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내가 어디에 있든 어디에 가든, 나는 한국에 있다 - New Zealand Waitangi Day에 대한 단상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8-02-07 03:31     조회 : 16802    

photo - 내 사는 동네 입구에 있는 마오리(Maori)족 기념상

오늘 설날에, 내가 어디에 있든 어디에 가든, 나는 한국에 있다.
이곳 New Zealand에서 설날(舊正)을 맞는다.

어제는 마침 이 나라 국경일이기도 했다.
지난 1월 26일 호주에서도 호주의 날로 성대한 호주의 국경일을 기념했지만 호주 원주민들은 바로 이날을 호주 침략의 날로 부르며 영국인 정착민들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있다.호주와 뉴질랜드 간의 차이는 바로 양국의 기념일을 제정하게 된 근본이 다르다는 점이다. 
호주의 날이 영국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자기들 정착을 일방적으로 기념하면서 현재까지도 정당한 법적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호주 원주민들은 이 날을 백인들에 의한 호주 침략의 날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뉴질랜드는 1840년 이전에 정착한 일부 영국인들과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 끝에 결국 마오리족들은 영국여왕이 통치하는 영국 식민지로 영국의 통치에 복종하는 대신, 영국 식민지의 국민으로 인정받으며, 마오리들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한 영국 여왕에게 마오리의 토지를 판매, 양여하는 한편, 영국인을 중심으로 한 백인들과 동등한 위상으로 함께 평화롭게 살기로 평화 조약을 맺은 날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땅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발견된 곳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약 1000년 전부터 살기는 했지만 약 150여년 전에야 비로소 뉴질랜드라는 국가가 형성되었다.
많은 영국인이 뉴질랜드로 이주해 올 것을 예상하여 영국정부는 마오리족들과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대표를 파견하여 마오리족들과 영국사이에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 조약이 유명한 와이탕이 조약이다.

조약이 서명된 2월 6일이(Waitangi Day)라는 국경일이다. 그러나 와이탕이 조약의 내용은 상호 우호적이며 양방에게 공정한 것이라고 해도,
마오리어와 영어 양계약서에 조인된 내용의 해석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는 유럽에서 이민자 수가 증가하면서 영어와 마오리어로 조인된 내용의 해석 문제를 놓고 토지에 관한 갈등이 속출하였다.
이에 마오리족은 1860년 자치 정부를 세웠고 이 갈등은 전쟁으로 표출되어 1860~1865년 유럽인과 마오리족은 마오리 전쟁을 치른다.
결과는 유럽인의 승리로 조약의 내용은 무시된 채 마오리족의 토지는 몰수된다.

1860년대부터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 이후 유럽인의 정착과 영향력은 더욱 증가하여 뉴질랜드는 농, 목축업이 발달한 나라가 되었으나
반면 마오리족의 인구는 1900년까지 급속히 감소했고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분투를 계속한다.
20세기에 들어와 남태평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뉴질랜드는 마오리족에 대한 태도를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1987년 무효화를 선언했던 와이탕이 조약의 재검토를 시작하여 원계약 상태로의 복귀를 선언, 마오리족에게 불공정하게 몰수된 토지를 보상해 주었고 교육과 제반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뉴질랜드는 유럽과 마오리의 문화를 잘 조화 시키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첫 정착자는 동폴리네시아계의 마오리족이다.
마오리족의 탐험가 쿠페(Kupe) 일행은 AD 950년경 폴리네시아(하와이, 뉴질랜드, 피지, 사모아 등 태평양의 섬들)의 하와이키(Hawaiki) 섬으로부터 조상의 생선인 테-이카-아-마우이를 찾아 뉴질랜드로 첫발을 디뎠다. 쿠페 일행이 처음 뉴질랜드를 멀리서 보았을 때 길고 흰 구름을 보고 'Aotearoa(아오테아로아)-긴 흰구름의 나라' 라고 외친데서 뉴질랜드의 마오리어 공식명은 아오테아로아가 되었다.

몇 세기 후 하와이키 내부의 문제로 1350년경 마오리족은 쿠페가 남긴 항해 지시를 따라 카누를 이끌고 뉴질랜드로 이주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항해사 에이벌 태즈먼(Abel Tasman)은 북반구 대륙과 균형을 이루는 거대한 남반구 대륙의 존재를 찾아 인도네시아로부터 호주를 거쳐 항해하여 뉴질랜드를 발견한 첫 유럽인이 된다. 그러나 그는 뉴질랜드에 오래 머물지 않고 서해안만을 항해한 후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뉴질랜드'라는 국명은 태즈먼이 이때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의 지명 'Zeeland'에서 따와 'Nieuw Zeeland'라 새땅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100여년 동안 다른 유럽인의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1769년에 와서야 영국 항해사 제임스 쿡(James Cook)이 뉴질랜드로 항해하였다.
제임스 쿡은 여러지역을 탐사하고 지도를 만들었는데 아직도 뉴질랜드의 여러 지명이 그가 남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남북섬을 모두 항해하고 뉴질랜드가 거대한 남반구 대륙의 일부가 아님을 확인한 후 그 땅이 영국의 소유임을 선언하였다. 물개와 고래 사냥꾼이 그 뒤를 이었으며 19세기초 유럽인들이 산업 혁명의 폐해로부터 도피하기 시작하면서 뉴질랜드에는 정착민이 증가하게 되었다.

나는 이 마오리족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읽는다.

설날, 나를 아는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餘不備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