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조하나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5-26 08:54     조회 : 25990    

nikon 35ti

조하나는 전라남도 진도 출생이다.
진도는 아직까지도 우리 민속 문화의 원형적인 요소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다.
그런 진도에서 태어난 조하나에게 한국무용은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의 업(業)이다.

간간이 조하나가 텔레비전 연기자로 얼굴을 비치지만 천생 그녀는 춤추는 여자다.

벌써 10년도 넘었다.
조하나가 텔레비전에서 연기를 막 시작할 때 그녀는 금새 내 눈에 띄었다.
흰 얼굴 맑은 눈빛, 있는듯 없는듯 아주 조용한 처신,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 나는 그 당시에 조하나를 주인공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구상하다가 중도에 텔레비전 일을 그만두었다. 지금도 내내 그게 미안한 생각이다.
방송국 분위기가 나하고 영 맞지 않았고 이래저래 갈등을 느끼던 차에 어느 날 일체의 방송 일을 그만 하기로 한 것이다. 가끔 조하나를 생각할 때면, 조하나를 주인공으로 드라마 한 편은 마저하고 그만 두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내 형편이었다면 하고.

조하나의 연기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한 집중과 불섶에 뛰어드는 폭발력이 있다.
그러나 국화빵 찍는 것 같은 우리나라 방송 드라마 제작현실에서는 조하나를 알아보는 눈은 많지 않다. 그래서 크게 눈에 띄지 못했다.
까불거리고 사방을 기웃거리고 싹싹하게 인사도 하고 이래저래 튀어야만 하는 방송 연기자 패턴에서 조하나는 그저 묵묵하게 소처럼 주어진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불쑥 무용에 집중하겠다, 고 했다.
숙명여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전통 무용을 공부하면서 한국 무용을 이론적 체계적으로 들여다보는 노력을 조하나는 하기 시작했다.  무용의 악보인 무보(舞譜)작업이 한국 전통무용에는 너무 부실하다고 얘기하면서 전통 무용의 무보작업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1년전 겨울에 만나고 얼마전엔 '파리의 투안 두옹' 인사동 전시장에 나타났다.
며칠 후에는 자신이 안무를 하는, 조만간 있을 무용 공연에 연출과 안무 구상을 들고 찾아왔다, 작품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을 했다, 자기 고향인 진도의 냄새가 물씬나는 무녀(巫女)의 이야기였다.
무당인 모친과 무당이기를 거부하는 딸의 이야기.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연출이나 안무를 풀어 나가는 조하나의 구상은 깔끔했다.

"선생님, 가을에는 또 다른 큰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꼭 도와 주실거죠?"
"하나가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뭘"
"도와 주셔야 해요!"
"테레비 드라마 연기는 안하니? 요새 좀 뜸하게 보인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선생님이 잘 안보시면서 뭐. 저는 초조할 것 하나  없어요. 연기는 좋아서 하는거고 또 제가 평생할 건데요. 뭐"

대견했다.
젊은 여자 연기자들은 대개의 경우가 초조해하기 십상이다. 물갈이가 빨리되곤 하는 텔레비전 여자 연기자들 풍토에서. 그러나 조하나는 '연기자'로도 자신의 삶을 살 생각이기 때문에 하나도 초조하지 않다고 했다.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주어지면 큰 부담없이 잘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용에 춤에 더 충실하고 싶단다.

춤!
춤은 시간과 공간에 아찔하게 피어나는 순간, 순간의 예술이다.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몸으로 채우고 갈라내어 예민하게 몸을 태우고 사르는 예술이춤이다. 난 몇명의 뛰어난 춤꾼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마음씨도 참 포근하다. 몸을 통해서 마음과 뜻을, 영혼을 전달하는 그들이기에 마음과 몸이 관념과 육체가 동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난 조하나가 최고 최선의 춤꾼이 되길 바란다.
그녀의 육체가 허락하는 시간동안 철저하게 제대로의 춤꾼이길 바란다. 
춤은 영혼이 질러대는 몸의 울부짖음이다.
몸의 탐구와 몸의 엄정한 기율과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부단한 훈련을 통해서 몸의  자유를 표현하는 춤은 몸의 관능(官能)이고 감각(感覺) 그 자체다.
몸의 생기(生氣) 그것이다.

춤은 마음의 풍경(風景)이다.   
조하나가 자신의 몸으로 온전하게 마음의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를 난 바란다.
1년 전 겨울에 nikon 35ti-지금은 없어진- 카메라로 찍은 두 장의 조하나 모습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