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틀 전 '시사평론가'이자 동양대교수 '진중권'을 고소했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3-10-14 15:30     조회 : 5741    
지금 한국사회는 이성보다는 '법'을 통한 강제가 과잉이다. 그래서 나는 불거지는 문제를 '법'에 기대어 해결하는 것은 가능한 피하거나 자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시사평론가이자 동양대학교 교수인 ‘진중권’을 검찰에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고소했다.

이명박이 ‘토목공사’식 발상으로 정명훈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임명, 이어서 오세훈으로 7년의 시간이 경과했을 때인 2년 전 2011년 11월, 정명훈이 지휘 때마다 공수해 온 외국인 연주자들로 채워져 연주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오케스트라 운영현실, 지휘자 정명훈에게 비행기 1등석의 무제한 제공과 고급 리무진 상시대기, 지휘 실력에 비해 과장되고 터무니없는 “세계적 지휘자”, “거장”, “마에스트로” 등의 국내매스컴이 만든 조어와 근거 없는 신화화, 그리고 중앙일보 기자 등 기득권 가짜보수 언론과 얼치기 ‘시장주의자’들이 정명훈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년간 20억원 이상의 과도한 변칙급여 지급과 수다한 공금의 유용 등을 확인한 나는, 서울시 예산 운영의 비공정성과 반투명성 문제를 ‘칼럼’으로 제기했다.

나의 문제제기가 있자, 신임 박원순 시장이 정명훈 연봉을 3년 계약 기간에 약 21억원 삭감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연봉의 삭감으로 보도됐지만, 연봉을 ‘보수’라는 표현으로 2억2천만원, 지휘료를 따로 받는 식의, ‘변칙계약’ 문제는 전혀 바로 잡히지 않았다. 햇수로 7년 동안 공금 유용에 해당하는 사항들만 삭감됐다.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인데도 공금 유용 규모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조사도 안 됐다. 내가 처음 <프레시안>에 문제제기를 한 이후, 이 문제에 관한 글을 <한겨레신문> ‘김상수 칼럼’에 1차례, <미디어오늘>에 인터뷰 포함 5차례 썼다. 그런데 서울시는 ‘연봉삭감’이라는 표현으로 호도, 정명훈과 재계약에 사인했다. 그건 ‘연봉삭감’이 아니다. 불요불급의 공금유용을 막은 것에 불과하다.

논란이 불거졌는데도 시민의 의견수렴도 없이 정명훈과 재계약을 결정한 박 시장의 업무방식은 큰 문제다. 정명훈의 태도도 그렇다. 그는 공금 유용문제가 사회공론화 됐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재계약에 나섰고, 시민들에겐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회적 비난 여론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어쨌든 나는 서울시 문화예술행정 지출에 대한 투명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 내 근본 의도였다.

내가 쓴 글이 나가자, 진중권이 당시 25만명 자신의 트위터 팔로우들에게 100여 차례 이상 글을 썼고, 나를 직간접으로 비난 모함하는 글을 수십 차례, 직접적으로 나를 거명하는 글을 27번이나 트위터로 날렸다.

그 무렵 KBS교향악단이 큰 어려움에 빠져,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KBS교향악단이 666회 정기공연을 앞두고 단원들은 연습 중에 상임지휘자의 카메라 채증테러에 항의를 하다가 억울함에 실신하여 들것에 실려 나가는 동영상을 나는 봤다. 끝내는 666회 정기공연 파행이라는 국립교향악단 역사포함 60년 KBS교향악단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이에 따른 책임을 KBS 사측과 상임지휘자 함신익은 힘없는 단원들 탓으로 돌렸다.

KBS교향악단이 이명박이 낙하한 ‘낙하산 상임지휘자’ 함신익으로 인하여 2년 이상 파괴당하고 있을 때, 과도한 스트레스로 악기를 부는 단원의 입이 삐뚤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난 가슴이 아팠고 분노가 일었고 이런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칼럼’ 을 쓸 수밖에 없었다. 또 진중권이 트위터로 못된 글을 송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누이들이 관계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문제제기 때 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몇 번에 걸쳐서 나를 명예훼손하고 인신모독하는 글을 썼다.

