은 공공재원 의존도가 높은 만큼 가장 중요한 고객인 시민들을 위해 봉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공공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음악교육, 찾아가는 음악회, 그리고 시 산하예술단체와의 협동창작에 명예단원의 역할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든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악(國樂)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어떤 나라든 자국의 전통음악이 있다. 서울시에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으로 창단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있다.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을 위해 매해 새로운 창작음악으로 관객과 만나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창단 이후 그간 정기연주회 300여회, 특별 연주회 2,000여회를 가졌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 한국음악의 대중화에도 기여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악관현악단은 전통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현대 및 미래의 한국음악을 창조해야하는 역할이 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1년 예산이 서양클래식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투입예산의 1/9이다. 2010년 사업비 인건비 포함 총예산이 22억원이다. 너무나 빈약한 재정이다. 서울시가 정명훈 1인에게 지급하는 돈의 수준이다. 숫자로만 바도 그동안 얼마나 국악을 서울시가 홀대해왔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서울시 예술행정의 본말이 크게 뒤집어진 사례다.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서울시향의 비전은 구체적이어야

물론 나는 서울시 산하 6개 예술전문단체의 예산은 증액되어야 하고, 서울시향의 예산지출과도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서울시향 예산도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향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시민들을 위한 유용한 프로그램 계발과 단원들의 다양한 훈련프로그램, 오케스트라의 연주중계시스템 마련 등, 오케스트라 체제의 현대화와 시민의 오케스트라 수용방식의 개발 등에는 더 많은 예산소요가 뒤따른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오케스트라 운영의 경영합리성에 있다. 지휘자 또는 상임지휘자의 대우 조정과 서울시향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매뉴얼의 개발, 예산지출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통해서 서울시와 서울시향이 합의하는 경영성과 지표를 도출, 엄정하게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것에 기초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 서울시향에 필요한 것은 7년간의 성과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보다 서울시향의 가치를 더 창출해낼 것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서울시향의 비전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서울시향이 되어야 한다.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 새로운 현실을 창조

그것은 특정인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개발형 경영식이나 막연한 전시선전용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 삶에 천작해 들어가는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의 안출과 전체 단원의 동의를 이끌어내어 오케스트라의 창의성을 높이는 것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시향이 서울이란 도시의 새로운 자원으로 제대로의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모험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기 위한 발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결국 여기에는 이제까지의 서울시의 문화예술정책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이에 따른 문화예술행정의 서울시 조직 개편이 먼저 요청된다.


시민의 노동으로의 세금인 공금에 대한 공경이 있어야 

사람은 노동을 하고 대가를 받고 삶을 영위한다. 돈의 많고 적음은 노동의 종류, 시간, 질, 조건, 상황에 따라 조절당하거나 노동을 주문하는 측과 타협도 한다. 때때로 노동의 강도나 양에 비하여 너무 적은 돈을 받는 경우도 많고, 노동의 수고는 하찮은데 지나치게 많은 돈을 불로소득처럼 챙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동에 대한 존경이 깨진 사회는 이미 무너진 사회다. 착취도 안 되지만, 노동에 있어서 지나친 과비용도 사회적 낭비고 상실이다. 하물며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 사기업이나 어느 특정 개인이 아닌, 시민의 세금인 공금으로 지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돈의 주인인 시민이 돈의 쓰임새를 잘 알 수도 없고, 또 시민이 노동해서 모아진 돈이 납득하기 어렵게 특정인의 예술적 특권을 위해 계속 비밀스럽게 지출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사회적 죄가 된다.


후기 - 하나의 주제로 칼럼의 길이로는 꽤 긴 글을 썼다.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글이다. 음악을 지휘하고 연주하고 듣는다는 건, 결국 생의 의미를 음악을 통해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자신을 알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더 알고, 세상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뜻을 물으러 길 떠나는 차비(差備)에 음악이 있다. 보헤미아(Bohemia)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근대세계의 분열상을 음악으로 재현했다. 그의 곡절 많은 삶만큼이나 그의 음악 또한 온몸으로 분열의 시대를 껴안은 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음역(音域)의 영토를 만들어냈다. 지난 12월 9일 나는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의 말러 연주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