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의 과제 1 - ‘인간과 문화의 위기’에 대책을 세워라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2-10-12 14:35     조회 : 8776    

<미디어 오늘>에 보낸 칼럼이다.
[김상수 칼럼]

차기 대통령의 과제 1 - ‘인간과 문화의 위기’에 대책을 세워라

다시, 한국사회 위기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다.
경제 문제를 타개하는 문제의 중요성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적인 위기 뒤에 있는 정치적인 위기가 더 문제이며, 정치적인 위기 속에 있는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 떠받치고 있는 문화적인 위기가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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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안 된다.
 
2012년 현재 한국사회는 몹시 다급해졌다. 이명박 집단의 정권 5년이 경과한 현재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가장 근본에는 한국인들 삶의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말 기득권자들의 일대 정신파탄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사시사방이 문제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얼굴은 어둡고 눈빛은 탁하다. 심지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매일매일 수많은 문제들이 중첩되고 있는 오늘 여기 이 땅 한국의 현실에서, 남북 분단은 우리들 삶을 근본으로부터 옥죄고 있고, 한국 사회 내부는 지금 파열과 파행으로 일상의 삶 자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위기는 경제 문제로 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위기는 ‘경제의 위기’가 아니다. 삶이 위기이고 곧 삶의 태도인 문화가 위기다.

부패와 몰염치가 판을 치고 삶의 환경은 날로 피폐해져 개인적인 생존과 삶의 조건이 삶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고 인간의 자존심은 자꾸 상처 받고 모욕을 느낀다.

지난 시절 군사 독재 시대에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다치고 죽었다. 안타까운 생(生)들이 무차별로 희생당하면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이행을 조금씩 진전시켰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안이 보이지 않는 혼란과 총체적으로 ‘미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정당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 과연 이 땅에 희망은 있는가?

오는 12월 대선에서 국민은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뀐다고 우리들 삶에서 희망을 말하기는 어렵다. 5년 임기 대통령이 누적되고 산적한 우리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모두를 위한 사회정의, 모두가 지는 사회적 책임’은 너무나 요원하다. 정치적 집단들이 작금에 보여 주는 ‘정치적 붕괴’는 정치 행위의 가치 이해와 가치 목적, 가치 실천에서 파탄의 징후를 보인지도 오래다. 국민들이 정치에 느끼는 배신감은 이미 도를 넘었다. 반개혁의 새누리당이 대표하는 기득권세력들만이 나라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야당인 민주당 또한 이미 기득권세력으로 편입, 정치의 본령과 정치의 총론과 각론에서 방향을 잃었다. 바로 오늘 ‘안철수 현상’ 이를 말하고 있다.

적(敵)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와 정당은 개혁의 방향을 올바로 잡고 있지 못하며 그들의 언설(言說)은 국민 대중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참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의 실현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안철수의 등장도 그렇다. 안철수를 통해 한국의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 그저 일부 세력이 바뀌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까? 과연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실천될 수 있을까? 장담 못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 경제 문제는 해결될까? 그것도 모른다.

그렇다. 한국이 처한 당면 문제는 안철수 차원이 아니다. 우리들 삶의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사회는 불평등이 구조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거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화되고 있다. 경제의 효율성과 개인의 생존권 강제박탈은 과연 어떤 함수인가.
 
경제 발전은 국민 생활의 개선과 향상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 문제의 중요성이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일련의 경제과정에서 찌그러진 한 분배 구조를 바로잡고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는다면, 경제 개혁은 제한된 개선으로 ‘위장된 경제 개혁’으로 문제의 본질을 잠시 가릴 뿐 문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사회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거듭 여러 번 얘기하지만 ‘경제’를 위해서라도 한국사회는 사회정의와 공정성 수립이 우선이고 삶의 태도는 ‘문화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우리스스로 내부의 적들을 단속할 수 있는가하는 우리 능력의 문제가 여전히 요체란 말이다.

패거리정치가 속성인 한국정치 현실을 안철수나 문재인은 혁파할 수 있는가? 

