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어머님의 생을 양지바른 곳에 모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2-08-30 09:14     조회 : 7543    

Kim Sang Soo PHOTO

태풍이 지나간 화창한 다음 날인 어제 오전에 제 어머님을 경기도 용인 양지바른 산중턱에 모셨습니다. 86년의 생(生) 이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태풍이 온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문상(問喪)을 와주셨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문(弔問) 내왕을 해주신 분들의 정성에 일일이 고개를 숙이고자 합니다.

햇수로 8년 전입니다. 어머님이 치매증상으로 요양병원에 막 입원하셨을 때 어느 날, 잠시잠시 세상 분간...이 계셨을 때인 날 오후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저와 둘째 형‘상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을 때가 다가온다고 나를 병원으로 옮기지는 말거라. 내 몸이 곡기(穀氣)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즉 음식을 먹지 못할 때, 나는 여기를 떠난다. 너무 슬퍼하거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탈속하신 듯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 당신은 비록 이승에서는 분별과 분간이 오락가락하셨지만 항상 타인을 대할 때는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셨습니다. 만 7년간 4군데의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돌봐주시던 간호사들의 한결같은 전언에 의하면, 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책을 보셨고 조용하셨고 천천히 걸음을 하셨고 느리게 또박또박 친절하게 말씀하셨고 처신이 깨끗하셨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이 떠나시던 날 밤, 요양원 <인덕원>에 간호사님들께서는 퇴근도 안하시고 기다리셨다가 줄지어 마지막 인사로 어머니에게 두손을 모아 합장(合掌)을 해주시는 그분들 모습에서 저는 간호사분들 말씀이 사실로 읽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인생에서 살고 죽음의 생사관은 간단(簡單)하셨습니다.
살고 죽음이 따로 떼어져 나누어져 있다고 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교(佛敎) 때문일까요?
어머니는 불교에서 천주교(天主敎), 다시 불교에서 천주교로, 아니면 불교와 천주교가 같이 있거나. 어머님을 모신 곳은 용인천주교 묘역입니다만 어머니는 천주교나 불교의 생사관과는 무관하게. 어쩌면 당신의 생시(生時)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구분하거나 토막 내지는 않으셨던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삶에‘안달’이 계시지 않으셨기에 일찍 사별한 남편 -제 아버지는 나이 49세에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의 도움 없이도 남은 저희 5형제를 당신의 힘으로 건사시키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희 형제들에게 해주신 어머니의 가름침도 간단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와 “도움을 받았다면 잊지 말라”, 그리고 “자존심을 지켜라”였습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조용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 말씀을 제대로 따르고 있진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제 어머님의 삶과 죽음의 사고(思考)는 복잡하지 않았고 죽음의 경계에서도 삶에 대한 조바심이 계시진 않으셨던 건 분명합니다. 죽음이 곧‘끝’은 아니라는 태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당하게 또 한편으론 조심스럽게 삶을 대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정신의 분별이 흐리지 않으실 때에 저와 둘째형‘상균’에게“내가 죽을 됐다고 당황해서 병원으로 옮기는 수고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신이 비록 이승에서 떠날 때에도 두려움보다는 죽음을 맞는 그 시간을 당신은‘누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마치 자연(自然)이고 자연처럼 말입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요양원 <인덕원>에서 6시간 동안 어머니는 들숨과 날숨을 쉬셨습니다.
제 누이‘상희’가 어머니의 옷장에서 어머니가 죽을 채비로 간수하신 흰 색의 치마저고리를 챙겼는데, 그 치마 저고리를 입으시고, 그렇게 어머니는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우리 형제들과 당신의 손주 아들딸들이 지켜보는 6시간 동안, 어머님 당신은 온전하게 당신의 힘만으로 숨을 쉬고 계셨습니다. 복부에서 가슴으로 나중에는 턱밑 바짝 어머니 숨결과 숨소리는 빠르고 늦게 또 빠르게,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셨습니다. 그렇게 가셨습니다.

마지막 6시간여 어머니 당신께서는 자식과 자손들이 지켜보는 임종(臨終)의 시간을 맞으셨고, 당신은 제 형제나 후손들에게 세상에 대한 집착을 주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바로 자연이셨습니다.

그 밤에 둘째 형‘상균’의 일터와 집이 가까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비로소 모셨습니다. 마침‘상균’형이 주일미사를 드리는 여의도성당의 신도님들이 계속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고, 이튿날엔 여의도 성당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신부님과 신도들이 장례미사를 지내주셨습니다, 장지까지 같이 해주신 여의도성당 분들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어머님의 임종에서 저는 제 삶을 반성합니다. 과연 무엇이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좀 더 삶의 일상에, 세상의‘사실’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어머님의 이승의 마지막에 저에제 주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새기고자 합니다.

태풍의 날씨를 무릅쓰고 제 어머니를 문상해주신 분들, 그리고 장지(葬地)까지 내왕하신 분들, 또한 멀리서 조의를 표해주신 분들과 장지에서 어머니 무덤 흙을 꼭꼭 밟아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어머니 인생에 따뜻함과 친절을 베풀어주신 어머니의 모든 세상인연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를 모신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립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