KBS 사측은 내 칼럼이 나가자 KBS의 명예를 내가 훼손했다하여 1억원 손해배상 민사소송으로, KBS교향악단 운영팀장인 KBS 간부직원은 나를 형사소송으로 고소해왔다. 1년간 나는 경찰과 검찰 법원으로 불려 다녀야만 했다. 다행히 KBS 사측과 KBS 간부와의 법률 다툼에서 나는 그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전부 물리치고 이겼다.

이제 다음 순서는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나를 “완장 찬 서북청년단”으로 묘사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서북청년단'은 한국 역사에서 공포와 광기를 보여준 범죄 집단이다. '서북청년단'의 원래 명칭은 '서북청년회'였다. 월남한 이북 출신 청년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이 단체는 이승만과 이승만 계열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자금으로 운영됐다. 민간인을 감금, 고문, 강간하고 무차별로 학살했던 서북청년단 죄상은 객관적인 사실로 밝혀졌고, 역사는 서북청년단을 정치적 테러행위를 일삼은 전국을 무대로 한 거대 정치폭력조직으로 규정했다.

진중권은 또 나를 “좌파”, “무식한 진보”, "김상수 부류", “완장찬 듣보잡”, “어설픈 정치논리의 망나니”, “진보 꼴통”, “변희재 데칼코마니”, “진보진영이 졸지에 문화적 야만” "'정통' 좌파의 담론수준" "운동권" 등의 표현으로 일방의 ‘진영’으로 싸잡아 표현했다.

나에 대한 인신모독과 명예훼손은 가히 저열하기가 무차별적이고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음악이나 예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 "문화쪽에서 완장차고 설치는 자”, “음악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자”, “꼴통”, “또라이”, “거짓말쟁이”, “완장차고 애먼 사람들 조지고”,“나랏돈 타 먹는 프로젝트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드는 부류” , "히틀러는 무슨 예술가 예술가로서 걔 수준은 김상수 급" 등 온갖 악의적인 험담으로 나를 비하하면서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25만명 자신의 트위터 팔로우들에게 날렸다.

진중권은 트위터로 나를 지칭해 "음악이나 예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그 친구”등으로 표현하나, 나는 진중권이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일 때인 1978년에 이미 극작, 연출로 작품을 발표하고 80년대 전두환 무력시절에 가장 곤경에 처한 시대에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 예술작업으로 사회문제를 표현해나갔다. 한국연극사(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희곡사(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의 저서에 이미 80년대 90년대에 생존작가지만 기록되어있다.

그는 내 '칼럼'을 실은 <미디어오늘>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미디어오늘, 저질 매체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이 분들의 보도 수법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기 올라온 기사들은 다른 것들도 일단 한번 걸러서 읽으세요." 라고 했으며,

"...사회주의몰락 이후 이른바 '정통' 좌파의 담론수준이 답보를 넘어 퇴보한 듯. 내가 아직 확신에 가득찬 공산주의자였던 시절에도 예술을 저렇게 천박하게 보지는 않았는데." 식의 글을 트위터에 썼다.

지식인으로의 시사평론가이자 대학교수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느 것이 제대로 된 평가이고 어느 것이 거짓된 언어인지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 건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상대방을 선입견의 그물에 가두고 말하는 소위 프레임으로 낙인 찍어버린다. 사실이나 진실의 문제 제기도 이념이나 주장, 시각의 문제로 억지로 뒤집어버리는 진영 논리를 동원하는 식은, 정작 문제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하고, 사람들의 시각이나 시야를 크게 그르치게 하는 것으로, 나쁜 꾀를 써서 타인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모해(謀害)다. 이는 시사평론가나 대학교수로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진중권은 25만명 자신의 트위터 팔로우들에게 (현재는 36만명) 일방의 허위사실로 나쁜 영향을 끼치고자 의도하는 태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삐뚤어진 시각, 삐뚤어진 이념의 문제로 변질시켜 문제제기를 곡해하게끔 유도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가한 진중권의 트위터 글은 사실과 실증이 실종된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요설(饒舌)이자 요사스러운 수작인 요설(妖說)이다. 기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빌어서 사회 금도를 넘어선 비정상적이고 반이성적인 위험한 사회적 교란이자 대중교란이며 근본으로부터는 잘못된 ‘못된 행위’다. 더구나 ‘표현의 자유’가 아님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는 언어로 가하는 폭력일 뿐이다. 나는 사법의 심판으로 ‘진중권’의 언어폭력에 대한 단호하고 추상같은 단죄를 오늘 검찰에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