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의 삶이란 무엇일까?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8-02-12 02:32     조회 : 15458    

왜? 무엇 때문에 여기 이곳 New Zealand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 건물들, 옛날 물건들을 악착같이 아끼고 보존하고 보호할까?
몇 천 년 몇 백 년도 아니고 불과 수십 년에서 일백년만 지나도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토록 가치를 부여할까?
이들 나라의 역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그럴까?
아니다.
이들은 ‘인간으로의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산다? 그럼? 인간이 아닌 삶이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옛 날 우리 조상들이 만든 일체의 문화나 물건들과는 대(代)가 끊긴지 이미 오래이며 아무런 삶의 연관도 없고, 심지어 정신의 맥락과는 스스로 절연(絶緣) 상태다.
인종(人種)의 변종(變種)인가?
아마 그보다 더 지독한 역병(疫病)을 백 년 동안이나 앓고 있다.
이제 스스로는 도저히 자각할 수 없을 만큼 집단적 무지(無知)의 세상에 내몰려있다.
 
2004년 4월에 나는 유홍준이 문화재청장이 되기 이전에, 문화재청 부탁으로
 "문화재(문화유산) 정책과 과제에 있어서 국가전략적 인식 제고 - 실천방안"
이란 제목으로 문화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라는, 문화재 발굴 보호 업무에 관한 예산 증액과 인원 증원문제, 무엇보다도 문화재에 대한 대국민, 대정부의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주문을 ‘폐이퍼’로 직접 작업해 준적이 있다.
이 폐이퍼로 문화재청은 국회에서 예산을 증액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www.kimsangsoo.com - Society, Culture & Art - 2004 project no 3)

또한 이후 나는 여러번 문화재청장 유홍준을 즉각 직위해제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한 바도 있다.
이 홈폐이지 Guest Book 번호 937번에도 나는 유홍준의 문제를 지적했다. 

숭례문(崇禮門)이 불타 무너져 내렸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그냥 불이 난 게 아니다.
600년이나 된 문이 전쟁의 참화에도 견디고 서있던 저 문이, 어떤 미친 자가 불을 질렀든 뭘 했든 무너져 내린 건 이미 문만이 아니다.

때때로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어디서 어디까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가? 
이게 참 고역(苦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