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국을 말한다.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04-02-18 22:51     조회 : 23575    



중국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땅의 크기와 인구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이미 중국의 힘을 의식하고 있다.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과 100년 동안의 고립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용틀림은
어느 국가든 가히 중국을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한다.

여기 이 도자기를 보라. 다기(茶器) 다.
저 맑은 백자의 흰색, 그 울림을 보라.
내가 중국에서 사 온 다기 다.
지금 한국의 다기는 이런 백자의 맑음을 못 빚어내고 있다.
중국의 저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마도 중국은 일어설 것이다. 우뚝.

그러나 문제는 바로 중국이다.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을려면 중국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다.
지금도 중국은 석탄을 땐다. 어마어마한 공해와 대기오염을 무감각으로 양산한다.
중국의 인민들이 전부 자가용을 사들이고,
전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끊임없이 먹겠다고 한다면, 엄청난 식량이 사료로 동원된다.
중국의 인민들이 지금의 한국 사람들처럼 어마어마한 소비로의 탐닉에 빠진다면 아마 인류의 자원은 빠른 시간안에 고갈되리라.

자원을 소모하고 그래서 물건에 사람들이 익사하고 쓰레기가 매일같이 넘친다면 곧 중국과 인류는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중국은 인류 문명의 발상에서 그 중심에 있었다.
노자 도덕경을 보라, 텅 빈 상태와 고요함의 상태를 지향한다.
떠들고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오늘의 중국이지만 중국은 곧 자기를 사유할 힘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정치 경제가 지금 크게 잘못된 길로 들어섰지만 이내 제 스스로의 향방을 잡아 낼 것이다. 중국의 저력은.

자, 이 맑은 백자의 다기에서 난 깨끗함과 고요를 본다. 난.
이 작은 그릇에서 깨끗한 긴장과 힘을 난 느낄 수 있다.
면면히 흘러오는 흙도자기의 순수와 긴장감.

중국은 이 다기를 만들어 냈고 난 이 다기에서 중국의 맑음을 새삼 보게된다.
아, 중국이여 거대한 미친 중국이여! 이제 일어나기를.
이제 고요를 찾아 나서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 다기의 맑은 소리의 울림처럼, 말이다.
난 이 중국 다기를 쳐다보면서 고요한 중국을 반추한다.