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르 드골' 공항과 인천공항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2-12 19:07     조회 : 23472    



이미 고인이 된 전직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은 파리의 공항. '샤를르 드골'
유럽 중심의 관문이라고 할만큼 하루에도 수백편의 항공기가 이착륙을 한다.
이 공항에는 '프랑스의 대문' 으로 그 독특한 색깔이 있다.
공항 디자인과 건축설계와 공법에서 최첨단의 기능과 예술적인 심미안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프랑스적' 인 나름대로의 미학을 응축하고 있다.
비행장의 기능과 설비, 관리와 운영에서만 뛰어난 게 아니라 공항의 개성적인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커다란 현대미술관에 들어서는, 그것도 프랑스적인, 말이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구조와 형태들, 비행기의 뼈대를 연상시키는 대합실의 천장처리 등.
안락한 소파들, 자유로운 보행과 적당한 채광의 현대미술적인 벽면처리.
움직이는 동선의 면밀한 계산 등등.

인천 공항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들고나올 때마다 난 몹시 화가 난다.
우리나라 '한국의 대문' 인 인천공항에는 그 어떤 한국적인 심미적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건축적으로 봐도 어떤 독특함이란 아예 없다.
일본 오사카 칸사이 공항의 변형같은 디자인이다. 크고 높아서 시원하긴 한데 휑한 느낌이
고, 또 크고 높게 짓는 건 국제공항의 이용객이 늘어나니 일반적인 추세가 아닌가. 큰크리트
벽면처리 또한 그렇고.
기능적으로 빼어난가, 아니다. 비행기를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 통관대까지 갈 수 있다.
설비와 운영이 뛰어난가, 이도 아니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인천공항이 '한국의 대문'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한국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느낄 수 없는 디자인과 장식에 난 화가 난다.
도대체 어디나라에 지금 내가 내렸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큰 콘크리트 물질덩어리로 내가 끌려 들어가는 기괴한 느낌이외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려 아무 문양도 없는 회색의 카펫을 밟고 공항 실내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
에 뜨이는게 무엇인지 아는가?
삼성카드, 아메리카엑스프레스카드, L.G기업제품 선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천공항은 '한국의 대문' 이 아니라 '대기업의 대문'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역사도 문화도 예술도 현대미술도 하나 없는 대기업만의 나라인가.
낯선 외국인이 처음 찾아오면 눈에 띄는 게 대기업 선전 광고판 일색이니.
자국인인 우린 아예 무감각하고.

싱가폴 '창이' 공항을 보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싱가폴 만의 칼라풀한 문양이 새겨진 푹
신한 카펫이 발걸음을 디디게 한다.
아, 여긴 싱가폴이구만, 저절로 이국적인 느낌이 온다.
타이완(대만) 공항에는 중국식의 엄청나게 큰 도자기와 대형 그림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압축해 준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함부로 업신여기는 나라의 공항들을 보라, 비록 시설은 낡고 추루하고
작아도 그 나라의 느낌을 확연하게 건축에서 실내장식과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인천공항의 문제를 이 나라 높은 양반들한테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다.
2002년 정부가 지정한 '한국 방문의 해' 에는 그 행사의 총괄인 문화관광부 '한국 방문의 해
단장' 님한테도 얘길 했고. 2003년에는 문화관광부 '차관' 님에게도 인천 공항의 이미지를 개
선하는 문제에 대해서 길게 얘기를 했다.
수긍을 하는지 마는지, 내가 얘기를 하면 고개만 끄덕이다가 만다.
이 분들이 업무가 많고 바빠서 그런가, 아니면 무관심해서.
아니면, 관할행정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 우리나라 관광행정을 어디서 주관하는가? 문화관광부가 그 주무부서가 아닌가?
공항관리공단측과 협력하고 토론해서 또 교통부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면 안되는가?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현대미술가들은 없는가? 다 죽고 돌아가셨는가?

자, 이번에는 인천공항에서 공항고속도로로 들어서 보라,
도대체 뭐가 시야에 들어오는가.
파헤쳐진 산과 아파트 단지, 그리고 대기업의 광고판이 줄을 지어 줄줄이 지나간다.
이 나라의 '대문' 을 통한 첫 이미지는 대기업의 광고 간판이 열지어 행렬을 보이는 게 전부
다.
삼성의 나라, 현대의 나라, 대우의 나라, L.G의 나라, 이게 이 '나라 대문' 이고 첫 길이다.
아, 그렇다. 간간이 갯벌과 바다와 논밭이 보이긴 한다.
차라리 그게 내겐 숨구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