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딸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8-02-01 06:49     조회 : 22728    

며칠째 심하게 앓고 있다.
1년에 한번이나 두 번쯤 거동이 어려우리만큼 아플 때가 있다.
이번 몸살도 지독하다. 춥고 덥고 비오고, 태양이 있을 땐 다 태워버릴 듯이 뜨겁다가도 해가지면 한국의 늦가을처럼 갑자기 쌀쌀하고, 사계절이 하루에도 다 있는 이곳, 지구가 병들어서 여기 올해 여름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단다.
날씨의 변덕에도 그럭저럭 버텨오던 몸의 균형이 소설 한 편을 끝낸 다음날 바로 깨졌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이곳에서 알게 된 여성 화가이자 도예가인 이경옥씨. 왜 아프면서도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 고 한다.
고마운 분이다. 

부군이 NewZealand Christchurch City 대한항공 지점장으로 이 도시에 왔다가 이 도시에서 삶을 새로 개척하면서 두 아들을 장가까지 보내고 이 도시에 정주했단다.

1979년에서 1980년 당시 전두환이 반란군을 끌어 모을 때 전방을 지키는 사단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전두환 일당에게 동조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방 야전 사단에 사단장은 맡은 임무에 충실했어야했지 정치 장교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전두환 무리에 끼었던 장군 계급장을 단 하사관 수준의 이들이 이후 금력과 권력 이십년을 누릴 동안, 그 무리에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장군들은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장군들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어야만했었다.

지금도 그녀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연대장으로 참전하여 미군이 월남전에서 화학 무기로 개발하여 전쟁중에 마구 뿌린 고엽제(枯葉劑), 제초제(dioxin)(정식 명칭은 tetrachlorodibenzo-p-dioxin) 후유증 때문에 병고에 시달리고 있단다.

“이 도시를 보세요. 백년도 더 이전에 공원을 만든다고 사람들이 나무를 심었지요. 그 나무 밑에서 지금 사람들이 삶을 누리고요. 김선생님도 여기 우연히 오셨지만 그냥 오신 게 아니지요. 다 뜻이 있어요. 여기에 기운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오신 거고요”
그녀는 내게 숙제를 막 준다. 여기에 사는 한국인들과 뉴질랜드인 사람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야한단다.

“여기 도시 중심 교회 광장에 있는 설치미술은 뉴질랜드에서 유명하다는 미술가가 한 건데, 더 넓은 장소로 옮기고  내 생각에는 김선생님 설치미술로 바꾸면 좋겠어요. 선생님 작품 중에 거울같은 걸로요. 그렇죠?”
숙제만 주는 게 아니고 엄청난 격려도 막 한다. 이 도시 중심광장에 조형 설치미술을 내 것으로 바꾸어야 한단다.
심지어는, “여기서 장가가고 여기서 사세요. 내가 참한 여자 소개 할게요. 이제 김선생님도 자식도 낳고 가족도 있어봐야지요.”
이제는 내 늦장가 가는 것까지도 걱정한다.
“저기 산에 가면 결혼식도 근사하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요. 이 도시가 다 내려다보이는 곳이지요. 내 아들 녀석도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거긴 장소 임대료도 없어요. 공짜에요.”

“예술가란 미친 사람들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멀쩡하다고 여기면서 안 미친척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서 미쳐주고 또 이런 거 저런 거 다 보이니까 곱빼기로 미치지요.” 
그녀가 무심히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시(詩)다.
동서남북 시도 장소도 구획 없이 마구 넘나든다.
얘기를 잘 알아듣지 않으면 헷갈린다. 그러나 조금만 인내를 하고 듣자면 그녀의 얘기는 술술 다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