안철수 대선후보는 최근 ‘정치개혁’을 말했다.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가 기초한 정치개혁 문서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정치개혁안은 총론과 각론에서 실천의지를 읽을 수 없는 ‘레토릭’으로 보였다. 동시에 문재인 후보 또한 정치개혁과 정치혁신에서 민주당의 기존안과 어떤 변별력이 있을까? 아니? 당장 제1야당 대선후보로 자신의 정치개혁 구상은 지니고 있는가도 의문이다. 

나라의 정치개혁이나 혁신이란 일관된 개혁 의지를 보여 주는가가 요건이다. 그리고 행정 체계를 국민일반의 입장에서 재편시킬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대통령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현실 정치의 시스템은 정치를 사의화(私意化)하기 십상이며 독점적인 자본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힘은 도리어 증대된다. 이는 ‘위장 개혁’의 버티기 행태로 계속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차기정권의 정치현실개혁이란 관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즉 방향을 올바로 잡지 못했음을 뜻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의 캠프는 정치개혁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실천 안을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울러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이 대표하는 기득권 세력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도 명확해야 한다. 특히 지난 5년간 이명박은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를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다시 국가 사회를 복원하자면 국민대중들은 고통이 따른다. 경제의 본원인 '경세제민'도 엉망으로 만들었고 국가의 자연도 박살을 내다시피 했다. 4대강을 제대로 복원하자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철저하게 악(惡)의 증대를 5년간 일삼는 인간이란 기이하리만큼 별종의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서하기 어려운 건 국가발전을 지체, 정체, 심지어 후퇴시킨 것이다. 같은 지구에서 인류로 살면서 이제 한국인들도 이 인류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좀 할 때도 지났지만, 여전히 인류에 많은 폐를 끼치고 있다. 이는 한국인들의 자존감을 퇴행시킨 것이다. 또한 한국의 지식생태계를 멸절시키다시피한 것도 용서하기 어렵다. 지식을 바르게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사회를 유도한 것이 아닌, 지식의 오용과 오염, 지식언어의 황폐화야말로 이명박 집단이 용서받기 어려운 해악질이었다. 차기 대통령은 임기 5년 내내 이명박 집단을 제대로 응징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짧다고 나는 본다. 철저하게 악의 뿌리를 뽑아낼 용기가 없다면 대선 후보 지금 접어야 한다.

계속해서 난맥을 보이고 있다.

사회 구조를 개편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역시 실패했다. 이들 정권은 기득권층에 포섭되는 경향으로 일관했다. 특히 노무현 정권과 재벌 삼성의 거래는 나라를 어지럽혔다.
대체 이들 정권의 개혁 표방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향한 개혁으로 떠들어댔단 말인가? 

노동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란 대기업과 자본 중심적 입장이며 노동자들은 안중에도 없다고 반발했다. 한때는 ‘대중 경제’를 내세웠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갑자기 말을 바꿔, 아니면 방법이나 순서를 바꿔, 기업이 잘돼야 국민 경제가 산다고, 국민 경제가 살기 위해서 노동자는 ‘개혁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노동자는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노무현 정권 역시 경제 개혁이란 사실상 노동자 정리 해고였음을 보여주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김대중 정권은 외국 자본의 투자 증가와 아이디어 만발의 벤처 기업들이 그들을 곧 살려 줄 것이라는 희망을 유포했다. 여기서 노무현 정권이나 현 이명박 정권이란 더 할 얘기도 없다.

자본과 노동의 힘이 균형을 잃으면 민주주의는 위협을 당한다.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약속은 허언이었고 그들 정권은 감당도 못했다. 그 약속의 유효성도 없었지만 그 내용도 타당하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전체 국민의 의사 결정의 정합성과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한다면, 적정 규모라는 게 없는 경제 활동에서 시장 경제의 속성은 어떻게 조정될 수 있을까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무지했다. 이명박은 애초부터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철저하게 재벌의 편에서 자신의 일가에만 어떻게 이익을 취하는가가 이명박의 관심이었다.

자, 그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얘기하는 ‘발전’의 정체는 무엇이고, ‘발전’의 관념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일본처럼, 미국처럼,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여타 유럽의 국가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건가. 혹시 이들의 얘기는 터무니없는 오해나 착각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움직여 온 ‘발전’이나 ‘성장’을 향한 모델이야말로 사실은 한국 사회 전체를 문제 덩어리로 만든 전형이 아닌가.

