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내다버린 민주주의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2-06-11 11:09     조회 : 5894    

2012년 6월, 내다버린 민주주의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서울시청 광장에서 KBS교향악단 연주를 들으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058

정말 뭘 하고 살았나?

어제 트위터 (audrey9596)에서 본 글이다. “낼이 6.10민주항쟁 25주년이구나! 한열이는 죽었고 영정 들었던 우상호는 야당최고위원,...나는야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반란수괴에게 예비장교들이 경례를 붙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우린 그동안 뭔 지랄을 하고 산걸까?”


미친 건가? 미치려고 하는가?

총선결과는 ‘새누리당’(한나라당)을 한껏 고무시켰다. ‘신 빨갱이’ 종북타령에 이어 국가관 검열, 드디어 육군사관학교장 중장 박종선은 군사반란수괴를 데려다가 사관생도들에게 경례와 사열까지 시켰다. 쿠데타 성공은 권력과 긴 목숨에 비례하는가?
국방장관 김관진은 즉각 책임지고 박종선과 동반 사퇴해야 한다.
국기와 군기가 같이 흔들렸으니 이명박 정권의 폐단은 막장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미친 건가? 미치려고 하는가? 대체 끝 간 데를 모르겠다. 


어제 저녁에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나갔다.

1987년 6월 10일 항쟁은 박정희 후예 전두환의 군사독재 종식을 고하는 계기였다. 이후 민주진영은 분열되었고 군사주의 변종 노태우정권이 들어섰지만, 내용적으로는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으로 큰 발걸음을 내디딘 일대 혁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어언 25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민주주의는 찾지 못했다. 심지어 주소도 문패도 없이 내팽개쳐져 ‘내다버린 민주주의’가 됐다.
뭔 삶을 살고 있었나? 자괴감으로 지새는 나날의 삶 자체가 너무 모욕적이다.
2012. 6.10에서는 “희망을 말한다”고 했다. 그렇다. 질곡(桎梏)의 현실이니 희망을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희망은 지금 튼실하게 준비되고 있는가?


이해찬 의원은

이해찬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새 대표에 선출됐다. 이 대표는 당장 ‘친노’라는 울타리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주문부터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민심과 괴리를 보인 민주당의 정치행태에 대한 통회(痛悔)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역할은 무겁다. 그가 나서서 그 무거운 짐을 지겠다고 한 것엔 그의 역할과 숙제가 있고 그의 결기를 모으는 단정함에 있다. 그러니 말한다. 정말 겸손하게, 절실하게, 처절하게, 민주주의를 되찾는 선두에 서기 바란다.

논어(論語)에 ‘자로’가 물었다(子路曰), “군자란 ‘치고 나가는 용기’를 으뜸으로 삼는 존재지요?”
공자가 말했다(子曰), “아니다! 군자란 의(義)를 제일의로 삼아야지 ‘치고 나가는 용기’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의롭지 못하면 사회를 어지럽히고 도둑이 될 수도 있다”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의 KBS교향악단

시청 앞 광장에 목관악기 오보에(Oboe) 소리가 들리고 첼로와 바이올린 음색이 어울려서 퍼졌다. KBS교향악단의 선율- 카자브예(Kazabue), ‘바람 피리(風笛)’ 곡이었다.

KBS교향악단이 결격지휘자 상임지휘자로 함신익이 부임한 이후부터 파행, 오늘로 138일째 교향악단 정상화를 위해 단원들이 투쟁하고 있다. 나도 그 투쟁에 합류해 글을 쓴지 만 4개월째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음악연주자들인 교향악단 단원들은 지휘자 함신익 부임 이후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까지 들었다. 이런 상태의 교향악단 모습을 일단 본 다음에는 난 안 본 것으로 할 수가 없었다. 더하여 이명박이 들어서고 4년 넘게, 내가 해야 할 업(業)인 예술작업은 거의 전념 못하고 온통 걱정으로 꽉 차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프레시안>, <한겨레신문>, 여기 <미디어오늘> 등에 칼럼을 많이 썼고 이즈음은 KBS교향악단 문제를 글로 쓰고 있다. 어디 이런 고통이 나만 있겠는가.


