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소설 한 편 작업을 끝냈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8-01-29 06:11     조회 : 23104    

Christchurch City Sketch-

나는 두 편의 소설 작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곳에 왔다. 
그중에 한 편의 소설 초고를 오늘 이른 새벽에 일단 끝마쳤다.

1월이 가기 전에 한 편을 끝내야만, 계획대로 또 다른 한 편을 진행할 수 있다는 강박(强拍)으로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내 스스로를 한꺼번에 몰아세웠다.

원고를 서울에 보내고 나니 신열(身熱)이 났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동이 트자마자 자전거를 몰고 동쪽으로 내달렸다.
패달을 세게 밟았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숨차게 달리다가 막 문을 여는 카페로 들어가 ‘long black'커피를 사발 크기의 찻잔에 시켜 천천히 마셨다. 온 몸이 풀려오는듯 했다 .
 
소설 작업은 1995년에 장편 ‘아름다운 사람’(보성출판사) 한 권을 책으로 출판해 보고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작업이다.
벌써 13년 전인 1995년 당시 그 소설은 출판사 사장이 좀 팔릴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면서 초판을 1만권이나 찍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겨우 2천부나 나갔을까.

김영삼 시대 때 전두환 노태우 등 반란군을 재판까지 몰고 가 사형언도를 하고서도 정치적인 흥정으로 사면을 해주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방송국 여성 뉴스 앵커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假想) 소설이었는데,

-나는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뉴스를 ‘그냥 읽는’ 아나운서를 ‘앵커’라고 자기들이 스스로 붙이는 명칭에 대해서 심각한 언어의 오남용이라고 생각한다. 앵커란 an·chor, 뉴스 취재권, 편집권, 해설권이 있어야 하고 뉴스 진행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이지, 앵무새마냥 문자판을 보면서 그냥 뉴스를 ‘잘 읽는’ 경우는 아나운서이지 절대 앵커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T.V에 뉴스 진행자는 있지만 ‘앵커’는 아직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없다. 이는 방송 체제의 후진성을 말한다-

소설이 출판된 직후에 나는 프랑스 파리에 미술 전시를 하러 가 서울을 비웠고, 소설 내용 중에 대우그룹회장 김우중이 비자금 횡령으로 재판받는 실재 사건을 인용한 대목이 나오는데, 대우그룹 비서실에서 출판사로 협박 전화를 걸어오는 등, 출판사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못하고, 않고, 어정쩡하게 주저앉는 바람에 그 책은 제대로 알려질 기회도 없었다. 한심한 경우였다.

이후 소설작업이란 언어의 장인(匠人)들이 하는 대상이지, 나같이 협소한 언어구사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라 감히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그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소설을 다시 작업하기 시작한 이유에는, 긴 시간 동안 영화화할 것을 전제로 애를 태우던 소재를 마냥 영화화 될 때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고, 일단 우리말로 소설 작업을 해서라도 계속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를 갖자는 의미다.

이 소설 <티파사의 아침>은 15년 전에 구상하고 이후 영화 시나리오로 쓴 것을 이번에 소설로 재작업 한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이 현장인데 나는 아직 미국을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지도를 펼쳐놓고 써나간 ‘로드무비’ 형식의 소설이다. 미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서도 미국이 배경인 얘기를 쓴다? 리얼리티가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을 가보지 않고서도 미국을 대상으로 쓸 만큼, 내 의식 속에 미국문화가 침투해있다는 반증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고 말(馬)이 주인공인 이 소설 <티파사의 아침>은 영어권에서 영화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호주로 이곳 뉴질랜드로 내가 들고 다니기도 한 시나리오인데, 현재 시나리오는 영어로 1차 초벌 번역이 된 상태이다. 

오랫만에 하는 소설 작업이 그저 기천부나 팔릴까 말까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독자와의 소통 문제가 낯설고 두렵기는 하다.
성과가 좀 있게 된다면 영어권에서도 출판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고 꼭 영화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다.

나는 지난 12월 12일에 여기 내 홈폐이지 visual diary no 219, 에 소설 쓰기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올린 바 있다.


“여기서 소설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그것도 두 편을.
십년도 더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볼 생각이다.
이제는 해볼까 한다. 잘될까? 어쨌든 시작은 하고 볼 일이다.

나는 소설이란 장르가 조울증 같은 자폐증이나
막연한 불안을 부추기는 파괴의식, 그리고 쓸 데 없는
종말의 관념같은 허접한 것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축조(築造)하는 힘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어서 이곳에서 2월 중으로 작업을 끝낼 예정인 다른 한 편 소설은, 역시 착상한지
15년도 더 된 소재이고 영화 시나리오로 작업을 끝낸 지 이미 10년 전인 오랜 내용인데, 일본이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면서 한국도 무대인 1979년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시간대의 얘기다.

한국에서 제작자를 만날 수 없어서 일본에서 만난 일본인 영화 프로듀서가 제작 진행을 하겠다고 얘기된 바 있는 이 시나리오 <아버지의 새벽>은 차일피일 영화로 제작될 것을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이것 또한 묵혀둘 게 아니고 먼저 우리말 소설로 발표를 하자는 생각으로 이번에 소설로 재작업을 하게 된다.

내가 만난 적이 있는 한 일본 작가가 생각난다. 그는 모든 소재를 일단 소설로 먼저 발표를 한 이후에 영화 시나리오나 방송 대본 등 ‘멀티장르’로 풀어나가는 식인데, 나의 경우에는 그런 생각보다는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의 독특한 ‘언어의 예술’이고 독자적인 장르로 고유성이 있는 만큼, 그 본래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의식하면서 작업을 하고자 했고, 지금 한다.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문학을, 소설 작업에도 정진해 볼 생각이다.
 
이번 2월중에 이곳에서 <아버지의 새벽> 소설 작업도 곧 끝낸다.
두 권의 소설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시점은 오는 늦은 봄이나 여름쯤?

출판이란 또 다른, 어려운, ‘장르’다.
‘훌륭한 소설’이라고 반드시 잘 팔린다는 보장도 없고, 여러 층층의 출판사가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다양한 출판사 사장이 있으니, 어떤 식으로 누구와 어떻게 만나지는가의 문제이고, 이도저도 내 뜻대로 일을 진행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법이다. 여불비례(餘不備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