성장 또는 발전의 관념은 마구잡이로 자원을 끌어다 쓰고, 물과 공기를 더럽히면서 총체적 환경을 파괴하고, 심지어 우리들 의식까지 자꾸 소외시키고 있는 형국인데. 찬찬히 생각을 해보자.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발전’은 지금 살고 있는 우리는 물론, 우리 다음의 세대에까지 파멸을 향한 행진을 하게 하는 것은 혹시 아닌가.

과연 우리들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경제 문제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실존이란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 문제로만 일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 지나쳤다.
오직 돈만 벌면 만사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의 문제 해결 방식이 사람들 삶의 전부일 수 없다.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넓은 아파트에서 한세상 살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경제 문제를 화급하게 개선시키겠다는 현실 인식이 지나쳐, 삶의 모든 문제를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으로만 파악하여 경제만이 존재의 전부인 양 강요하는 생존 방식의 주창은 참으로 위험하다. 이는 국가 경제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쯤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인식의 착란을 현실로 받아들이겠다는, 또 다른 전체주의의 혐의가 짙다. 2012년 현재, 우리들의 삶의 고뇌는 점점 다급해지고 있다.

다시, 한국사회 위기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다.

경제 문제를 타개하는 문제의 중요성이 시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적인 위기 뒤에 있는 정치적인 위기가 더 문제이며, 정치적인 위기 속에 있는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 떠받치고 있는 문화적인 위기가 더 심각하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존재의 사회적 의미나 삶의 의미를 문제삼는 태도다. 즉 사람들이 살면서 구체적인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향해서 움직이는 모습이며, 그 목적들은 나날이 펼쳐지는 삶의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 인간의 조건으로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기초로 한다. 이 가능성은 인간의 실존을 부분적인 측면으로 축소하거나 극히 제한된 국면으로 몰아넣는 것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기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 아닌가. 세(世)와 민(民)은 경제의 가치와 이해를 합목적적으로 답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와 민을 빠뜨린 채 줄임말로 경제를 얘기하는 습성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경제를 걱정하지만 경제의 수단과 방법, 목적을 혼돈하면서 경제 실천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무슨 수를 쓰든지 돈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소비하는 물건이나 국가ㆍ사회ㆍ가정ㆍ직장ㆍ동료ㆍ가족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마저 극단적인 분열의 징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의 만연은 사회적 파국에까지 거칠 것이 없으며, 사회적 파국의 정체는 너나 구분 없이 거의 익명적(匿名的)이기까지 하다.

이는 곧 위기의 근본이 오직 경제만의 위기가 아님을, 더 깊고 지속적인 위기는 문화의 위기임을 반증한다. 이 문화의 위기는 실존의 위기이며 경제 위기 또한 이것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 문화의 위기는 우리들 삶의 현상에서 빚어지는 무수한 갈등과 마찰, 부패의 구조적인 일상화와 그런 일상에서 겪고 있는 비인간적인 고통과 인간 내면의 황폐화를 뜻한다. 공해와 오염, 무감각한 자연 파괴, ‘발전’의 논리를 앞세운 부조리한 실체들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위기, 전쟁이나 가난의 공포에 대한 기억만큼이나 위태롭다.

이 위기는 경제 문제에 대한 과잉의 사변(思辯)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를 수습하겠다는 문제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박근혜 후보, 그들은 지금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우리사회 문제의 근원에 대한 이해나 인식도 역부족으로 비친다. 정권을 잡으면 임시적인 땜질로 대강대강 눈가림하겠다는 일련의 얕은 정치적 대증적(對症的) 요법이 이들이 그간 발표한 정책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위기의 심각성은 더 한층 깊어진다.

진실로 지금의 대선후보들은 사태를 알아차리고 있는 것일까?

시시각각 이 땅에서 벌어지는 반생명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 국민들의 고통은, 사람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에 맞닥뜨려 있는데 과연 이들 대선후보들은 이 땅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일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에 참가하여 내 손으로 뽑을 다음 대통령은 바른길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대로 진행된다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흘린 피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