이명박 정권의 압축적 상징적인 문화예술 파괴실태, KBS교향악단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 정책은 무엇인가? 아니? 문화예술 정책이란 게 있긴 있는가? 김대중 정권에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표제를 내걸고 IT사업 등과 문화예술의 컨텐츠 개발 등에 주력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새 예술”정책이란 제목으로 문화예술의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실시한 바는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서도 문화예술정책을 세우고 펼친다는 소리는 딱히 들어본 적이 없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철학이 있었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지원은 하지 않아도 간섭은 하겠다’ 였다. 이명박 정권에서 문화·예술 정책의 시작은 ‘좌파 골라 찍어내기’였다. 갖가지 혐의를 씌워서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문화·예술 단체들이 쫓겨났다. 국립현대미술관장, 문화예술위원장 등이 있던 자리에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쫓겨났다. 정부기관이 동원됐고 기득권 언론과 우익 단체가 준동, 탈랜트 출신 장관이 앞장섰다. 결국 쫓아는 냈지만 법률 다툼에서는 하나같이 패소했다.     

여기에 이명박 선거특보 낙하산 사장이 KBS 사장 김인규다. 역시 ‘낙하산 지휘자’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았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는 공영성 강화와 시청자 서비스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하는데, 현재 경영의 총체적인 부실로 인한 빌미로 교향악단의 법인화를 추진, KBS의 경영부실을 교향악단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식으로, 교향악단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아 경영부실의 핑계거리를 꾀하겠다는 꼼수가 엿보인다고 앞글에서 썼다.

KBS교향악단은 2008년 단원 125명에서 현재 2012년 연주단원 80명으로 줄었다. 그 80명에서 이중삼중으로 징계를 71명이 받았고, 이제 어떤 안정적인 법적 뒷받침이 있는 예산대책도 안세우고 KBS교향악단을 법인화시켜 KBS는 밖으로 내쫒겠다는 식이다.

그동안 KBS교향악단의 운영이 효율적이지 못했던 원인은 법인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획·마케팅·경영을 책임질 전문 인력을 채용하지 않았고, KBS내에서 전문조직으로 편제시키지 않았음이 원인임을 나는 앞글에서 지적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KBS가 교향악단에 대한 가치이해와 인식이 성립되어 있지 않고 공사의 정관에 못 박고 있는 교향악단 “육성”, “유지” 의무사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나는 여러번 얘기했다.

방송을 통해서 교향악단을 활용할 의지도 없고 제대로 선용할 줄도 물론 모른다. KBS의 의지만 있다면 전문 경영인의 영입을 통한 교향악단 운영과 KBS 방송체제의 연계로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막대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고 후원금의 문제 또한  ‘사단법인 KBS교향악단 후원회’를 설립하면 꼭 교향악단의 법인화 없이도 해결될 수도 있었다고 나는 얘기한 바 있다.

시청자사업부가 작성한 ‘재단법인 KBS교향악단 설립(안)’의 허구는 재원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한 법률적 뒷받침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시청자사업부가 작성한 안에서 얘기하는 “2차 년도부터 KBS교부금은 악단운영비용 가운데 공연협찬 예상 수입을 제외하고 지원” 한다는 식인데, 전혀 현실 감각이 없는 재원 조달의 불안정성으로 위험한 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낙하산 사장체제’인 KBS 김인규 사장체제에서의 교향악단 법인화는 그 논의 자체가 부당하다.

서울시청 앞 KBS교향악단의 연주 ‘바람 피리’ 소리는 문득 35년 전인 1977년경 플라스틱 피리를 불던 내 고등학교 동창 미소년을 생각나게 했다. 


19세의 소년들의 세계엔 어둠으로 꽉 차 있었다.

스무 살 입대하기 전 열아홉에, 친구와 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었고 루소와 죤 스튜어트 밀을 읽기 시작했고 킹 크림선(King Crimson)의 ‘묘비명(Epitaph)’를 듣고 또 들었다. 우울했다. 소주도 그때 처음 마셔봤다. 그리고 좀 덜 우울할 땐 무디 불루스(Moody blues)의 노래 '비단에 쌓인 밤(Night in white satin)'을 들었다. 
나는 대학을 안 갔으니 만 스무 살 이전이지만 78년 가을에 먼저 군 입대를 했고, 친구는 서울대 공대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79년 봄에 입대를 했다. 우린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죽은 시간’ 동안 우린 세상과 절연하고 스스로 유폐하는 심정으로 지내기로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린 세상에 없는 거다’

만 3년 후에 제대를 하면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난 그에게 편지를 부치지도 않았고 나는 어떤 계절엔 휴가를 반납까지 하고 그냥 ‘죽은 그 곳’에 ‘죽은 것처럼’ 틀어박혀 지내기도 했다. 난 지독스럽게 그에게 편지를 부치지 않았지만, 친구는 나에게 몇 통의 편지를 부쳤다. 그 때가 79년경이었고 이듬해인 80년 5월 나는 육군 상병으로 강원도 철원 산속에서 근무를 했고, 친구는 80년 5.18에 차출을 받아 공수특전단으로 광주에 출동을 했다.


전두환 시기에 고등학교 내 동창의 죽음 

82년 늦여름이다. 당시 스물네 살, 한 청년의 괴로움이 온전하게 전해져 왔다. 80년 광주에 공수특전단 진압군으로 출동했다가 제대 직후에 스스로 세상을 마감한 내 고등학교 동창친구. 아름다운 친구였다.

81년 내가 먼저 제대하고 82년 봄에 그가 제대를 했다. 제대를 하고 다시 만난 내 친구는 거의 말이 없었다. 원래도 말이 적었지만 이젠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아낀 게 아니고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착검을 하고 M16 소총에 실탄 장전을 하고 맨 앞줄에서 명령을 받고 서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우린 제대를 했지만 군대 얘긴 서로 나누지 않았다.

이듬해인 82년 초여름에 내가 쓰고 연출한 연극을 보러 친구는 극장을 다녀갔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늦여름에 세상을 먼저 떠나버렸다. 내 친구는 광주에서 진압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는 간신히 몸은 살아서 제대는 했지만 이미 넋은 죽어서 제대를 했다.

어제 2012년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KBS교향악단의 카자브예(Kazabue) ‘바람 피리’ 소리는 나는 내 의식에 고여 있던 깊숙한 상처를 건드렸다. 30년도 더 이전에, 내 간절하게 우정을 나누었던 내 친구를 앗아갔던 그 지옥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놀랍도록 되풀이되고 있다. 이건 모독이고 치욕이다.

그렇게 많은 안타까운 생들이 다치고 죽으면서 간신히 세우고 일으킨 연약한 민주주의 6. 10인데, 이명박의 감언이설이 경제를 ‘인질’로 정권을 차고앉자마자 미친 세상으로 내몰았다. 사람들도 ‘민주주의’는 일찍 내다 버렸다. 

1980년 당시 갓 스물 둘 청년의 의식은 투명하다 못해 너무나 여리고 섬세했다. 
총검을 앞세우고 내달리다 제대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 친구의 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개 같은 전두환 시절’ 에 죽음으로 끝난 내 친구의 생은.
29만원 밖에 없다는 전두환은 온갖 사치로 너절한 인생을 겨워 살면서 하루 두 끼만 먹자고 헛소리를 하면서도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정작 전두환의 명령을 받고 출동할 수밖에 없었던 내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내다버린 민주주의’를 다시 찾아 일으켜 세운다면? 내 친구의 플라스틱 피리에서 들려오던 그 ‘바람 피리’ 소리는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King Crimson - EPITAPH(묘비명)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i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As silence drowns the screams.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When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예언자들이 새겨놓은 벽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악기 위로
태양이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헛된 꿈으로 분열될 때
누구도 월계관을 갖지 못할 겁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 버리듯

금가고 부서진 길을 내가 기어갈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뒤에서 웃을 수도 있을텐데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습니다.

민중이 우리의 장을 지키지 않는다면
지식은 그저 죽음의 친구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itgsSrprKQ&feature=player_detailpage



Moody blues - Night in white satin'
 
Nights in white satin
Never reaching the end
Letters I'd written
Never meaning to send

Beauty I'd always missed
With these eyes before
Just what the truth is
I can't say anymore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Gazing at people
Some hand in hand
Just what I'm going through
They can't understand

Some try to tell me
Thoughts they cannot defend
Just what you want to be
You'll be in the end
And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Nights in white satin
Never reaching the end
Letters I'd written
Never meaning to send

Beauty I'd always missed
With these eyes before
Just what the truth is
I can't say anymore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Cause I love you
Yes,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Oh, how I love you

하얀 공단에 싸인 밤
결코 끝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가 썼던 편지
보낼 생각도 없었으면서... 내 두 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운 그대
난 항상 그리워해요. 
무엇이 진실인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손에 손을 잡은
연인들을 응시해요
내가 당한 봉변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떤 이들은 답변하지도 못할
생각을 말하려 했어요. 
결국엔 되고자 하는대로
당신이 될거라면서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하얀 공단에 싸인 밤-
결코 끝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가 썻던 편지
보낼 생각도 없었으면서...

내 두 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운 그대
난 항상 그리워해요. 
무엇이 진실인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http://kr.youtube.com/watch?v=9muzyOd4Lh8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